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인 May 27. 2024

미미微微하나 미미美美하게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이진희, ⟪숲속의 먼지⟫

우리는 우리의 탄생과 관련해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다. 태어날 시기와 장소도, 태어날 가족과 환경도 자신의 의지로 정할 수 없다. 어쩌면 모든 생의 첫 슬픔이자 영원한 결핍은 모체와의 ‘완전한 분리’가 아닌, 내가 나로 태어난 모든 이유에 관한 ‘완전한 무지‘로부터 비롯되는 건 아닐는지.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미결일 슬픔을 견디며 생을 살아간다. 바깥으로부터의 충격(또는 공격)에 쉽게 던져지고 으스러지고 가려지는 미약한 자신을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내 지난한 하루를 함께 지나가려는 네가 있기에. 네 고된 하루를 고루 짊어지려는 내가 있기에. 내 취약함을 알아보며 곁이 되어주는 네가, 네 연약함을 안아주며 품이 되어주는 내가 우리의 ‘살아갈’ 이유가 되어가기에.

 


숲속 마을에서 태어난 작디작은 먼지에게도 제 생의 시작과 배경, 과정 모두가 미궁이다. 그럼에도 먼지는 살아간다. 쉽게 던져지고 으스러지고 가려지는 자신을 선명히 알아본 이의 곁에서. 그렇게 먼지는 선택한다. 자신을 집어삼킨 어둠으로 주저 없이 달려온 이의 곁을.


 먼지는 여전히 왜 이곳에 태어났는지 알지 못했어요. 그래도 친구와 함께여서 좋았어요. 그걸로 충분했어요.


오랜 시간의 마음과 수고를 들여 따사로운 온도와 보드라운 질감의 이야기로 완성된 ⟪숲속의 먼지⟫. 두 눈으로 바라봐야 할 그림책을 자꾸만 두 손으로 어루만지고 두 팔로 끌어안는다. 알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알게 되어서. 살게 되어서. 살아갈 이유를 만나고 알고 이해한 존재는 얼마든지 선택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음을, 나의 너-들과 함께 말하고 싶어서. 함께 살아가고 싶어서. 함께 사랑하고 싶어서.


미약하고 취약하고 연약한 모든 존재를 “어떤 경우에도” 끌어안는 시 한 편**을 그림책 옆에 살포시 올려두어 본다. 나와 너는 미미微微하나 우리로 미미美美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충분히 믿으며.


** 이문재, <어떤 경우>, ⟪지금 여기가 맨 앞⟫



〰️

이진희, ⟪숲속의 먼지⟫, 웅진주니어, 2024


매거진의 이전글 반으로 갈라진 세상에 '너머'의 가능성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