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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마타 Aug 19. 2018

자본론의 정치적 해석 (2)

문화연구 스터디 7월 25일 코멘트 페이퍼

Text: Cleaver, H. M. (1979). Reading capital politically. 한웅혁 (역) (1986). <자본론의 정치적 해석>. 서울: 풀빛. 3-6장 (139-250쪽)     


7월이 점점 더 극한으로 바빠지고 있다는 핑계로 앞부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꼼꼼하게 읽지 못했지만, 클리버의 서술 자체는 서설에서보다도 더 꼼꼼해진 면이 있어서 뭔가 정말 개잘쓴 발제문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CP에서 계속해서 같은 지점을 맴돌게 되는데 그것이 자율주의 맑시즘에 대한 내지는 클리버의 관점에 대해서 내 생각이 부딪히는 지점들이 결국에는 거기서 거기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결론.     


1. 지난주에 이어서 분할의 수직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지만(수평적 분할은 없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할’의 문제는 그 자체가 나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었다. 일단 클리버에게 계급투쟁은 ‘분할 폐지에 초점을 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를테면 이 ‘궁극적인’ 목표가 젠더, 세대, race와 같은 분할에도 그대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사실 나는 탈-정체화의 정치를 기본적으로 더 지지하는 편이지만 차이의 정치가 지닌 문제의식을 기각할 만큼의 잘 정리된 관점이 나에게 있는 것은 또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클리버 책의 기본적인 한계이기는 하지만, 이 분할 역시 자본의 시도로만 본다는 점이 못내 아쉽기는 했다. 자본이 아니더라도 국가, 혹은 타자성과 환대 그 자체의 문제로 이 문제를 볼 수 있는 잔여가 분명히 있을텐데 말이다. 난민포비아를 단순히 국제적 자본의 노동계급에 대한 대응으로 환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1. ‘사회적 평균’에 관한 생각을 조금 해 보게 되었다. 나는 사실 청년 내부의 이질성 같은 것을 주장하면서 ‘평균 논리’에 대한 극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평균은 그냥 통계학적으로 의미를 갖는 값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사회적 대표성을 갖는 것으로 여겨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맑스, 그리고 그것을 해석한 클리버에게 이 ‘사회적 평균’이라는 것이 수학적인 산술평균인지 아니면 정말로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투쟁의 잠정적인 상태인지에 관해서 고민했다. 사회적 평균은 산술평균이 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드는데, 여기서 ‘일 못 하는 사람 유니온’이 떠올랐다. ‘일 못 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사회가 설계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 의미 있다고 보는데, 근데 또 막상 일을 함께 해 보면 일 못 하는 사람을 포용하는 게 잘 안 된다. (다들 팀플에서도.)     


1. “노동자가 자유롭게 살며 자신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비노동시간 동안에 가능하다”(183쪽)고 하는데, 노동시간 동안에 일어나는 자아의 실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클리버 식으로 이것은 유연하게 변화하는 자본이 노동계급에 대해서 적실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맑스도 “노동이 아닌 ‘활동’ 그 자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200쪽)에 대해서 적절한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말이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창의노동(creative labor)’이라는 문제설정은 노동시간과 비노동시간(가처분시간)의 구분 논리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될 법도 하다. 이것은 자본의 변형이기도 하고 따라서 새로운 형식의 착취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사실 창의노동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은 자아실현을 실제로 하기 때문이다. 의미도 찾고. 예컨대 헤스먼달프는 <창의노동과 미디어산업>과 같은 책에서 그냥 ‘좋은 (창의)노동’과 ‘나쁜 노동’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통해서 그나마 ‘좋은 노동’의 기준들을 우리가 합의해나가고 추려내자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호성을 클리버가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지난 번 웅준CP에도 써 있는 프리노동의 논의를 클리버가 선취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노동’ 시간의 범주에 공장노동시간뿐만 아니라 ‘자유’ 시간도 넣고 그것의 내용을 둘러싼 투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184쪽).


