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동네를 업데이트하는 방법

신축보다 고쳐쓰기 : 공간 컨버전

by 김수민

공간을 고친다는 건, 결국 도시를 업데이트하는 일입니다


공간을 기획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건물의 가치를 높인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시대와 사람,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느껴왔습니다. 깨끗하게 '개량'된 건물이 도시에 주요 관심사였던 시기도 있었고, 기초적인 관리가 잘 되는 게 제일 중요한 시대도 있었습니다.


공간의 권력이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서울 같은 메가시티나, 지역 중소형 도시들의 원도심을 관찰하다 보면, 한국의 성숙 단계에 접어든 도시들에서 이전과는 조금 다른 변화가 분명하게 보입니다. 도시 공간의 중심과 의사결정권이 더 이상 공급자에 있지 않고,

완전히 최종 소비자 쪽으로 이동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고객 최우선이라든가, 사용자 경험을 기반으로 도시를 계획한다던가, 등등 소비자향 움직임이 광범위했습니다. 다만, 도시와 공간이라는 물리적 환경은 많은 자본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보수적인 '프러덕트'라 '분양'이나 매각을 통한 차익 기대 등의 자본 입장에서 더 중요한 의사결정 요소들에 의해, 최종소비자 영향력은 공간을 기획하고, 계획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상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건물 지으면 어쨌든 팔리고, 지속가능하지 않더라도, 공간을 빌려 '장사'를 하는 사람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요. 모두 계획이 어설프다는 걸 알(았)지만, '신도시'의 분양 상가들이 비어있는 이유는 리스크를 생태계 다음 플레이어에게 넘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도시마다 시기마다 성숙 주기와 길이는 다르지만, 도시 성장 관점에서 '성숙' 단계에 돌입한 도시들은(대부분의 국내 도시), '매각 차익' 중심의 인프라에서 '운영 이익 기반 캐시플로'를 인프라로 부동산의 본질적 성격이 바뀌어야 하고, 바뀌고 있습니다. 운영 이익을 기반으로 캐시플로가 중요해지는 시기에는 '최종 소비자'의 꾸준한 움직임이 제일 중요한 의사결정 요소입니다. 도시 계획가, 건축가, 운영자를 포함한 범공간 기획자들이 기획 방향과 고민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이 지점에 있습니다

KakaoTalk_Photo_2026-01-17-10-45-55 002.jpeg 오래된 건물 6채를 리모델링해서 브랜드 컴플렉스로 활용하는 @로컬스티치 회현


이 변화에는 신축이냐 리모델링이냐를 따지는 게 핵심이 아닙니다. 이 공간이 어떻게 쓰이고, 어떤 경험으로 기억되는지가 건물의 가치를 좌우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신축보다 이미 존재하는 건물을 고쳐서 업데이트해 사용하는 방식이 지금 도시에는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업데이트는 외관을 바꾸거나 설비를 새로 넣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물리적인 리모델링보다 더 중요한 건 사용자 경험 전체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하느냐입니다.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운영 방식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주어진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나눠 사용할지에 대한 계획과 공감입니다.


사람들은 공간의 물리적인 환경을 소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공간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되는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를 소비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의 상품과 가격은 감각이나 분위기에 대한 '감각적 기획'이 아니라 굉장히 현실적인 구조, 즉 '원가'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이 지점에서 건물을 새로 짓는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리해집니다. 초기 비용이 크고, 회수해야 할 금액도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복합적 경험을 줄 수 있는 상품을 구성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듭니다. 반대로 '고쳐 쓰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고,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환경적 장점을 선별해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도시 계획 입장에서 '단절적 리스크' 없이 연속적으로 운영을 통해 최종 소비자와 공감을 맞춰갈 수 있도록 경험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신도시와 신도시나 신축 건물에 분양된 상가들이 유난히 빨리 비어버리는 현상도 여기에 원인이 있습니다. 물리적 공간의 공급적 측면을 중심으로 고민하다 보니, 사람들이 ‘경험을 사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습니다. (신축으로 지어서 임대료가 비싸다는 얘기입니다)


2019년에 썼던 "오래된 빨간 벽돌 건물이 신축보다 동네가게에 좋은 이유"

https://brunch.co.kr/@logicdemov/20

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공간을 빌려 창업을 하시려는 분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정리했었습니다.


이건 민간이 만드는 공간이든, 공공이 만드는 공간이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공간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결국 최종소비자가 반복적으로 방문하는 지속적인 매력도입니다.



공간 소유자와 공간 기획 운영 조직의

동행이 필요합니다


10년간, 조언이나 컨설팅을 제하고, 우리의 브랜드를 기반으로 공간을 만들고 직영한/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50개 정도입니다. 리스크와 투자금, 계약기간과 역할, 이익의 쉐어 방식과 건물 가치 상승분, 소유구조와 지속성이라는 요소를 기준으로 이해 관계자들과 다양한 계약 방식으로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했습니다.


