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명 Dec 17. 2017

카페 (1)

당신은 멋진 사람.

주말마다 동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무실이 많은 동네였기 때문에 주말 아침 카페는 한산했다.

그렇다고 할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전원이 꺼져 차가워진 에스프레소 머신을 켜고

비어있던 그라인더를 채우고, 밤새 테이블 위에 가라앉은 먼지를 닦아내면

한 두시간은 금세 지나가 있었다. 


이 시간이 되면 오케이 사인을 받은 것처럼

낡은 서류가방을 손에 쥔 할아버지 한 분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1. 작곡가 할아버지


빠짐없이 토요일, 일요일 오전 8시 30분이 되면 카페의 첫 손님으로 등장했다. 


할아버지가 주문하는 음료는

매번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 그리고 적당량의 설탕. 


꽤 묵직해 보이는 서류가방을 한 손에 들고 -주로 오른손이었던 것 같다-

조금 비틀비틀 걸었고, 

앙상한 듯한 체구가 가냘프게 느껴지지만

말투라든가 눈빛에는 강단이 있었다. 


예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어디에 사는지는 모르지만 

범상치 않은 과거를 가졌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했다.

흉하지 않게, 오히려 분위기 있게 여기저기 뻗친 머리카락이

할아버지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도 같았다.


처음 한 달은 글을 쓰는 줄 알았다.

나중에 오선지를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후 적잖이 놀랐다.

나뿐 아니라 같이 일하던 아르바이트생도 못 믿었을 정도다.


듣는 것도 없이, 

잠시 눈을 감고 있다 막힘없이 종이를 채워가는 모습에 현실감이라고는 없었다.

오히려 신비롭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쓰다보면 정가르마를 탄 은색 머리카락이 귀밑까지 내려왔다.

할아버지는 한참 집중을 하다 저도 모르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곤 했다.

이건 잠시의 휴식시간을 갖겠다는 의미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서 

사람들로 붐비는 점심 즈음까지 카페 어딘가에서 작품 활동에 집중했다. 


나는 냉장고 뒤에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걸 좋아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어떤 일에 저렇게 열정적일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니까.


그래서인지 나는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라고 생각했지만

부를 때는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게 더 자연스러웠다. 


"저 이번 주까지만 일해요, 선생님. 

그동안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꼭 건강하세요."


내 인사가 그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 몰랐다. 

할아버지의 눈시울이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다. 


"왜.... 학생 없으면...안 오면 너무 서운한데..."

"학교가 지방이라 다시 내려가봐야 해서요. 그래서 기념으로 제가 커피 대접해드려도 될까요?"

"무슨 돈이 있다고."

"알바비로요. 오늘 받았거든요. 커피 한 잔 정도는 거뜬합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창가 자리에 가 앉았다. 


"오늘은 날씨가 아주 맑아서 다행이다. 그쵸?"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와 설탕 두 봉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럼... 잘 마실게."

"이따 다시 인사드릴게요!"


나는 할아버지가 좋았다. 할아버지는 상상 속에나 있을 것 같은 어른이었다.

아주 멋진 어른.


예를 들면, 모든 에너지를 쏟아가며 열심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어른.

손주뻘인 카페 아르바이트생들한테도 존댓말을 쓰며 어른으로 대접해주는 어른.

하다못해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이 편히 들어올 수 있게 유리문을 잡아주는 어른. 

그리고 그 사람에게 다정하게 웃어줄 줄 아는 어른.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헤어짐에 익숙해진 사람인데

이것 하나가 할아버지와 맞지 않았다. 


점심 시간이 되자 카페가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도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가시게요?"


빈 커피 잔을 집어 들며 말했다. 


"저기 내가 이걸 줘도 될까."


할아버지가 서류가방 깊숙하게 손을 넣는다. 

뒤적뒤적. 한참을 뒤적이다 분주하던 손길이 멈췄다.


"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마지막까지 조심스러워 하며 봉투를 건넸다.


"용돈. 너무 많이 넣으면 부담스러울 거 같아서. 맛있는 거 밥 사 먹으라고. 적게 넣었어.

봉투가 너무 지저분해서 미안하네."


봉투를 할아버지 쪽으로 밀면서 말했다.


"아뇨!아뇨! 아니에요. 제가 뭐라고 이런 걸요. 아니에요."

"매주 주말에 만나는 좋은 친구였어, 나한테는.

커피 값이라고 생각해 그럼. 내가 이렇게라도 하고 싶어서."


좋은 친구.


다시 뜨끈해지고 있는 할아버지의 눈이 봉투를 뿌리치고 싶지 않게 했다.

정말 감사하게 받아서 정말 기쁜 마음으로 정말 맛있는 밥 한 끼를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무슨 영화 속 한 장면 같아요. 감사합니다."


실수를 했다. 내 목소리가 막판에 조금 떨렸다. 


"응. 고마워."


할아버지는 뒤돌아 걸어나갔고,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빈 커피잔을 씻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평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