1. 클리버는 ‘정체성 정치’라는 이름으로 묶일 만한 다양한 노선의 정치 투쟁들의 독자성을 보존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취한다. 하지만 그것을 ‘자본과 노동의 계급관계’ 내에 통합시킬 수 있고 이해관계를 묶어낼 수 있다는 이론적/실천적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분할을 파괴하려는 투쟁은 일반적으로 피지배집단이 주도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지배측이 자신의 특권을 스스로 폐지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176쪽)라는 계급의 객관 위치와 ‘대자적 계급화’의 개연성 사이에 자동적인 연결을 설정하는 것 그 자체, 그리고 “그들 투쟁의 초점이 자본에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투쟁이 공통의 목표를 위해 단합될 가능성은 있는 것”(250쪽)이라고 보는 낙관적인 스탠스는 다소 나이브하게 보이기도 했다.      


1. 화폐에 대한 분석은 흥미로웠으나, ‘문화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다소 일면적이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바로 떠올릴 수 있는 텍스트가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일텐데, (나는 그 두꺼운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에 나온 화폐에 대한 짧은 통찰을 기억한다.) 이때 미디어로서의 화폐/돈이 인간들을 오히려 연결시켜주고 새로운 공동체성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짐멜의 이야기가 굳이 구분하자면 정치경제학자 아닌 문화연구자에게는 조금 더 익숙하거나 취향에 맞는 얘기일 것이다.     


1. 계속해서 다양한 개념들을 자본의 측면과 노동의 측면으로 나누어 보고 그것을 관계적으로 엮어내는 솜씨가 좋았다. 중간에 ‘교육’에 관련된 내용도 나오는데, 클리버 스스로가 설명하기를 교육의 강화는 자본에게 유리하기도 하지만 맥락에 따라 노동에게 유리하기도 하다. 사실 오늘 오전에 청년 일자리 정책이 대부분 (임시방편적인) 교육훈련 정책으로 나오는 것에 대한, 그러나 또 청년들 스스로도 일자리 정책에 있어서 아무 일자리나 가라고 하는 것보다는 시간과 돈을 투자함으로써 ‘스펙을 높여주고’ 동시에 ‘직접적인 고용노동 관계로 편입되는 것을 유예할 수 있게 하는’ 그런 교육훈련 정책을 선호하기도 하는 이 상황은 자본/노동의 틀에서는 누구에게 더 유리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오늘 회의에서는 교육훈련은 그만.. 이라는 결론을 우리끼리 내려보기는 했는데.     


1. 사실 나도 아주 잘 아는 부분은 아니어서 기본소득 얘기를 다시 쓰는 게 웃기기는 한데, 그래도 지난 시간에 충분하게 논의해보지는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굳이 추가로 써 둔다. 기본소득은 결국 자본과 노동의 측면에서 해석하자면 노동이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지닐 수 있고 자본의 단계적 폐지나 세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반대로 사실상 ‘모습을 달리한 자본의 새로운 복지 전략’으로서 기본소득이 사용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기본소득은 우파도 찬성하는 경우들이 있다는 얘기도 어제 술자리에서 들었다.) 더불어 기본소득은 분할할 수 없는 평등한 ‘개인’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수직적 분할이 불가능하게 될 것 같지만, 자본을 완전히 폐지하지 않는한 기본소득 역시 수직적 분할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봉사하게 될 수 있다. 어제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입장에 있었던 사람은 기본소득이 사람들의 ‘가처분시간’을 늘려줌으로써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무언가를 꿈꾸고 활동하고, 운동하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클리버가 이야기하듯 ‘당’ 주도의 어떤 운동들은 ‘자유’ 시간과는 거리가 먼 어떤 것의 선에 그칠 여지도 있고, 또한 ‘자유’ 시간이 자본의 편이 될지 노동의 편이 될지는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서 살펴보았듯) 사회적인 투쟁과 ‘정치’의 영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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