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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May 03. 2016

구글은 자동차의 경쟁 룰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북런치 #3] 구글은 왜 자동차를 만드는가

구글의 알파고 마케팅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에서 빅 데이터와 네트워크 정보로 무장한 인공지능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인간의 패배'라며 대서특필했고, 각계 전문가들은 의견들을 쏟아내었으며, 사람들은 막연한 두려움과 우려 섞인 말들을 건넸다. 관련된 논의들을 차처 하고,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이 이벤트가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켰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사람의 판단력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했던 영역들, 컴퓨터에게 맡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영역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알파고가 알려지기 수년전부터 구글은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해왔다. 이 차엔 운전대도 가속 & 브레이크 페달도 없다. 여러 센서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의 판단에 의해 주행한다. 운전 상황에 대한 통제권이 없는 이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래도 운전만큼은 인간의 판단력과 직관이 더 우수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마치 바둑처럼. 하지만, 또 마치 바둑처럼 인공지능의 판단이 더 안전한 주행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인식의 변화가 억 단위 상금을 걸고 벌인 바둑 이벤트의 진짜 효과가 아닌가 싶다.

구글 자율주행 자동차 주행 영상


구글은 왜 자동차를 만드는가?

책은 자율주행 자동차의 시대에 대한 상상으로 시작한다. 자동차는 우리 삶의 양식과 도시 환경을 구성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영역에서의 혁신과 변화는 엄청난 파급력을 가질 것이고, 에너지원의 변화까지 동반한다면, 세계 질서가 재편될 정도의 파급력을 지닐 것이다. '구글은 왜 자동차를 만드는가?' 질문에 대한 저자 이즈미다 료스케의 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일으킬 사회 시스템의 대변화를 미리 간파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분명 간단하지만 이는 다분히 결과론적인 답이다. 그 파급력이야 다른 기업도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법하다. 실제로 그 개념이 오늘날 갑자기 등장했다기 보단, 20여 년 전부터 여러 기업과 조직에 의해 기술 축적과 준비 과정이 있었다. 책에는 다소 산개되어 설명되어 있는 '구글은 왜 자동차를 만드는가?'에 대한 답을 시간적, 논리적 순서에 따라 조금 더 정리해 보겠다.


① 구글의 광고 사업 수익률
애널리스트인 저자는 구글의 영업이익률과 ROE 등의 재무지표를 통해 구글이 자동차를 선택한 이유를 분석한다. 구글의 성장을 이끌어낸 핵심 수익원은 광고 사업이었고, 다음 성장을 이끌 다른 사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구글은 가까운 미래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을 찾지 않는데, 그 이유는 기존 광고 사업의 수익성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만약 구글이 수익률이 낮은 사업에 투자했다고 간주되면 주가는 떨어져 버려 주주들의 항의를 받게 될 것이기에 투자가가 기대수익률을 바로 계산할 수 없을 사업에 투자하게 되는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은 미래에 어떤 파급력을 가져올지 모르기에 당장 수익률을 계산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적절한 선택이었다 볼 수 있다.


② 하드웨어의 필요성

구글의 수익은 대부분 기업 클라이언트를 통해 창출된다. 안드로이드나 크롬을 활용해 사용자와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이를 직접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인 '캐시 포인트'로 키우지는 못했다. 어디까지나 간접적으로 광고 기회를 늘릴 뿐이다. 사용자와의 최종적인 접점은 소프트웨어보다 손에 잡히는 하드웨어가 더욱 강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구글이 ICT 영역에서 경쟁 우위를 확립하고 자사 ICT 인프라를 수익화하기 위해서는 그 시스템의 일부를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하드웨어 겸 인터페이스가 꼭 필요하다. 애플이 아이튠즈와 같은 서비스 플랫폼과 각종 하드웨어 제품들을 조합시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 것처럼, 구글은 자신들의 ICT 역량을 십분 활용할 하드웨어로 자동차를 선택한 것이다.


