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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환 Oct 16. 2019

아침잠 좀 많으면 어때!

너와 나를 둘러싼 공간 이야기 - 7

모든 게 아침잠 때문이다.


"아! 엄마, 왜 안 깨웠어? 나 완전 늦었어." 

또 깜빡 졸았다. 도시락 가방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 엄마를 향해 소리쳤다. 엄마는 아침마다 반복되는 등교 전쟁이 익숙한 듯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교복까지 입고 있길래 다 준비한 줄 알았지. 얼른 뛰어가 늦겠다." 


조금 전, 분명 나를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들, 학교 안 가니? 이제 좀 일어나라! 언제까지 아침에 깨워야 하니?"

나도 아침마다 자명종을 대신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안 듣고 싶다. 그런데 어쩌나. 눈이 안 떠진다. 눈꺼풀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세수도, 양치도 대충 하고 겨우겨우 교복을 입었다. 엄마가 부엌에서 도시락을 준비하는 사이, 책가방을 현관문 앞에 두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텔레비전. 늘 그렇듯 브라운관 우측 상단을 주시했다. 

현재 시각 07시 05분. 집에서 학교까지는 도보로 20분. 교문이 닫히는 시간은 07시 40분. 집에서 07시 20분에 출발하면 지각하지 않는다. 출발까지 15분이라는 꿀 같은 시간이 주어졌다. 침대에 다시 몸을 맡긴 채 텔레비전 시계를 본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 내 몸은 다시 포근함을 느낀다. 눈에 힘이 빠지면서 시계가 깜빡인다. 아니 내 눈꺼풀이 깜빡인다. 

...

또 깜빡 졸았다. 텔레비전 시계는 07시 35분. 난 또 지각이다. 손에 잡히는 도시락과 책가방을 어깨에 들쳐 메고 현관문을 뛰쳐나가면서 괜히 엄마를 향해 못된 말을 내뱉는다. "또 늦었어! 아씨" 


중고등학교 때, 우리 집에선 아침마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가히 '등교 전쟁'이라 불릴 만했다. 12년 동안 남녀공학을 다니면서도 이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항상 머리 위에는 까치집 몇 개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초중고등학교 졸업사진 속 나의 헤어스타일은 모두 '까치집 머리'였다. 젠장. 갑자기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까치집 얹은 헤어스타일과 눈곱 낀 얼굴. 고등학교 때 내 얼굴이다. 지금 생각해도 진짜 별로였다. 그러니 고백하는 족족 까일 수밖에.

난 스무 살이 되면서 인물이 좋아졌다. 인기도 제법 많았다. 진짜다. 글로는 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억울할 뿐이다.

대학교에 가서도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무조건 1, 2교시에는 수강 신청을 하지 않았다. 간혹 전공 혹은 교양 필수과목이 1, 2교시에 수업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불가피하게 수업을 들어야 했지만, 성적은 C학점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이 모든 게 다 그놈의 '아침잠' 때문이다. 


누굴 닮아서 그런 거냐?

사실, 나는 공부를 잘할 수 없는 체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침잠이 너무 많다. "선천적(先天的), 유전적 요소 때문에 공부를 못 했다."라고 말하면 부모님이 기분 나빠하실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핑계를 대야 내 마음이 편하다. 평생 새벽기도를 나가시는 어머니는 좀 억울해하실 수도 있겠다. 그럼 아버지를 닮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감성이 극도로 풍부해진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혼자 훌쩍거리기도 하고, 중얼중얼 혼잣말도 자주 한다. 잘 삐친다. 그래서 섬세하게 대해야 한다. 이제 와서 칠순이 넘으신 아버지에게 "누굴 닮아서 내가 그런 거냐?" 따져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냥 내가 '돌연변이'인 거로 하자.


