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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Nov 18. 2023

괜찮다 괜찮아

엄마 경력 1079일째



아이를 둘 키우고 있어도 여전히 어려운 것이 많다. 요새 부딪힌 문제는 밥 먹기다. 이서는 이유식도 곧잘 먹고 스스로 숟가락과 포크, 젓가락에 관심을 갖고 금방 배웠다. 아기새처럼 입을 쩍쩍 벌리며 먹어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두 돌이 되면서 점점 밥 먹기 외에 다른 재미가 많아져 식탁에 앉아 밥 먹기가 너무 어렵다. 특히 동생이 생긴 뒤로는 자기도 직접 먹지 않고 먹여달라고 했다. 먹다가 놀아야 하고 먹여줘야만 먹으니 밥 먹는 시간이 길게는 한 시간 반까지 걸렸다. 먹이다 먹이다 지쳐 혼내기도 하고 먹는 시간을 줄이려 타이머도 써봤지만 잘 안 됐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 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먹기로 칭찬 스티커 한 판을 해서 원하던 바이올린을 사주기로 했다. 목표는 총 30회였고 하루 세끼를 먹으니 하루에 세 개까지 붙일 수 있었다. 어떤 날은 세 개를 붙였고 어떤 날은 하나만 붙였다. 하나도 못 붙인 날은 없었다. 부산스레 밥 먹은 때에는 이번에는 스티커를 못 붙인다고 알려줬는데 큰 실망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스티커를 모아 바이올린을 샀고 그 뿌듯함으로 한동안 자리에 앉아서 잘 먹었다.


하지만 그저 성장기여서 잘 먹었던 건지 키가 조금 큰 뒤 몇 주 전부터 다시 전쟁이 시작됐다. 밥은 두어 숟갈 먹고 나면 수다 떨고 놀다 와서 먹겠다고 자리를 떠나고는 한참 지나 돌아와서 먹기 싫다는 거다. 아무리 안 먹어도 세 숟갈 먹고 그만두는 건 너무하지 않니.. 그래서 이번에도 먹여주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밥을 먹어야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우리 집 규칙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간식을 못 먹는 것에는 슬퍼했지만 밥은 안 먹겠다고 자주 버텼다. 최근 며칠은 밥도 안 먹고 대답도 안 하며 엄마 인내심을 끝까지 시험하다가 몇 번이나 엄마의 폭발을 보고야 말았다. 오늘도 저녁에 예배를 가야 해서 빨리 준비해야 한다고 낮잠 전부터 계속 설명하고 얼른 먹기로 약속하고 하얀 밥은 싫대서 볶음밥을 대령했는데 또 얼마 먹지 않고는 안 먹겠다고 굳은 결의를 보였다. 화근은 교회에서 주려고 오븐에 넣어둔 옥수수였다. 밥 대신 옥수수를 먹겠다고 버티는데 결국 볶음밥은 치우고 김에 흰 밥을 콩알만큼 넣어서 억지로 세 개 먹었다. 출발할 시간이 다 돼서 급히 김에 밥을 몇 개 더 싸서 간식통에 넣어줬더니 차에 타서는 '이서 배 고플까 봐 이렇게 싸준 거야?' 하며 기분이 좋아져서 다 먹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서에게 폭발하나. 결국은 이서의 건강을 생각해서 먹으라고 하는 건데 하다 하다 지쳐 이서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것만 같았다. 오늘 저녁에도 거실에서 굴러다니며 대답 안 하는 이서에게 가서 왜 엄마가 하는 말을 다 듣고도 대답을 안 하냐고 큰 소리를 쳤는데 한참을 듣던 이서가 '실수로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엄마, 미안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다리 힘이 쭉 빠졌다. 정말 아이 키우기는 수없이 반복해 알려주는 수밖에 없구나. 엄마가 몇 번이나 부르고 알려줬는데도 대답을 안 하는 아이에게 '이서야, 엄마가 부를 때는 대답하는 거야'라고 어제도 그제도 지난주에도 알려줬는데. 내 역할에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지금 이서가 어떤 수준인지 상태인지 내가 잘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밤에 이서를 안아서 침대에 눕혀주고 잠드는 동안 생각한다. 그래, 괜찮지. 좀 안 먹어도 괜찮고 대답을 좀 안 해도 괜찮다. 이한이 앞에서 욕심을 부려도 괜찮고 또 어떤 때는 너무 양보하는 것 같아도 괜찮다. 그렇게 자라며 이서도 자기만의 중간 지점을 찾아갈 텐데 싶었다.


우리 부부는 각자 능률이 높은 편이고 내 일 외의 것들도 눈에 보이고 파악하는 사람들이다. 이기적인 사람을 싫어하고 규칙을 어겨서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사람도 싫어한다. 너무 나약하거나 너무 자만하는 사람도 진심으로 가까이 지내기 어렵다. 그게 우리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이다. 그런 사람이라 우리는 이서를 키우면서도 이서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다른 이를 용서하고 또 속한 집단의 규칙을 잘 지키길 바란다. 그리고 그게 부모로서도 장점이자 약점이다.


괜찮다. 괜찮아. 나 스스로에게 자꾸만 말해야 할 것 같다. 이서가 조금 더 아이 같아도 괜찮다. 응애 소리를 내며 안겨도 괜찮고 이한이에게 조금은 이기적으로 굴어도 괜찮고 식사 예절을 배우는 것이 오래 걸려도 괜찮다. 어느 가정이나 첫째 아이가 겪는 고충이 있다. 부모가 처음이라 자신의 선택이나 교육으로 아이가 엇나갈까 너무 경계해서 빨리 철이 들어버리기도 하고 처음이나 잘 몰라서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해 공동체 생활에 적응을 못 하기도 한다. 이서는 아마 전자일 것이다. 나는 이서가 빨리 철들길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랬기 때문에 아이를 그냥 두는 법을 잘 모른다. 내가 계속해서 생각하고 배워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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