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경력 1268일째
2024.5.24.
첫째 이서는 아기 때부터 울음이 짧았다. 부딪히거나 넘어져도 잘 울지 않았고 말을 일찍 알아들어 지시사항을 꽤 잘 듣고 수긍이 빨랐다. 위험한 일을 굳이 찾아 하지 않았고 하더라도 운동능력도 좋은 편이라 잘 다치지 않았다. 그래서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아서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도 자신의 아이와 이서가 만나는 것을 반겼다. 종종 다른 아이에게 꼬집히거나 맞거나 물건을 빼앗겨도 맷집이 좋아서 잘 참았다.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 사과하는 부모들에게 '괜찮다'며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오늘 이서가 큰 실수를 했다. 남편이 다니는 신학교 안에는 작은 실내 놀이터가 있다. 평소 자주 만나던 이서 또래 친구와 실내 놀이터에 갔다. 이서가 큰 블록으로 자기 집을 만들고 있었다. 블록을 더 가져오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친구가 그 집에 들어가서 앉았다. 이서는 자기 집이라고 나오라고 하는데 친구는 나오지 않겠다고 하며 실랑이가 시작됐다. 곁에서 친구의 엄마가 아이에게 나오라고 설득하던 중에 이서가 기다리지 못하고 친구의 목을 끌어당겼단다. 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 오르고 내리는 게 서툰 이한이가 미끄럼틀에 올라가 있어서 그 곁에 있어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심각해지는 것 같아서 이한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이서를 안고 다른 쪽으로 데려왔다. 이서는 이서대로 자기가 만든 것을 친구가 묻지도 않고 맘대로 했다고 화가 났고 엄마가 자기 몸을 붙잡고 있으니 싫고 아프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서가 도망가거나 다치는 걸 막으려 팔과 다리를 둥글게 말아 이서를 그 안에 잡고 있었다. 이서를 진정시키는 데 한참이 걸렸다. 시간이 지나며 이서가 조금씩 진정했다. 나는 엄마가 붙잡아서 아팠다면 미안하고 이유가 뭐든 친구를 아프게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서는 받아들였고 친구에게 사과했다. 아이들은 다시 놀기 시작했고 서로 또 장난감을 갖고 놀겠다고 실랑이를 하기도 했지만 큰 갈등 없이 헤어졌다.
집에 와 생각하니 나도 친구 엄마에게 사과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못 봤다고 연락했는데 이서가 친구의 목을 잡아당기고 그 후에 머리카락을 붙잡고 당겼다고 했다. 나는 전화해서 아까 사과 못해 미안하다고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짧게 하고 통화를 마쳤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정말로 마음이 괴로웠다. 좀 속상해도 애가 맞고 오는 게 낫다. 우리 아이가 친구를 아프게 했다는 게 이렇게나 속상한 일인 줄 몰랐다. 아마 이서는 그게 친구에게 얼마나 아플지 잘 몰랐을 수도 있다. 그저 마음이 급하니 빨리 해결하려 바닥에 앉은 친구 몸 중 잡을 곳을 막 잡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몸을 잡고 힘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괜찮다'라고 말해도 때로 친구들을 만났을 때, 혼자일 때보다 통제가 어려운 아이들은 부모가 먼저 만나기를 쉬자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서가 아무리 그 친구를 좋아하고 내가 괜찮다고 해도 그 부모에게는 울며 괴로움을 토로할 정도로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제야 나는 그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됐다. 통화 중에 친구의 엄마는 모든 아이들이 이런 시기를 겪고 배우면서 나아지는 거라 말하며 되려 나를 위로했는데 나는 그 사실을 간과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이서는 그러지 않을 거라 믿었던 거다.
지난해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을 읽으며 당장 내 마음에 어떤 우상이 있나 생각해 봤다. 내 일상은 온통 남편과 아이들로 가득했다. 그중에서 내가 가진 가장 큰 우상은 '좋은 엄마, 좋은 아이'라는 걸 찾았다. 이서는 타고나길 순한 아이였고 내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 아이가 타고난 것들이 다른 이들에게 내가 좋은 엄마처럼 보이게 했다. 나는 이서가 애매모호하고도 높은 기준으로 '좋은' 아이라 생각했고 아이가 '좋은' 기준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면 변명거리를 찾거나 아이가 그 행동을 하지 않도록 가르치거나 나의 문제점을 찾아 바꾸려 했다. 동시에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부모나 친구들을 힘들게 하는 아이들을 보면 '괜찮다'라고 하면서도 내 안에서 그 아이나 부모를 판단하고 내심 우월감을 느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으며 깨닫고 그런 모습을 내려놓으려 노력했는데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마음속으로 이서가 완전하길 바라고 있었다.
남편과 이 이야기를 하며 혹시 요새 이서의 고집이 세지는 게 단순히 이서가 그런 단계를 지나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아이 둘을 보며 이서에게 제대로 반응해주지 못해서가 아닐까 고민을 나눴다. 남편은 그보다는 아이도 완벽할 수 없고 우리가 완벽한 부모가 될 수도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맞다. 첫째를 키우는 건 정말 매일이 숙제다. 내가 이렇게 하면 아이가 잘못 배울까, 이렇게 하면 너무 아이를 잡는 걸까, 저런 걸 그냥 둬도 될까 매 순간 고민하고 매일이 내려놓는 훈련이다. 둘째에게는 나도 이미 겪어본 일들이고 첫째에게 에너지를 쓰느라 그냥 두며 잘 지나가는 것들이 첫째에게는 매 순간 높은 기준과 벽을 세우곤 한다. 이서에게 좋은 아이이길 기대하는 마음을 잘 내려놓고 싶다. 그래서 이서도 아이답게 잘못해 보고 실수하며 배우고 나도 그런 이서의 엄마답게 함께 잘 자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