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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an 06. 2023

육아 생활의 적은 가까이에 있다

2021.5.12. 육아 경력 160일째

유튜브에서 육아 정보 영상을 보다가 본 댓글이었다. 작성자는 어린 아기를 키우는 엄마였다. 아기가 신생아였던 시절, 그의 남편은 직장을 다니며 자신에게 '집안 꼴이 이게 뭐냐' '대체 몇 시간을 자는거냐' '네가 집에서 하는 게 뭐냐' '네가 하는 일에 월급을 치면 170이다. 너는 170짜리 인생'이라고 했단다. 이 댓글을 읽을 당시 나는 120일을 막 지난 아기를 키우는 엄마였다. 댓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 댓글 작성자가 우울증으로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게 대견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주 7일, 24시간 근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이 수반된다. 열 달의 임신으로 틀어진 몸으로 아이를 낳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전에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겨야 한다. 아이는 왜 우는지 도통 설명해주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알아가는 것은 양육자의 몫이다. 당연히 이 노동에 금전적 보상은 없다.


아이를 낳고 첫 두 달 동안 아이는 한 시간 반마다 젖을 찾았다. 밤에도 두 시간마다 일어나 젖을 먹였다. 먹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기는 소화력이 약해 30-40분을 세워 안고 등을 토닥여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자다가 토하며 깼고 울었고 다음 수유 때에 속이 아파 또 울었다. 악순환을 막기 위해 나와 남편은 돌아가며 아이를 안고 새벽을 보냈다. 한 시간 반 텀에 아이가 20분 젖을 먹고 40분 안고 있으면 한 시간이 흐른다. 그러면 아이는 삼십분 뒤에 다시 일어나 젖을 먹어야 한다. 그 반복되는 삼십분 안에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씻고 집안일도 하고 아이 물건도 관리하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는 모든 행위를 해야 한다.


경험해보지 않은 자는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다. 그까짓거 뭐가 어렵다고 옛날에는 넷, 다섯씩 키웠는데. 그래, 그랬지. 하지만 그때는 그때도 지금은 지금이다. 삼대가 모여살고 친척들이 근처에 살며 왕래하고 서로 음식해주고 아이도 봐주고 사촌들끼리 뛰어놀던 시대와는 다르다. 또는 그때보다 더 많은 것을 조심하고 노력해야 하는 때기도 하다. 소아과의 지식은 점점 변하고 조심해야 할 것들도 늘어난다. 그때는 알지 못해 병이 되었던 것을 이제는 조심해서 막기도 한다.


그 남편은 자신이 아내에게 어떤 폭언을 한 건지 알기나 할까? 아마 평생 깨닫지 못하겠지. 저런 마음 가짐을 가진 사람이 혼자 아이를 키워볼 기회는 없을 테니 말이다. 사실 육아 생활의 적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남편, 아내, 부모, 시부모, 친구들, 먼저 아이를 키워봤다는 수많은 부모들,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모든 사람들... 조언은 쉽지만 쉽게 불필요한 잔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른 이의 어려움이 내 생각에는 쉽다고 생각하는 순간 큰 실수를 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힘이 되는 것은 자주 연락해주는 것. 내 아이와 나의 안부를 궁금해해주고 아이를 예뻐해주고 나의 삶을 응원해주는 것이다. 양육자에게도 꿈이 있고 인생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대해주는 것. 나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기계가 아니라는 걸 알아주는 것. 고생했다, 피곤하지? 조금이라도 쉬어. 그 말과 행동들이 힘이 된다. 물론 내 남편이 이 글에 등장한 남편 같다는 말은 아니다. 나와 남편은 운 좋게도 직장 생활이 아닌 유학 생활을 하며 나의 임신과 출산, 육아를 거의 함께 했다. 지켜본 사람은 안다. 경험한 것만큼 알 수는 없지만 아내의 몸이 얼마나 변하는지, 그게 어떤 어려움인지, 동시에 어떤 기쁨인지. 정성스레 지켜봐줄 것이 아니라면 쉽게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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