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이지, ⟪혼자 갈 수 있어⟫
살짝 벌어진 커튼 사이로, 반쯤 겨우 뜬 눈꺼풀 아래로 새어 들어온 아침 햇살. 지금의 시간을 가늠한다. 아직 일곱 시도 안 된 것 같은 기분에 다시 두 눈을 닫는다. 닫을 수 없는 두 귀로는 아이를 찾는다. 엄마아빠보다 먼저 일어나 거실에서 혼자 사부작사부작 놀고 있을 아이의 소리를.
그러나 내 귀에 들려오는 건 아이의 재잘대는 혼잣말이 아닌, 쏴아 쏴아 쏟아지는 물소리.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벌떡 몸을 일으켜 욕실로 뛰어갔다. 방금 전에 욕조에서 나온 듯한 아이는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고 있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 한채 잽싸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물기가 남아있는 칫솔, 거품이 묻어있는 비누, 가지런히 걸려있는 젖은 샤워 타월, 앞머리로부터 또르르르 흘러내려오는 물방울, 나를 올려다보는 초롱초롱한 두 눈. 아이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아주 아주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전날, 연휴의 가족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씻지도 못한 채 밤잠에 들었던 아이.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혼자 옷을 벗고 혼자 치카하고 혼자 세안하고 혼자 샤워하고 혼자 머리를 감았다. 엄마아빠가 자고 있는 안방 쪽으로 오지도 않고 홀로 개운한 아침을 맞은 아이. 목욕을 다 마친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일은 옷장 꼭대기에 놓여있는 로션 통을 내려주는 것뿐이었다. 아이는 물기를 다 닦아 낸 몸 위로 꼼꼼하게 로션을 발라냈다. 이내 어린이집에 입고 갈 옷까지 착착 꺼내 입은 아이가 하는 말.
“자~ 이제 아침을 먹어볼까! 오늘은 무얼 먹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컵에 담고, 방울토마토를 꺼내 개수대에서 물로 헹구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사랑이 느껴진다. 혼자 힘으로 해낸 모든 과정으로부터 다음을 향한 자신감과 용기를 가득 얻은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요즘 들어 엄마아빠나 선생님 같은 어른의 도움 없이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부쩍 많아진 일곱 살 아이.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서는 일이 아니라면 선뜻 나서지 않는 아이의 성향을 감안할 때, 아이의 ‘혼자 할 수 있는 일’ 목록은 아이의 성장 여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나 다름없다. 내 방에서 아침까지 혼자 잘 수 있어. 놀이터까지 혼자 갈 수 있어. 이 기구를 혼자 탈 수 있어. 이 뚜껑을 혼자 딸 수 있어. 여기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하면 혼자 알 수 있어. 혼자라서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을 혼자서 다스리는 법을 체득해 가는 아이의 마음. 그 안에 스스로를 향한 믿음과 확신이 아로새겨지고 있다.
내년이면 도보 20분 거리의 초등학교에 다녀야 하는 아이를 위해 우리는 자주 동네를 ‘걷는’ 연습을 한다. 나는 아이 뒤에 멀찍이 서서 아이의 걸음과 방향을 지켜본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이면도로를 안전하게 걸어가는 법. 왕복 8차선 도로를 포함한 서너 개의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너는 법. 주변을 두루두루 살피며 안전하게 다니는 법. 이 모두를 이미 잘 알고 있는 아이지만, 아직까지 아이는 자신의 뒤에 엄마가 서 있기를 바란다. 언젠가 혼자 오고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가 되면, ‘이젠 혼자 다녀올 수 있어’라고 엄마에게 말할 거라는 아이. 그 ‘때’를 아이 스스로 알아차리고 확신하게 되리라는 믿음을 안고, 그 ’때’가 지금이라고 혹은 그 ’때’는 아직 멀었다고 아이에게 다그치거나 강요하지 않는 것이 멀찍이서 지켜보는 나의 몫이자 책임이리라.
어른들은 항상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한다. 나를 못 믿는 걸까?
삶이라는 길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잘 알고 있어. 가끔 길이 헷갈리더라도 얼마든지 잘 찾아갈 수 있어. 길을 걸을 때 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어. ‘할 수 있다’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며 나아가는 씩씩한 걸음. 그렇게 아이의 세상은 한 발짝씩 아이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아이의 마음은 한 발짝씩 세상으로 나아간다. 눈에 거품이 들어가면 흐르는 물로 닦아내면서. 걷다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서. 한밤중에 눈을 뜨면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서. 문을 열고 나가면서. 친구들을 향해 뛰어가면서.
그런 네게 나는 바란다. 스스로 해낼 수 있음을 경험한 순간의 뒤편에 묵묵히 너를 믿고 지켜본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는 해서는 안 될지를 자신의 삶으로 먼저 보이고 가르친 고마운 이들이 있기에, 결코 혼자 살 수 없는 네 삶을 혼자서도 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로 채워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뒷면지를 가득 메운 달빛 아래에서, 나 또한 내게 바란다. 네가 혼자 갈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너를 다정히 지켜보는 너의 엄마가 되기를. 더불어 ‘혼자 할 수 있는 일’의 목록을 혼자 힘으로 작성할 수 있도록 어린 내게 자신의 삶으로 거울이 되어주었던 이들을 잊지 않기를. 어린 나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지켜준 이들, 어린 나를 믿고 지켜본 이들 덕분에 비행과 회귀를 반복하며 조금씩 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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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초고를 쓴 다음날, 아이는 혼자서 동네의 미술학원에 다녀왔다. 아파트 정문으로 마중 나간 엄마를 향해 뛰어오는 두 발. 까르르 웃으며 다가오는 두 눈.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의 무대는 이렇게 하루씩 넓어져가고 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늘려가면서.
* 현이지, ⟪혼자 갈 수 있어⟫, 키다리출판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