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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an 06. 2023

퇴보하지 않는다

2021.8.7. 육아 경력 257일째



아기를 키우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아기는 퇴보하지 않는다. 뒤집으면 구르고, 구르면 배로 밀어 앞으로 간다. 기기 시작했다면 배밀이는 하지 않고, 서는 법을 알고나면 앉아서 보채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보려 잡고 선다. 잡고 걸을 수 있게 되자 잡을 게 있을 때는 기지 않고 아무리 천천히 움직여도 까치발을 뻗어 게걸음으로 목표물을 향한다.


모든 아기들, 모든 인간은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거다. 퇴보하지 않는 시간.


아기를 키우며 나의 어떤 것들이 퇴보하는 것만 같을 때가 종종 있다. 어쩌면 하루에 몇 번씩 그렇다. 그때마다 아기는 나를 보고 웃고 '엄마'라고 소리내 말하고 내 몸을 잡고 서서 어깨에 매달려 내 볼에 입을 댄다. 눕혀두면 누워있던 아기가 이렇게 금방 크는 게 신비롭고 아쉽다. 사실 나도 알고 있다. 나는 퇴보하는 게 아니라 어떤 존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돕고 지켜주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돈을 받으며 학생들을 가르칠 때와 다르지 않고 그보다 훨씬 내밀하고 직접적인 일이다.


최근에 나는 엄마로서 나의 역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동안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 나도 꿈이 있는데. 나도 배우고 싶고 발전하고 싶은 나만의 분야가 있는데. 이렇게나 시간이 없어서야 나는 현상 유지도 하지 못하고 점점 퇴보만 하게 될 것이다. 나도 돈을 벌면 좋겠다, 그러면 아기 보는 것도 집안일도 좀 미루고 돈을 번다고 떵떵거릴 텐데. 그리고 남편이 공부하고 일하는 것이 별로 바쁘지 않다고 스스로 믿었다.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최근 몇 번 큰 싸움을 겪으며 우리는 결국 우리가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하나둘씩 상대에게 미루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미뤄진 일을 결국 떠맡은 사람은 일하며 짜증이 났고 그 마음은 쌓여서 결국 화를 내게 됐다. 지친 사람은 뭔가를 내려놨고 그러면 싸움이 됐다. 두 번의 큰 싸움을 지나 우리는 알았다. 조금 더 내가 움직이고 조금 더 배려하자. 조금만 더 부지런해지자.


육아는 제로섬 게임이다.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에 누군가 육아 외에 어떤 일을 하려면 다른 누군가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남편이 공부하고 일하고 그 스트레스를 푸는 동안 나는 자꾸만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나는 집에서 아이만 보고, 이 시골에서 아이랑 나무만 보고, 아이 자는 시간 먹는 시간을 지키다 보면 어디 나가기도 힘들었다. 아이가 6개월이 될 때까지 그랬다. 그 불만은 자꾸만 쌓여 남편을 미워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내 마음이 식어버리는 게 아닌가 고민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지난 주의 싸움 후에 남편은 오랜만에 가정 예배를 하자고 했다. 사실 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집안일을 하는 동안 남편이 아이를 보고 있었는데 기타와 찬양 악보를 꺼내 아이를 앉혀두고 혼자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남편은 은근히 쑥스러움이 많아서 '예배하자'라고 말하지 못 한다. 남편이 한참 기타를 뚱땅거리기에 내가 지나가며 말했다. "예배할 거면 얼른 하자." 그러면 남편은 여전히 쑥스러워서 나에게 말하지 못하고 아기에게 "예배 해볼까?"라며 성경책을 연다. 우리 예배는 단순하다. 찬송가 세 곡을 부르고 요한복음을 한 장 소리내 읽는다. 그리고 남편이 기도하면 끝이다. 그 날 남편은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 가정에 하나님 사랑이 가득하게 해달라고. 맞아, 우리는 사랑하려고 결혼했지. 사랑하려고 함께 살고 사랑하려고 아이도 낳았지. 우리 둘에게는 이 아이에게 사랑과 지혜로 가득한 가정을 만들어 주겠다는 공통의 목적이 있다.


아이를 키우며 내가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고 싶다. 매일매일이 쳇바퀴 같아 지겹고 피곤할 때도 나는 퇴보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하고 싶다. 나는 매일 아기와 함께 크고 있다. 아기가 크는 걸 보며 나도 좀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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