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이미지가 중요해지면서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아기밥' 사진들도 정갈하고 예쁘다. 감성 넘치는 예쁜 식판에 영양과 예쁜 색을 모두 챙긴 식단을 보자면 이서에게 해주는 내 이유식들이 초라해 보인다. 일단 나는 초-중-후기와 완료기 이유식 모두 거의 일품으로 먹였다. 사실 일품이라 칭하려면 내가 만든 것보다는 좀 더 요리 같은 느낌이 들어야겠지만 나는 이유식의 원칙에만 입각해서 만들었다. 이런 것들이다. 아이에게 알러지가 있는지 재료를 하나씩 더하며 알아볼 것, 매일 철분을 꼭 먹일 것, 탄단지와 식이섬유의 균형을 맞출 것, 냉장 보관은 삼일을 넘지 않을 것. 나는 아침은 무조건 오트밀에 과일 퓨레를 섞어 줬고 이유식은 냉동은 하지 않고 두 가지 메뉴로 삼일 치를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했다. 삼일에 한 번 두 가지 메뉴만 만들어도 재료 손질부터 냄비에 직접 저으며 끓이고 체에 거르는 모든 과정을 거치면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렸다. 나는 아기를 재우고 금쪽같은 내 자유시간에 이렇게나 시간을 들여 또 밥을 한다는 것에 스스로 충분히 칭찬해 줬다. 그리고 혹여나 이서가 잘 먹지 않을 때는 치트키로 이유식에 이서가 좋아하는 사과를 갈아 넣었다. 그러면 어떤 재료가 들어가도 잘 먹곤 했다.
아기들 옷과 장난감은 또 얼마나 감성이 넘치는지 색감부터 모양까지 은은한 파스텔톤에 예쁘고 좋은 재질로 만들었다고 광고한다. 인스타그램 속 아이들 사진을 보고 있자면 우리 이서가 갖고 있는 완전 미국 스타일의 색색깔 옷과 장난감들은 눈이 아플 지경이다. 하지만 아기가 보기에는 이 화려하고 분명한 색들이 더 잘 보이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생각하며 우리 집 인테리어는 온통 무지개 빛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이서 백일까지 실내복 다섯 벌로 겨울을 났다. 신생아 때는 크게 입고 백일에는 딱 맞게 입었는데 얼마나 자주 빨고 입었는지 백일쯤 되자 옷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이서는 장난감도 별로 없었다. 그마저도 다 주변에서 물려준 것들이었는데 물려받아 쓰지 말라는 헝겊책도 그냥 세탁기에 뜨거운 물 넣고 빡빡 돌려서 재활용했다. 이서는 장난감보다 주로 펜 뚜껑이나 빈 플라스틱 물병, 다 써버려서 눌러도 나오지 않는 엄마 화장품 뚜껑 같은 것을 좋아했다. 한 자리에 누워 심각한 얼굴로 이런 물건들을 돌려보고 물고 빨며 탐색했다. 나는 부지런한 엄마도 아니어서 이런 물건들도 자주 닦아주지도 못했다. 쌓인 빨래와 설거지를 하기도 바빴다. 우리 집에 있는 모빌은 심지어 수동이어서 내가 태엽을 감은 만큼만 돌아갔다. 신생아 때나 쓴다는 그 수동 흑백 모빌을 이서가 크립을 잡고 앉을 때까지 달아뒀다. 그래도 이서는 건강히 무탈히 자랐다.
사실 육아는 템빨이어서 이렇게 부족한 아이템으로 육아를 하자면 엄마의 시간은 빛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감히 수동 모빌을 걸어두고 아기를 크립에 눕혀두려면 때마다 모빌 태엽도 감아줘야 하고 장난감이 부족하면 아이를 틈틈이 관찰하며 아이가 관심을 가질만한 새로운 물건을 찾아줘야 한다. 5개월이 지나면서는 아기가 심심해서 보챌 때마다 아기띠로 아기를 메고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건 이름을 알려주고 거울도 보여주며 나 혼자 수다를 떨었다. 점점 집에서는 지루해하고 새로운 재미가 필요하니 매일 유모차를 밀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몇 권 없는 아기책을 서로가 외울 만큼 많이 읽어줘야 한다. 하지만 이서는 그래도 잘 자랐다. 말도 또래보다 빠르고 걷고 뛰는 것도 빨랐다.
아기를 키우는 데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매일 눈 마주치고 말을 걸고 무슨 뜻일지도 모를 옹알이에 대답해 주고 안아주고 걷고 노래를 불러준 모든 시간이 결국에는 아기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서는 지금도 욕조에서 비닐장갑과 물컵들을 갖고 논다. 장난감은 가끔 사줘도 금세 관심이 떨어져서 서로 보람이 없다. 장 보고 남은 종이 가방을 펼쳐 그림을 그리고 설거지를 할 때 곁에 서서 함께 거품을 만들고 침대에서 뛰며 점프 점프 놀이를 한다. 정 할 놀이가 없을 때는 근처 놀이터로 가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논다.
아기를 키우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모든 것은 있으면 도움 되는 것들이고 부모는 편해지며 아기는 더 즐거워질 수도 있다. 우리는 그저 유학생이라 가난해서 몸과 시간으로 때운 것도 많았다. 처음이라 뭐가 도움이 될지 몰라서 몸이 더 고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갖출 수 없다 해서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아기는 시간이 지나며 자라고 금세 다른 것을 필요로 한다. 생후 첫 일 년 아기는 정말 생존에 최적화되어 태어나서 아팠다가도 금방 회복하고 눈 깜짝할 사이 자라나 버린다. 아기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무관심, 부모의 사랑과 포옹과 안전과 청결이다. 첫 일 년, 나는 매일매일이 전투 같고 힘겨웠는데 지나 보니 아기는 알아서 잘 크고 있었다. 이제 둘째가 다가오는데 나는 '적당한 무관심'에 좀 더 힘을 쏟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