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 1318일째
낮잠을 잘 자고 일어난 이서가 계단을 내려가다 갑자기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한이가 이미 울며 안겨 내려오던 중이라 이서에게 엄마한테 걸어서 오라고 했다. 이한이 우는 모습을 보더니 이서도 더 큰 소리를 냈다. 눈물도 나지 않는데 계속 소리를 지르며 우는 척했다. 소파에 앉아 이서와 이한이를 양쪽에 끼고 이서에게 왜 우는지 물었다. 어디가 아프다는데 그게 어딘지 알려주지 않고 점점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나를 째려보고 발을 동동거리며 내 허벅지를 찼다. 잠이 덜 깨서 그런가 참고 기다리다가 도저히 나아지지 않아서 점심 차리러 가야 한다고 이서 진정하면 다시 오라고 했다. 부엌으로 걸어가는데 이서가 쫓아오며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나도 폭발해서 그만하라고 했다. 마침 남편이 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고 이 아수라장을 봤다. 결국 집 밖에 있었기에 육아 스트레스는 없던 남편이 이서를 안고 입모양으로 '달래주자'라고 하고는 2층으로 데려갔다.
나는 한 팔에 이한이를 안고 국수를 삶았다. 두시 반이 넘었다. 육아 전문가들은 애가 고집부리고 울면 다정하지만 단호한 눈빛으로 기다리고 아이의 감정이 사그라들면 가르치라고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도 많다. 특히 아이가 하나가 아닐 때는 그런 상황이 종일 반복된다. 저 상황에서 이서는 처음에 울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이한이가 울며 안겨있는 것을 보니 짜증이 난 것이다. 이한이를 먼저 달래야 이서도 그치는데 이서가 울면 이한이는 누나 따라 더 운다. 이한이는 자고 일어나 배고파서 우는 건데 누군가 하나라도 멈추려면 밥을 차려야 한다. 국수는 이서와 낮잠 전에 약속한 메뉴였다.
위층에서 아빠와 대화하고 이서가 안겨 내려왔다. 남편이 '이서야, 엄마한테 가서 미안하다고 해. 가도 돼.'라고 하자 이서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나는 잠시 이한이를 내려놨고 남편이 얼른 이한이를 안았다. 나는 이서를 안고 국수를 마저 준비했다. 이서는 말없이 내 몸에 기대 내가 하는 일들을 지켜봤다. 국수를 대충 마무리하고 잠시 이서와 거실 소파에 앉았다. 이서는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도 엄마가 무섭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서는 손톱 옆이 까져서 아픈데 엄마가 몰라줘서 속상했다고 했다. 나는 어디가 아픈지 말해주지 않으면 엄마도 모른다고 알려달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 실내 놀이터에 가서 다 같이 신나게 놀고 마트도 다녀왔다. 사역을 그만둔 뒤 남편은 일을 최대한으로 늘렸는데 그래도 네 명이 살기 빠듯하다. 오늘은 마트에서 윅(WIC 미국 내 저소득층 영유아 자녀 대상 식료품 지급 프로그램)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들만 가져왔다. 다 같이 장 보며 남편 마음이 어땠을지 나는 다 알 수가 없다. 남편은 버릇처럼 빨리 풀타임을 가고 싶다고 한다. 이렇게 사는 거 그만하고 싶다고. 아무리 일해도 겨우 먹고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그런데 풀타임을 사역지 조건을 봐도 답이 없단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다 겨우 먹고 산다. 미국에 오기 전에 신혼 시절 미국 유학 생활을 경험하셨던 50대 부부를 만난 일이 있었다. 남편분은 워낙 말수가 적고 조용하지만 상냥한 분이셨고 아내분은 밝고 다정했다. 남편이 유학을 목표하는 걸 듣고 아내분이 말했다. 그때는 참 가난하고 힘들었는데 그래도 즐거웠어요.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에요. 젊으니까 사과 궤짝 같은 것 두고 밥 먹어도 견딜 수 있어요. 그 말을 하며 그분은 꿈꾸는 눈빛이었다. 지난 5년, 미국 유학 생활을 지나며 남편도 나도 수많은 위기와 걱정이 있었다. 나는 자주 그분의 말을 생각했다. 나는 카트를 미는 남편의 조금 뒤에서 걷고 있었다. 그저 어깨동무하면서 농담처럼 '지나고 나면 지금도 다 추억일 거야~' 했다. 그리고 한국 가면 나도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저녁 먹고 시간이 늦었는데 남편이 진이 빠졌는지 스트레스가 심해서인지 이서의 사소한 장난을 받아주지 않았다. 나는 티 안 나게 남편 어깨를 톡톡 쳤다. 남편이 자기 상태를 알아차리게 하는 거다. 일부러 책을 큰 소리로 읽어주며 이서랑 이한이가 저녁을 마저 먹게 도왔다. 아이들은 모두 기분 좋게 먹고 잘 준비를 했다.
유학지의 긴 생활이 참 어렵지만 그래도 학생으로 겪는 어려움은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다. 우리는 계속 이렇게 해오고 있다. 한 사람이 지치면 다른 한 사람이 좀 더 다정하게 아이들을 돌보고 한 사람이 마음이 무너지면 다른 한 사람이 달래주고..
밤에 아이들을 재울 때 꼭 나랑 이서가 돌아가며 기도를 하고 잔다. 이 날은 이서가 '아빠 마지막 학기인데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주세요(진짜 이렇게 말해서 깜짝 놀랐다). 아빠가 많이 피곤한데 회복하게 해 주세요(진짜로 너무 놀랐다). 이한이를 지켜주세요. 그리고 우리 한국에 가게 해주세요(요새 이서의 소원)!'라고 기도했다. 나는 이한이에게 먼저 가서 쓰다듬고 '사랑해.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하고 이서 침대로 넘어가 곁에 눕는다. 이서는 내가 옆에 눕자 '엄마도 이서한테 와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나는 이서를 쓰다듬으며 '엄마 아기 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이서는 킥킥 웃으며 엄마 손이 따뜻하단다.
행복은 뭘까.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 걸까. 여러 생각이 스치는 요즘이다. 행복하다. 행복한데 힘들고 힘들지만 행복하다. 인생은 그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 같기도 하고 가진 것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남편이 열심히 벌고 아이들 앞으로 나라에서 돈과 보험도 줬고 저렴하고 좋은 집 만났고 차도 잘 만났고 주변에서 많이들 도와주셔서 가진 것에 비해 풍족하게 살았다. 그래서 오히려 베풀 수도 있었다. 365일, 온종일 아이들과 함께하는 생활이 힘들고 어떤 때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눌리기도 하지만 엄마는 늘 말했다. 자식들이 어려서 북적이고 바쁠 때가 인생에 가장 신나는 때라고. 행복이 너무 당연해서 힘든 것만 보이는 일상이지만 행복한 줄 모른 채로 지나고 싶지 않다. 너무 힘든 시기를 각자가 잘 버티며 잘 지나고 있다. 남편은 남편의 몫을, 나는 나의 몫을, 이서와 이한이는 그들의 몫을 알든 모르든 잘 해내고 있다. 나는 앞으로 하나도 걱정하지 않는다. 공부를 마친다니 오히려 기대가 된다. 우리 가족 사랑해!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