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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Mar 13. 2024

변방의 소국에서 역사의 주역으로

K컬처와 세계의 문화현상 2 <영국>

2023년 한국의 문화 침공


영국이 깜짝 놀랐다. 2023년 8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K팝 걸그룹이 영국을 정복한다."는 제목 아래 “걸그룹 몰락한 영국, K팝 걸그룹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라고 대서특필했다. 실제 2023년은 K팝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블랙핑크가 7월 런던에서 열린 영국유명 음악축제인 '하이드 파크 브리티시 서머타임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로 이름을 올렸다. 바로 다음 달부터 트와이스, 에스파, 있지(ITZY), 여자아이들 등 K팝 걸그룹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한 해 전 2022년에는 17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V&A 박물관(Victoria & Albert Museum)에서 대규모 한류 전시가 열렸다. V&A는 장식미술과 공예 분야에서 세계적 규모와 내용을 자랑하는 영국의 왕립 박물관이다. 설립의 계기는 자국이 산업혁명 후 강국으로 등장한 것을 과시하기 위해 1850년 런던에서 개최한 세계 최초의 엑스포(만국박람회). 행사 수익금을 모태로 여왕과 부군의 이름을 따서 기념관을 지을 정도로 각별한 의미가 담겼다.



유럽이 K팝으로 떠들썩해진 2011년     


시간을 거슬러 2011년 프랑스 파리, 2010-2012 한국 방문의 해를 기념하는 'SM타운 월드투어' 공연이 열렸다. 소녀시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샤이니, f(x) 등 당시 한국 팝계를 대표하는 SM 소속 스타들이 줄줄이 무대에 올랐다. 대부분이 유럽 현지인인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공연은 마무리됐고, 프랑스의 유력지인 르 몽드와 피가로는 "한류, 파리 강타", "한류, 유럽 진출"이라며 연일 보도했다.

     

한류가 ‘K컬처’로 성장하는 ‘K’ 담론의 역사에서 이 공연은 커다란 분기점 역할을 한다. 박소정(2022)은 K담론에 대한 분석을 통해 2011년을 계기로 K팝에 대한 언급과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을 국내 중앙지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이후 K컬처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은 BTS, <기생충>, <오징어게임>으로 'K콘텐츠 트라이앵글'(3관왕)을 달성한 2019년 이후다. 유럽 문화의 본고장인 영국과 프랑스에서 한국 문화가 이처럼 각광을 받은 적은 없었다. K컬처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널리 알린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변방의 섬나라가 세계사의 주인공으로     


흔히 ‘표준과 제도의 나라’라고 불리는 영국은 세계사의 흐름과 패러다임을 바꾼 나라다. 변방의 소국에서 16~17세기를 거치며 차츰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며 해양 강국으로 부상한 이후 의회 민주주의의 확립(정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기틀 마련(경제), 뉴튼으로 대표되는 근대 과학혁명의 선도(과학) 등을 거쳐 마침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다.     


영국은 세계적인 언어인 영어의 모국이자 교육 강국인 동시에 축구, 테니스, 골프, 크리켓 등 여러 스포츠의 발상지이자 대중화를 선도한 나라로 유명하다. 특히 ‘축구는 영국의 가장 성공적인 수출 오락품’이라고 말할 정도.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PL)는 세계 축구의 메카 같다. 박지성에 이어 손흥민, 황희찬이 활약하고 있고, 지구촌의 모든 축구선수들이 꿈꾸는 선망의 무대다.            



미국을 강타한 영국의 대중음악     


영국의 문화 저력 또한 놀랍다. 1964년 2월 세계 대중음악의 본고장이던 미국은 충격에 휩싸인다. 영국의 록밴드 비틀스가 일으킨 이른바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문화 침공). 록음악의 종주국인 미국이 잠시 침체에 빠진 사이, 비틀스와 롤링스톤즈를 필두로 한 영국의 록음악이 영국의 문화 열풍을 불러온 것이다.      


1996년엔 ‘스파이스 걸스’가 뒤를 잇는다. 팝 역사상 가장 성공한 걸그룹으로 꼽히는 스파이스 걸스. 개성과 자유분방함으로 무장한 걸 파워를 통해 영국음악의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멤버 중엔 후에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부인이 되는 빅토리아가 활약하고 있어 화제가 됐다.


영미권 음악의 시초이자 대중음악계의 강자로 영국의 위치는 꾸준하다. '브릿팝(Britpop)’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를 개척하고,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성공의 길을 걸었다. 스타의 계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이어진다. 핑크 플로이드, 데이비드 보위, 퀸, 레드 제플린, 엘튼 존부터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 아델, 에드 시런 등등.


  

21세기 소프트 파워의 나라     


영국은 ‘늙은 신사’라는 이미지를 벗고 21세기에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셰익스피어의 후손답게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와 톨킨의 '반지의 제왕'으로 대표되는 스토리텔링의 보고, 창조경제를 중심으로 한 ‘Cool Britannia’라는 새롭고 혁신적인 국가 이미지는 그런 노력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여기에 또 한 나라가 소프트 파워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 문화의 선도 국가인 영국에서 '코리안 인베이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 문화가 큰 인기와 반향을 일으킨 사건은 의미심장하다. 한류를 넘어 'K컬처'로 불리는 건 그만큼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미국에도 '코리안 인베이전'이란 말이 돌았다. 2020년 BTS의 'Dynamite'가 K팝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 및 최장 기간 차트인(32주)을 달성한 것이다. (BTS는 총 6곡을 핫 100 정상에 올렸다.) 2023년엔 K팝 솔로 가수 최초로 BTS 지민의 'Like Crazy'가 핫 100 1위에 오른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반짝 인기가 아니라, 이제 K팝이 명실상부 세계 팝음악계의 주역으로 올라섰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갈 길이 먼 K팝


하지만 미래가 마냥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리더 카리나와 배우 이재욱의 열애 사건으로 시끄럽다. 에스파의 극성팬들이 "배신감을 느꼈다."며 격하게 반발, 트럭 전광판 시위까지 일으켰고, 카리나는 급기야 SNS에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해외서도 금방 화제가 됐다. 영국의 BBC방송은 "카리나로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아이돌은 압박감이 크기로 악명 높다"며 K팝 산업의 현실과 왜곡된 팬덤을 꼬집었다. 미국 CNN도 "팬들의 극단적 충성심이 K팝 스타들을 압박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쯤 되면 사생활 침해를 넘어 폭력에 가깝다. 아이돌과 팬이 건강한 관계를 주고받는 성숙한 팬덤 문화가 아쉽다. 스타는 '유사 연애 감정'의 대상이라기보다 '아티스트'로 인정받아야 하지 않을까. 세계적인 팝스타인 테일러 스위프트는 미식축구 선수인 남친과의 열애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만,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진정한 문화 선진국이 되려면


문화 강국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오랜 문화적 역량과 저력이 축적되면서 표출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K컬처가 잘나간다고 해서, 다른 나라의 문화 현상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문화는 물결이나 흐름과 같다. 전성기가 있으면 조정기가 있고,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게 마련이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든 '코리안 인베이전'이든 한때의 현상이지, 언제까지나 계속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현재의 인기와 앞으로의 지속 여부는 서로 다른 문제다. 1차적으로 우리 자신이 중요하다는 건 분명하다. 진정한 문화 강국, 문화 선진국으로 올라서려면 우리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멀리, 길게 보고 성숙한 의식과 포용적인 마인드를 키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표지는 영국의 런던 풍경.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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