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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Sep 08. 2023

우리가 되어 함께 걷기, 함께 걸으며 우리가 되기

박현민, ⟪하얀 개⟫

“하얀 개는 친구를 찾고 있어.”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은 친구를 찾기 위해 하얀 개는 길을 나섭니다. 자신과 비슷한 둥근 모양을 갖춘 누군가가 자신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자신과 비슷한 하얀 색깔을 지닌 누군가의 곁이 자신의 자리가 될 것이라 믿으면서.



하얀 개는 길 위에서 자신과 비슷한 모습의 다양한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얀 개는 하얀 아이스크림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얀 공이 될 수도 없었죠. 하얀 밥도, 하얀 구름도 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하얀 개의 ‘친구 찾기’ 모험은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잠시 머무르고, 이내 떠나고, 다시 걸으며 하얀 개는 자신의 친구와 자신의 자리를 끊임없이 찾았습니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하얀 개는 어느 순간, 더 이상 친구를 찾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세상의 모든 백색이 자신의 그것과 같지 않음을 알아차린 그때. 자신과 같다고 생각했던 이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같은 형태의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아차린 그때. 하나의 접점만으로 완전히 포개어질 수 없는 이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을 홀로의 운명을 예감한 그때. 하얀 개에게 낯선 누군가가 다가옵니다. 자신과는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른 모습의 ‘검은 고양이’였습니다.


하얀 개의 또 다른 모험은 생각지도 못한 만남 위에서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하얀 개와 까만 고양이는 서로의 다름을 외면하지 않고 각자의 결여를 함께 채워가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서로를 위해 더하고 곱하고 나누었던 모든 걸음. 이 모험에서 빠진 것은 ‘친구 찾기’라는 이전의 목적이었습니다. 함께 걷고 머문 모든 곳들이 하얀 개와 까만 고양이의 ‘자리’였어요. 그 모든 자리에서 하얀 개는 하얀 개로서, 까만 고양이는 까만 고양이로서 각자와 서로를 지켰습니다.



몇 번을 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야 마는 이야기의 까만 엔딩. 그러나 마냥 슬픈 감정이 제 눈물의 유일한 성분은 아닙니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서로의 차이를 장벽으로 두지 않았던 당신. 완전히 포개어질 수 없는 서로의 간극을 한계로 두지 않았던 당신. 어떻게든 함께 걷고픈 마음이 우리의 걸음이 되도록 내 손을 붙잡았던 당신. 지나온 타임 라인 위에서 나와 함께 걸어주었던 여럿의 당신들 덕분에, 지금의 저는 울면서 웃을 수 있습니다. 하얀 책을 분홍 케이스에 다시 끼워 넣으며, 내 눈물의 다양한 성분이 된 당신들을 향해 나지막이 고백해봅니다. Thank you to all my friends who waaaaaaaalked with me!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영어로 작성합니다. 왜 이렇게 썼는지는 그림책을 직접 보시고, 함께 공감해 주시길!)




겉모습만 바라보아도 몹시 사랑스럽고 귀여운 그림책. 그리하여 첫 느낌만으로도 독자에게 충분한 선물처럼 느껴지는 그림책. 그러나 그 첫 느낌이 이 책의 전부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감격스러운 울림까지 독자를 위한 충만한 선물처럼 느껴지는 그림책. 분홍색 케이스를 벗겨 마주하는 여백이 ‘하얀 개’ 그 자체임을 기쁘게 알아차릴 때, 작가님의 또 다른 작품 ⟪엄청난 눈⟫을 반갑게 떠올리게 되는 그림책. 작품의 외형, 크기, 제작 및 표현 기법까지 작품의 서사를 구성하고 완성하는 그림책.


눈에 보이는 어떤 모습만이 관계의 연결과 유지의 조건일 수 없음을 그림과 문장, 모양새와 만듦새 모두가 함께 말하고 있는 박현민 작가님의 신작 ⟪하얀 개⟫. 그 위로 떠오른 문장 하나로 이 글의 마침표를 찍으려 합니다.


마냥 울고 싶은 암울한 오늘을 겨우 견디며 살아가는 당신에게, 이 작고 섬세한 그림책이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다정한 만남이 되어줄지도 몰라요.




* 박현민, ⟪하얀 개⟫, 달그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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