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지 Feb 01. 2023

온전한 사랑

2023.1.31. 육아 경력 789일째



나는 현재 만삭 임산부다. 둘째 예정일은 한 달 남았다. 이서는 요새 매일같이 '이서 아가야?'를 묻고 내가 이서가 많이 컸다고 할 때면 키가 자란 것은 뿌듯해하면서도 몸을 작게 웅크리며 자기는 쪼그맣고 아기라고 한다. 그래서 쪼그맣고 싶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한다. 매일 내 옷을 올려 배를 안아주며 '쪼이야 안녕? 잘 잤어? 같이 있으니까 좋다!'라고 말하지만 집에 정말 아기가 있는 건 싫다고 한다. 멀쩡히 놀다가도 아기이고 싶을 때마다 갑자기 달려와 몸을 웅크리며 안기고 '응애응애' 소리를 낸다. 나는 매일 이서에게 이서는 엄마 아빠의 영원한 아기고 첫 번째 아기는 특별한 거라고 말해주는데 그 말을 매일 듣고 싶은지 매일 자신이 아가인지 묻는다.


이서를 키우며 나는 이서가 너무 예뻐서 둘째를 안 갖고 싶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과 여유는 한계가 있어서 아기가 둘이면 자연히 마음은 둘로 나눠서 줘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사실 아기 한 명을 키우는 데도 몸과 정신 모두 지쳐서 둘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내가 종종 이서가 크는 게 너무 아쉽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러면 둘째 셋째를 낳으면 된다고 너 나 할 것 없이 말했는데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아기'가 자라는 것이 아쉬운 게 아니었다. '이서'의 아기 시절이 지나는 게 아쉬운 것이었다. 이건 아주 고유한 시절인 거다.


그럼에도 둘째를 갖기로 한 건 내 경험 때문이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일 년 뒤에 남편의 유학으로 미국에 왔다. 나는 형제라고는 남동생 하나뿐인데 남동생 입장에서는 하나뿐인 누나가 지금 이 상황에 미국으로 날아가 버린 거다. 엄마에게도 자식 둘 중 하나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외로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삼 형제인데 평소엔 별말 없이 지내도 무슨 일이 있으면 셋이 으쌰으쌰 하는 게 든든했다. 우리는 둘뿐인데 그마저도 헤어져 있으니 동생 혼자 지는 짐이 너무 컸다. 그런데 자식이 혼자라면? 부모가 떠났을 때 그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고 나눌 사람도 없고 서로 의지할 사람도 없는 거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들과 만나고 위로를 받더라도 함께 가족을 잃은 사람만큼 내 처지를 이해할 수는 없다. 심지어 나를 사랑해서 함께 사는 남편조차 내 슬픔을 오래 버텨줄 수 없었다. 나도 그들에게 나의 힘든 것을 구구절절 얘기할 수도 없다. 누가 듣고 싶겠는가. 그래서 우리 부부는 처음부터 자식이 없으면 없지 하나는 안 된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이서를 키우며 이서와 너무 차이 나지 않게 둘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적절한 때에 둘째가 생겼다. 예정일 즈음 태어나면 이서와 27개월 차이다. 


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과연 내가 두 아이를 잘 사랑해 줄 수 있을까 걱정이 커진다. 요새 들어 많이 느끼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보다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사랑이 더 온전한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물론 자식을 키우느라 부모가 하는 수고와 노력은 말로 다할 수 없지만 그게 '온전한 사랑'은 아닐 수도 있다. 더군다나 자신의 수고와 노력을 앞세워 자식에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망가진 사랑이다. 하지만 아이는 온전히 부모만 본다. 이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이고 안전이며 유일하게 믿을 사람이다. 아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서 부모를 사랑한다. 아무리 예민하고 고집이 센 아이라도 부모가 자신을 떠날까 불안해하고 부모는 종종 그것을 이용하곤 한다. 그럴 때에도 아이는 부모를 용서하고 다시 사랑한다.


오늘 저녁에 나는 이서 밥을 식탁으로 옮기다가 바닥에 작은 장난감이 있는 걸 못 보고 밟아 미끄러졌다. 혹시라도 배에 무리가 갈까 봐 버티다가 이상한 자세로 넘어지면서 놀라고 아파서 비명이 나왔다. 넘어지고도 몇 분 동안 몸도 살피고 마음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동안 이서는 '엄마 괜찮아? 아파? 놀랐어?' 물으며 한참을 옆에서 동동거렸다. 마음이 좀 진정되고 괜찮다고 답하며 이서를 안아줬는데 이서가 한참을 나를 안고 작은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이더니 고개를 들고 '안아줬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투가 꼭 '안아줘서 다행이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이 정말 따뜻했다. 나는 이서에게 자주 엄마를 사랑해서 고마워,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이서랑 같이 있으니까 좋다, 이서는 특별해, 이서는 영원히 엄마의 아가야, 하고 입바른 소리를 하고 그게 나의 진심이지만 과연 나의 행동과 표정도 그럴까. 나의 사랑은 온전한 사랑일까. 오늘도 잠든 이서를 보며 일어나면 좀 더 잘해줘야지 매일 실패하는 결심을 또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기에겐 사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