구글 VS 도요타

구글이 자동차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살펴본 후, 저자는 구글이 본격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진출했을 때의 시장 환경 변화를 예측하며 자국 기업인 도요타에게 우려의 메시지를 보낸다. 현재 세계 완성차 제조사 중 주주자본을 기준으로 하면 도요타가 1위 규모이며, 마찬가지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 구글은 3위를 차지하는 규모이다. 도요타가 이 순위를 보고 안심할 수 없는 것은 이미 경쟁 영역의 변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의 경쟁 영역 변화

도요타의 프리우스는 연비효율과 환경 규제 대응 측면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가졌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쟁의 영역은 이미 ICT를 통한 안전성 경쟁을 넘어 자율주행 시스템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①번과 ②번 영역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했던 기존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③번 영역에서도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더 큰 문제는 신규 참여 기업의 혁신이다. 이는 경쟁의 룰 자체가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자동차 산업은 연구 개발에서 자재 조달, 조립, 판매, A/S까지 전 과정을 가치사슬에 포함시켜왔다. 계열사들을 거느리며 수직통합형의 기다란 가치사슬을 형성했고, 그 자체가 일정한 부가가치를 창출해왔다. 신규 참여 기업들은 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가치사슬을 짧게 재설계하려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구동 플랫폼을 가솔린차에서 전기자동차로 바꾸면, 부품 수는 3만 점에서 1만 점 단위로 줄어들면서 가치사슬이 크게 짧아진다. 그렇게 되면 전기자동차 분야에 있어 신규 참여자도 훨씬 적은 자금으로 뛰어들 수 있게 될 것이고, 기존 자동차 제조사들이 가지고 있는 생산 라인 설비나 자산 가치는 크게 떨어지게 될 것이다. 


두 가지 선택지

저자는 도요타를 비롯한 기존 완성차 제조사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자금 조달 능력을 바탕으로 내부에 없는 비즈니스나 자원을 끌어들여 하드웨어인 자동차와 자율주행을 운용하는 플랫폼을 일체화시킬 준비를 서두르는 것이다. 이는 시스템 경쟁에 스스로 뛰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필요한 전문 인력들을 고용하고, 인수합병을 통해 역량을 갖추는 방법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영역에서 ICT 기업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한 선택이라 볼 수 있다.


두 번째 선택지는 시스템 경쟁에서 누가 패권을 쥐고 있는지 판단해 그 기업과 함께 가는 것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OS를 이용해 스마트폰 시장의 승자로 부상한 삼성전자가 선택한 전략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피아트 크라이슬러(FCA)가 같은 전략을 선택하려는 듯하다. 어차피 스스로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할 능력이 없기에 빠르게 구글과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이미 삼성전자가 경험했고, 대부분의 완성차 제조사가 우려하듯, 구글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면 어느 순간 성장은 한계에 다다르고 끌려다니게 될 수도 있다.


이노베이션의 진짜 의미

관심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 기사들을 보면 전기차와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를 향한 혁신이 급격히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노베이션이란 결국 기존의 시스템을 없애는 것과 관련이 있기에 저자가 도요타를 걱정했듯, 나는 현기차를 걱정한다.(물론 쓸데없는 걱정인지도 모른다.) 세계 시장의 큰 흐름은 이미 정해졌고, 정부 로비를 통해 시간을 다소 벌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 해결책은 아니다. 전기차 라인업인 '아이오닉'을 론칭한 것과 시스코와 손잡고 자율주행을 위한 발판 정도인 '커넥티드 카' 준비를 시작한 것은 고무적이나,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이 와중에 베이징 모터쇼를 통해 확인한 중국 자동차 브랜드들의 변화 속도는 또 어떠한가.


이때쯤 생각나는 숫자 10조. 그 돈으로 땅을 살 수밖에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건지 내막은 잘 모르겠다만,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의사결정이 아닐 수 없다. 그때 괜찮은 ICT 기업을 하나 샀더라면 어땠을까...


스스로 먼저 새로운 경쟁 룰을 확립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현재의 룰 속에서 승자의 위치에 있을 경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지금의 도요타가 바로 이런 상태이다. - P 182


스스로 새로운 경쟁 룰을 만들 것인가.

누군가 만들어둔 경쟁 룰에 의해 휘둘릴 것인가.

자동차의 미래를 선점하기 위한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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