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 ⟪숲속의 먼지⟫
우리는 우리의 탄생과 관련해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다. 태어날 시기와 장소도, 태어날 가족과 환경도 자신의 의지로 정할 수 없다. 어쩌면 모든 생의 첫 슬픔이자 영원한 결핍은 모체와의 ‘완전한 분리’가 아닌, 내가 나로 태어난 모든 이유에 관한 ‘완전한 무지‘로부터 비롯되는 건 아닐는지.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미결일 슬픔을 견디며 생을 살아간다. 바깥으로부터의 충격(또는 공격)에 쉽게 던져지고 으스러지고 가려지는 미약한 자신을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내 지난한 하루를 함께 지나가려는 네가 있기에. 네 고된 하루를 고루 짊어지려는 내가 있기에. 내 취약함을 알아보며 곁이 되어주는 네가, 네 연약함을 안아주며 품이 되어주는 내가 우리의 ‘살아갈’ 이유가 되어가기에.
숲속 마을에서 태어난 작디작은 먼지에게도 제 생의 시작과 배경, 과정 모두가 미궁이다. 그럼에도 먼지는 살아간다. 쉽게 던져지고 으스러지고 가려지는 자신을 선명히 알아본 이의 곁에서. 그렇게 먼지는 선택한다. 자신을 집어삼킨 어둠으로 주저 없이 달려온 이의 곁을.
먼지는 여전히 왜 이곳에 태어났는지 알지 못했어요. 그래도 친구와 함께여서 좋았어요. 그걸로 충분했어요.
오랜 시간의 마음과 수고를 들여 따사로운 온도와 보드라운 질감의 이야기로 완성된 ⟪숲속의 먼지⟫. 두 눈으로 바라봐야 할 그림책을 자꾸만 두 손으로 어루만지고 두 팔로 끌어안는다. 알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알게 되어서. 살게 되어서. 살아갈 이유를 만나고 알고 이해한 존재는 얼마든지 선택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음을, 나의 너-들과 함께 말하고 싶어서. 함께 살아가고 싶어서. 함께 사랑하고 싶어서.
미약하고 취약하고 연약한 모든 존재를 “어떤 경우에도” 끌어안는 시 한 편**을 그림책 옆에 살포시 올려두어 본다. 나와 너는 미미微微하나 우리로 미미美美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충분히 믿으며.
** 이문재, <어떤 경우>, ⟪지금 여기가 맨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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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숲속의 먼지⟫, 웅진주니어,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