상황과 기회에 따라 적용하거나 참고할 방법들이 있겠지만, 한국의 부동산 가격 와 미래 가치, 노동 환경과 인건비, 인구 구조, 대내외 환경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현재 유효한 방식은 건물주가 건물을 사용 가능한 형태로 조성하고, 사업자나 운영자가 위탁 또는 공동사업 형태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리스크를 나누고, 목표를 맞추는 구조입니다. (물론 이 방식이 도시를 업데이트하는 주요 계약 방법론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논의와 운영 경험들이 필요합니다)


이 방식이 작동하려면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 균형점

이해관계자 간 리스크와 보상의 균형입니다. 특정 이해 관계자에 이익을 치중되거나,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는 오래 못 가지 못합니다. 함께 위험을 지고, 성과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균형점을 꾸준히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둘째, 지속성

이해관계를 끊임없이 조정하고 공감하려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장 환경도 바뀌고, 동네도 변하고, 사용자의 니즈도 빠르게 달라집니다. 요즘은 그 속도가 정말 빠릅니다. 지속적으로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공감하고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셋째, 연속성

물리적 맥락 안에서 건물-동네-도시 단위의 연속적 흐름입니다. 하나의 건물만 잘 되는 게 아니라, 그 건물이 동네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동네가 도시 전체와 어떤 맥락에서 흐르는지를 봐야 합니다. 개별 건물의 지속성이 동네완 연결되고, 도시 맥락으로 이어지는 연속성. 그게 있어야 진짜 지속가능한 공간이 가능합니다.


이는 공원이나 소셜하우징 같은 공공 영역 공간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다만 목적에 따라 아웃풋 지표를 정량적으로 측정 가능한 공공성이나 공동의 목표로 일부 치환해서 균형점과 지속성,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공간을 정책적 목표나 단기적인 매각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가치 있는 공간으로서 다룰 수 있습니다.


크든 작든 지속가능한 공간의 핵심은, 균형-지속-연속이라는 세 가지 축 위에서 이해관계자들의 방향성을 계속 일치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지속가능한 공간의 핵심은 얼마를 버느냐('운영 도시'의 캐시플로 창출 관점)와 함께 이해관계자들이 같은 방향을 얼마나 오래 바라볼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KakaoTalk_Photo_2026-01-17-10-45-45 001.jpeg 몰몬 교회를 리모델링해서 세컨핸드 가구샵으로 사용하는 @로컬스티치 노량진


도시를 업데이트하는 방법론은

기존 도시 조직을

새로운 사용자와 세대를 위해

어떻게 다시 사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서 시작합니다


공간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입장에서, 저는 도시의 역사적 맥락보다, 도시와 동네가 현재 가지고 있는 '다음 세대'를 위한 '기능적 가능성'에 더 주목합니다. 만들고자 하는 공간에 대한 기획이 있고, 사용자 경험에 대한 계획을 바탕으로


거기에 맞춰 추가할 부분과 덜어낼 부분을 고민하고 실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동네에 어울리거나 스며들 수 있는, 동네의 장점과 연결되는 부분만 결과적으로 남게 됩니다. 이 시작점을 가지고 운영을 하면서 변형과 적응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간'이 됩니다.


좋은 도시와 공간의 조건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소비자가 지불 가능한 사용이 가능한 구조와

공간을 업데이트해 가는 방식과 목표에 대한 공감입니다.


새로운 콘텐츠를 넣을 때 돈이 적게 드는 구조여야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오래된 건물이 더 좋은 출발점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건물을 둘러싼 최종 소비자와 응원자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이 이 공간을 계속 업데이트해 나가는 방식과 목표에 공감하고 있는가입니다.


IMG_5548.HEIC 마르쉐 농부시장 @서교타운

서교타운에서는 매월 첫 번째 월요일에 '마르쉐' 농부시장이 열립니다. 10년 넘게 서울 곳곳에서 열리는 이 시장은, 다양한 참여자가 생산자와 소비자, 응원자의 위치에서 참여하는 마르쉐는 공간을 업데이트하는데 공감하는 것이 지속가능성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김수민(Sumin Kim) / Soft Developer


공간과 비지니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합니다. http://instagram.com/leo_seongo

도시 생산자들에게 공간과 멤버십을 제공하는 로컬스티치(localstitch.kr)를 만들고 운영합니다.

D&D Property Solution(https://dndproperty.com)에서 사업 개발 부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공간 기획/개발/디자인 관련 문의 = 로컬스티치 디자인(https://www.localstitch-desi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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