공부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아침잠 때문에 지각을 자주 하니 학교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때문에 공부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공부에 관심이 없으니 운동만 죽어라 했다. 얼마나 건전한가. 공부에 관심 없는 애들은 못된 것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난 농구, 축구 등 공 가지고 노는 것만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학기에 하루, 이틀 정도는 공부에 관심 없는 것을 후회했다. 중간, 기말고사 성적을 출력한 전산 용지를 칠판에 붙여 공개한 날에는 종일 울적했다. 과목별 석차 순으로 나열된 이름 중에서 내 이름을 찾기란, 위에서 아래로 가는 것보다는 아래에서 위로 찾는 것이 빨랐다. 지금 생각해도 성적표 공개 개시는 참 잔인했다. 여전히 그런 문화가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학생들을 줄 세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이제 겨우 십 대 아이들이지 않은가. 


잔인함은 멈추지 않았다.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도 모자라서 '사당오락(四當五落)'을 주입한다. 사당오락은 "하루 네 시간만 잠자면서 공부하면 대학 입학에 성공하고 다섯 시간 이상 잠자면 대학 입학에 실패한다"는 말이다. 학생들에게 잠을 줄이라고 압박한다.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민주화 운동가들은 "고문 중에 가장 참기 힘든 고문이 잠을 못 자게 하는 고문이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대학교 입시'를 인질로 묶고, '사당오락'이라는 신어를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잠 못 자는 고문'을 가했다. 아침잠이 많으면 '실패자'가 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아침잠이 많으면 게으르다. 게으르면 공부를 못한다." 우리 사회는 이 공식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수용한다. 공부를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게으르다는 이미지까지 덧입어야 한다. 슬프다. 문명이 탄생한 이후, 그 어느 시대에서도 공부 못하는 사람이 인정받은 적은 없다. 직접 말은 못 해도 공부 못하는 사람을 대하는 우리 시대의 자세는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알 수 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의 특징은 죄다 긍정적이고, 칭찬 일색이다. 그러나 공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게으르고, 부산스럽고, 때로는 한심해서 웃음 짓게 만드는 것들만 나열해 두었다. 나도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꼭 말미에 "공부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며 어쭙잖은 심판자가 되어 말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모두에게 특별한 재능이 하나쯤 있다."는 식의 영혼 없는 격려로 마무리한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들은 유독 아침잠을 못 자게 만든다. 심지어 자신을 '아침형 인간의 전도사'라는 한 저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성공한다"고 협박한다. 책에서 그 전도사(?)는 이런 말로 나를 설득하려고 한다. 

"당신도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다. 우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설정하자. 그리고 그 목표를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단위로 나누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또한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모여 한 달이 쌓여 분기가 되고 또 해를 거듭해 꾸준히 발전할 수 있도록 가장 효과적인 도구, 원칙, 전략을 활용하자."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참 매력 없는 글귀가 아닐 수 없다. 자기계발서들은 대개 이런 식이다. 그래서 난 안 읽는다.

아침에 졸리면 더 자도 된다. 다 때가 있다. 

아침잠 좀 많으면 어떤가. 어차피 나이 들면 잠은 없어진다는데. 오히려 잠을 잘 자야 뇌 건강에도 좋다. 난 여전히 아침잠이 많다. 그 덕분에 내 나이 친구들에 비해 건강한 뇌세포를 가지고 있다. 마흔을 앞둔 나이에 독일 유학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사용감(?)이 적은 나의 건강한 뇌세포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창 시절, 공부에 활성화되지 않았던 뇌가 뒤늦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최근엔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것도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글로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참 좋다.


아침잠이 많은 친구여, 억지로 아침형 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 아침에 졸리면 더 자도 된다. 다 때가 있다. 

아침마다 포근한 침실 공간이 보내오는 유혹을 참지 마시라.


좋지 않은가. 캠퍼스의 푸른 잔디 위에 앉아 금발의 미녀들과 함께 공부를 할 수 있다니... 젠장, 결혼하기 전에 유학을 왔어야 했다.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턱도 없는 소리란다. 
"당신이 나랑 결혼했기 때문에 유학도 올 수 있었던 거야"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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