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고백
비 오는 날은 참 좋지만, 동시에 싫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집에 있을 때 비는 참 운치 있고 좋지만, 출근을 해야 할 때는 그만큼 싫은 적이 없다. 특히 홍수가 날 듯 미친 듯이 비가 내려치는 날은 더더욱 그렇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느껴지는 습한 공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혹시나 비에 고인 웅덩이를 밟을까 봐 날카로워지는 신경. 전혀 즐겁지 않은 기분이다.
무엇보다 싫은 것은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나갈 때다. 특히 버스 정류장에 서 있을 때면 모두가 자신들의 길고 짧은 우산을 급히 접으며 들어오는데, 그때 우산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빗물이 내 얼굴에 튈 때면 숨부터 고르게 된다. 똑같이, 내 젖은 우산이 다른 사람들에게 닿을까 걱정되어 우산을 내 몸 안쪽으로 계속 넣다 보면 내 옷은 어느새 흠뻑 젖어 있다.
젖은 얼굴과 옷을 보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비 오는 날은 참 사람의 감정과 닮아 있다.
기분이 나쁘고 짜증으로 가득한 날에는 나의 불만과 짜증이 마치 내 우산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문득, 내 짜증을 주위 사람들에게 퍼트리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니면 내 짜증을 남들에게 티 내지 않고 숨긴다 숨긴다 하면서, 결국에는 내 자신에게 그 짜증을 퍼부은 건 아닐까 되돌아보게 된다.
‘왜 나는 이것밖에 못하는 걸까.’
‘남들은 잘하는데 왜 나는 이 작은 일조차 해내지 못하는 걸까.’
원망 섞인 목소리로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날씨가 좋은 날이 있으면 비 오는 날도 당연히 있는 법이다. 나는 비 오는 날, 어떻게 걸어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