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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월모일 Oct 09. 2022

가을을 기다린 이유, 억새

우리의 두번째 영남알프스

9월의 마지막 그리고 10월의 시작 앞에서, 나는 영남알프스를 가장 기다렸다. 그 존재만으로 충분한 억새들이 넓디 넓게 수놓고 있는 곳. 어쩌면 가을이 기대되는 이유가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영남알프스는 가지산/운문산/천황산/신불산/영축산/고헌산/간월산 등 7개 산군이 유럽의 알프스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붙혀진 이름이다. 작년에 우리는 천황산 부근의 천황재로 억새백패킹을 다녀와서, 올해는 간월재-신불산을 거쳐 신불재에서 백패킹을 하는 코스로 목표를 세웠다. 요근래 두어달정도는 백패킹을 통 다녀오지 못했다. 근2주정도는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해 체력이 얼마나 잘 따라줄지 걱정가득이었지만, 억새를 보려는 설렘만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본격적인 산행을 앞두고, 저 멀리 모이는 봉우리라니... 마음은 앞섰지만 덜컥 겁이 나긴 했다. 우리가 오를 코스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산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오르기 위해서 경량은 필수인데, 이번에는 나는 실패하고 말았다. 혹시몰라병이 심각해, 조금씩 이것저것 추가로 챙기다 보니까 배낭의 무게는 14키로. 짝꿍은 10-11키로 정도로 최대한 맞췄는데, 조금 더 편하게 생활하고, 자기 위해 2키로 후반의 텐트를 챙긴것이 두고두고 후회되었다. (이제는 정말 경량으로 도전해야지) 백패킹을 시작한지도 벌써 3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한 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배낭을 어떻게 꾸리는게 현명한 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엔 기필코 10키로로 맞추리라!


다행이도 이른시간부터 산행을 시작해서, 그늘진 흙길 구간을 무사히 올라왔다. 벌써 달력이 3장밖에 남지 않은 2022년, 올 해 세웠던 목표중 가장 중요했던 목표를 아직까지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끼며 산행을 이어나갔다. '몸도 마음도 튼튼해지기' 산에 더 잘 오르고 싶고, 덜 힘들게 오르고 싶은데 늘 다른것들을 핑계삼으며 운동을 게을리 한 벌을 받고 있는거 같았다. 산에 오를 땐 정말 힘들다. 맨 몸으로 올라도 힘들텐데 늘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올라가기때문에 힘드 더 드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올라가야지만 볼 수 있는 풍경과 그 곳에서 보낼 하룻밤이 있기에 힘을 내면 한 발 한 발 내딛어 본다.

우리는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출발했다. 이 곳에서 간월재까지 가는데 2가지 코스가 있는데 하나는 공룡능선을 타고 가는 코스와 임도길로 올라가는 코스다. 공룡능선은 나같은 쫄보체력거지가 오르기엔 가파르기도 하고 바위길을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한 코스라서, 고민없이 임도길로 향했다. 흙길을 지나 차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고 이내 임도길이 보였다. 잠시 레드불 한 캔 마시고 다시 한 번 배낭을 동여매고 간월재로 향한다. 아침 저녁으로는 찬바람이 불어 가을이 시작되었음을 느끼던 날들의 연속이었는데, 이 날은 한 낮에 온도가 무려 27도까지 올랐다. 입고있던 바람막이는 진즉에 가방에 넣었고, 레드불 한 캔으로 에너지 충전하고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대한민국 3대 라면 중 한 곳이라는 간월재 휴게소. 아직 시간이 점심때보다 조금 이른편이라 줄이 많이 길지 않았다. 나는 자리를 맡고 오빠는 라면을 사오고, 컵라면2개에 삼각김밥1개 그리고 시원한 설레임으로 간단한 점심을 챙기고 서둘러 간월재를 떠나야 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신불산을 넘어 신불재이기 때문에 오늘처럼 찾아온 이들이 많은 주말엔 혹시라도 자리가 없을까 싶어 마음이 조급했다. 나보다 한 발 앞서서 올라가던 오빠는 연신 "와 정말 영화같은 풍경이다"라는 말을 자주 뱉었다. 오빠의 말처럼 넓디 넓은 억새밭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날씨는 더웠지만 억새를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가을이었다.


중간에 점심도 먹고, 틈틈히 쉬면서 산행한 탓에 우리는 6시간만에 신불재에 도착했다. 12시-2시 가장 더울 시간에 신불산 정산까지 오르는 코스에서 한 번은 배낭을 바닥에 그냥 내동댕이 치고 말았다. 지금보다 더 강한 체력과 지금보다 더 가벼운배낭으로 백패킹을 해야겠다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 결국 오빠와 난 신불재에 도착했다. 작년 천황재와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사실 나는 혹시나 억새가 덜 피었으면 어쩌지 걱정을 조금 했었는데, 간월재와 신불재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던건지. 노란색 갈색빛이 가득한 억새를 바라보며 조금은 지쳤던 몸을 달랬고, 함께한 시간의 소중함을 느꼈다. 둘이서 오랜만에 함께한 백패킹이었고, 작년 천황재에 이어 우리의 두번째 영남 알프스였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우리가 챙겨온 비화식 저녁식사를 하며,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만 잘 지키자고 다짐했다. 사실 백패킹이 정말이지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마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화식보다 비화식이 훨씬 더 힘들고, LNT 흔적을 남겨서는 안되기에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고 우리는 그저 하룻밤 텐트에서 잠을 청하고 다음날이면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백패킹을 즐기는 이들은 많아졌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것들이 너무 많다는걸 보고 느낀 이날은 참 많이 씁쓸했다. 사람들이 즐기고 싶은 마음 만큼 지켜야 하는 마음을 갖기 바라는 생각으로 잠에 들었다. 

내가 백패킹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 계절을 먼저 만날수 있다는 사실.

일상에서 느꼈던 찬 바람보다 조금 더 훨씬 차가운 공기가 반가웠다. 얇은 패딩을 챙겨갔기에, 춥지 않게 그 서늘함을 반길 수 있었다. 해가 떠오르는 풍경은 어제의 힘듦은 잊게 해주었고, 맑고 시원한 공기는 불편한 잠자리에서의 찌뿌둥함을 날려주었다. 다시 배낭을 또 챙길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했다.


2022년 남은 올해, 다른건 몰라도 그 다짐 하나만큼은 꼭 이뤄야겠다. 3개월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몸도 마음도 튼튼해지기' 우리 둘이 오래오래 함께 배낭 하나면 충분한 여행을 즐기고 싶으니까.

영남알프스 신불재 백패킹 영상 https://youtu.be/_5fPSc0eu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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