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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월모일 Aug 15. 2023

초록이 그리운 마음

결국 산으로 향하는 이유

하고싶은 마음보다는 해야하는 마음이 사실은 더 컸다. 

해야할것들이 많았고, 우선순위를 따지다 보니 아무래도 뒤로 뒤쳐진게 사실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나에게도 틈이 만들어 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보다 긴 시간을 보냈고, 문득 다녀오고 싶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대구로 떠났다. 우리에게 목적지는 단순했다. 

저 멀리 보이는 '앞산'  오빠에게 몇 번이나 다시 물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이름이 앞산이라구?" "응 그렇다니까~"

몇 년만에 찾은 대구, 대프리카라는 단어가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한 낯의 온도가 30도가 훌쩍넘어 그 열기가 감당이 안 될 정도의 날씨. 3-4시쯤 산행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너무 오랜만에 산을 찾은거라 날씨도 날씨지만, 내 체력이 잘 따라와줄까 걱정이 되었다. 꾸준히 운동은 하고 있었지만, 12키로가 넘는 배낭을 매고 2시간 이상 산행을 한다는게 쉬운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돌아갈 순 없지! 

 

초반부터 경사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중반부까지는 이렇게 치고 올라가야지 조금 완만한 능선이 나온다고 오빠가 일러주었다. 이럴땐 너무 멀리 보지 않고, 근거리만 보면서 호흡에 맞춰 올라가는것이 가장 좋다. 경사가 너무 심해서 뒤로도 올라가고, 옆으로도 올라가고,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따라와주어서 고마웠다. 가만보면 운동만큼 정직한게 없는것같다. PT를 몇 개월째 꾸준히 받고 있는데, 몸무게 변화가 크지는 않더라고 얼굴 윤곽이 달라지고, 무엇보다 일상생활에서 체력이 좋아졌다는걸 여러 순간 체감한다. 운동가기 직전까지는 너무싫지만 막상 가면 또 재미있게 하게 되는데, 산도 그런거같다. 오르기 전에 높디높은 산을 보면 이걸 언제 올라가나 싶다가도 막상 타기 시작하면 뒤로 무를수 없기에 한 발 한 발 내딛게 된다. "그래 해보자. 할 수 있다"의 마음을 오랜만에 다시 또 느낀다.

중반부를 넘어서면 통일기원 돌탑을 만나게 된다. 무려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직접 쌓으셨다는 돌탑.

그 웅장함과 그 촘촘함에 몇 분을 멈춰서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긴 세월동안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나 하나 돌을 쌓았을 그 마음이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돌탑을 봐야지 정상까지 얼마 남지 않은거라서, 초반부 경사를 오르는 내내 다른이유로 나는 돌탑이 빨리 보고싶었다. 하지만 돌탑을 마주한 순간, 내가 헤아릴수도 없는 그 마음에 잠시 경건해졌고, 오랜만에 떠난 여행에서 다시 생각해볼수있는 기회를 만난것같았다. 

대구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앞산' 

해가 저물기 전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직 등산객들이 있어서 텐트를 바로 펴지 않고 잠시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다. 의자만 한쪽에 펴놓고 잠시 달아오른 열을 식히고, 잠시후 찾아올 고요함을 기다린다.

언제부터 초록을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색'의 개념으로, 초록/카키/연두 계열을 좋아한건 아주 어렸을때부터였고, 나무보는걸 좋아했고, 바다보다도 산이 좋았다. 본격적으로 배낭하나면 충분한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지독한 초록사랑이 시작된걸지도 모르겠다. 그냥 푸르른 이 초록을 가만히 보고있으면 행복하다. 불필요한 잡생각도 사라지는것 같고, 탁 트인 시야만큼이만 잠깐이라도 마음이 시원하게 뚫린것도 같고... 

초록이 그리웠던 마음이 사실은 컸다. 하지만 내가 해야할것들이, 해야만하는것들이 많이 있다보니까 그 마음을 잠시 외면했던것 같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산에 찾아오게 되면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이 다시 나를 일으켜세워주는것 같다. 그래서 언제고 지칠때면 다시 산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간단한 몇 가지 재료로 요즘 우리 커플이 푹 빠진 하이볼을 만들어 마신다. 산 위에서 마시는 하이볼이라. 2배 아니 3배는 더 맛이 좋게 느껴진다. 레몬즙은 이렇게 1회용 소포장된 상품이 있어서 백패킹때 자주 손이 갈 것 같다. 플라스크 용량이 작아서, 각자 한 잔씩 2잔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야경을 바라보며, 맛있는 안주와 먹은 하이볼의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실 저녁을 먹고 나서 크게 뭘 하지 않는다. 둘이서 오손도손 얘기 나누고, 야경 바라보면서 한 낯과는 사뭇 다른 온도를 즐기고. 집에서는 12시 1시까지 안자고 이것저것 하기 바쁜데, 산에 오르면서 체력을 많이 쓰기도 했고, 산에만 오면 일찍 잘 자게 된다. 산을 오르는데 몇 시간, 그리고 텐트를 치고 의자에 앉아 한 두시간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고 바로 꿈나라 여행. 반나절도 못보내지만, 이 여행이 이상하게 참 좋다. 

해가 떴다. 등산객들이 올라오기전에 서둘러 텐트를 정리한다. 초록을 눈에 가득 담고 내려갈 준비를 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언제고 우리는 이렇게 배낭을 챙겨서 훌쩍 떠날수있고, 혼자가 아니기에 든든하기까지 하다. 오랜만에 찾은 산에서 나는 처음의 마음을 느끼고 돌아왔다. 다시 떠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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