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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Feb 07. 2024

손수건 Handkerchief

곰탕파로서 해마다 한 번씩은 꼭 챙겨보는 영화가 몇 편 있다. ('곰탕파'란 주로 봤던 작품만 보고 또 보며 새로운 작품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로, 방금 전에 내가 생각해 낸 단어다) 로버트 드 니로가 시니어 인턴 ‘벤’ 역으로, 앤 해서웨이가 벤이 일하는 회사의 대표 ‘줄스’ 역으로 출연한 영화, ⟨인턴⟩은 내가 즐겨 찾는 곰탕 가게 중 하나다.


수십 년의 결혼 생활과 직장 생활로부터 얻은 삶의 교훈과 풍부한 인생 경험이 순간순간마다 자연스러운 언행으로 묻어 나오는 벤. 그는 언제 어디서든 항상 행거 치프(손수건)를 챙겨 다닌다. 누군가에게 빌려줄 어느 순간을 대비하고 있는 벤의 손수건. 그것은 내 앞에서 눈물 흘릴 당신을 위한 준비된 친절이다. 당신의 눈물 속에 담긴 사정과 사연을 기꺼이 듣겠다는 준비된 다정이다.  


부랴부랴 아이를 등원시킨 새해의 첫 번째 수요일 오전, 동네의 한적한 카페에서 C선생님을 만났다. 그림책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연을 맺게 된 선생님과의 새해 첫 만남. 서로에게 빌려준 그림책을 돌려받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선생님은 지난주에 구입했다는 신간 그림책 한 권을 가방에서 꺼내어 보여주셨다. 나와 함께 보고 싶어 챙겨 갖고 나왔다는 선생님. 그 반갑고도 고마운 말에 들뜬 마음으로 눈앞의 빨간 그림책 ⟪인생은 둘이서 맘보⟫를 펼쳐보았다.  


이게 웬걸. 한 장씩 책장을 넘기며 증폭되어 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나는 선생님 앞에서 왈칵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어떤 책을 보자마자 이렇게 눈물을 뚝뚝 흘린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나와 함께 살아가는 그를 생각하고, 그와 함께 추었던 우리의 춤을 떠올리고, 그와 함께 맞추어 갈 우리의 리듬을 상상하는데 어찌 울지 않을 수가 있는지.


냅킨으로 급하게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감격과 당황의 감정이 한데 섞인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던 그때. 선생님이 내 쪽으로 빨간 그림책을 쓰윽 밀어 넣어 주셨다.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내어 주신 선생님의 다정한 말.


“이 책을 보고 이렇게 우는 사람에겐 당연히 이 책을 선물로 줘야지.”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한 손수건은 꼭 천과 면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책이라는 물성으로 내어주는 손수건도 있다.

내게 소중한 그 무엇(그것이 어떤 형태를 가졌든)으로 내게 소중한 당신의 눈물을 언제 어디서든 닦아줄 수 있다.


이 모든 문장을 벅차게 경험한 순간. 생각지도 못하게 건네받은 빨간 손수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 앞에서 눈물 흘릴 당신을 위한 내 준비된 친절을 나 또한 '그림책'의 형태로 챙겨 다니고 싶다고.  당신의 눈물 속에 담긴 사정과 사연을 기꺼이 듣겠다는 내 준비된 다정을 나 또한 '그림책'의 형태로 언제 어디서든 내어주고 싶다고.


빨간 눈으로 우는 내게 빨간 다정을 기꺼이 선물한 선생님. 선생님의 눈가와 입가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휘어진 호선이 환히 그어져 있었다. 하나의 원이 되어 내게로 온 그 따스한 마음을 나는 오래도록 폭닥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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