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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환 Oct 30. 2019

독일에는 없는 우리만의 공간, 마당

다시 채우졀 갈 마음의 공간

"헤이 영(hey, Young)!, 너의 이론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언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까 괜찮아. 오늘 정말 멋졌어."


이 말은 그해 내가 들은 말 중에서 가장 최고였다.


평소 다혈질적인 성격을 감추지 않고, 걸핏하면 학생들에게 핏대를 세워 면박을 주던 슈테판(Stephan Morsch) 교수가 나에게 건넨 말이다. 세 시간 동안 진행된 그의 발표 수업에서 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당초 나에게 주어진 발표 시간은 30분. 영어와 독일어로 날아오는 질문들을 나는 나만의 도이글리쉬(deuglisch, 독일어와 영어가 혼합된)로 모두 받아냈다. 내가 입을 열 때마다 세미나룸을 가득 메운 다양한 빛의 눈동자들은 나의 입술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처음 경험해보는 몰입감이었다. 나의 발표가 계획보다 훨씬 길어진 탓에 나의 다음으로 준비했던 학생들은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수업을 끝마쳤다. 발표가 끝나자 등은 축축하게 땀에 젖었고,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가까스로 자료를 정리해 책가방을 싸고 있는데 슈테판 교수가 다가왔다. 처음엔 쫄았다. 괴팍한 성격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그였던 터라 그랬다. 다가와서는 내 어깨에 스윽 손을 얹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아이씨 쫄았잖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가 나보고 “Young! Wunderbar! (멋져!)”란다. 미치고 환장하는 줄 알았다. 진짜 기분 좋았다. 이 말은 올해 내가 들은 말 중에서 가장 훌륭했다.


분명, 언어로서의 내 발표는 엉망이었다. 그런데도 약 2시간 동안 동료들의 시선을 잡아 둘 수 있었던 것은 내 이론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로 슈테판 교수와 학생들은 내 말을 백 퍼센트 알아들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내가 발표하는 ‘마당’이라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과 뭔지는 몰라도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내 모습이 신기했단다. (쳇! 난 또... 착각할 뻔했다.)


우리만의 공간, '마당'


우리에게 '마당'은 중요한 공간이었다. 예부터 가난한 집이든 부잣집이든 그 크기만 다를 뿐 저마다 마당 하나씩을 가지고 있었다. 명절날 오후,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당 중앙에 멍석을 깔고 앉아 술을 마시는 삼촌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의 초점은 잃었지만 마당 한편에서 키득키득 웃고 있는 숙모들을 향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전이랑 막걸리 더 가져와!" 작은 삼촌이 소리를 지르자, 작은 숙모는 고개를 휙 돌린다. 숙모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나무 장작을 쌓아 만든 아궁이가 있다. 아궁이 위에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놓고, 기름을 발라 전을 부친다. 지글지글 기름옷을 입은 전이 익어간다. 작은 숙모는 작은삼촌 쪽을 힐끔 한 번 쳐다보고선 전을 입속에 넣는다. 목구멍이 다 보이도록 입을 벌리고선 후후 입김을 불어 뜨거운 전을 식힌다. 그리고선 또 키득거린다. 삼촌들과 숙모들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들어왔다. 개가 뛰어놀자 마당은 엉망진창이다.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며 할아버지가 회초리를 들고 방에서 나오셨다. 할아버지 고함에 마당은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마당에서 일어나는 혼인식, 초상집, 명절 제사 등은 대략 이런 풍경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인간미(人間味)를 생산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처벌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안방마님의 몸종 향단이를 담사리 최 씨의 아들 '돌쇠'가 잘못 건드렸다. 그것이 발각돼 대감마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돌쇠는 마당에서 모든 식솔과 노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멍석말이' 처벌을 받았다. 향단이도, 돌쇠도 모두 마당 위에서 수치를 당했다. 말 그대로 모든 게 까발려졌다.


'마당'에서는 권력이 움직인다. 돌쇠에게 멍석말이 처벌을 내렸던 대감마님이 대역죄인의 누명을 썼다. 의금부에서 나와 대감에게 사약을 내렸다. 대감은 임금이 내린 사약을 받아 들고 성은(聖恩)을 외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외마디를 남긴 체 마당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마당' 위의 권력자는 그보다 높은 절대 권력 앞에 굴복했다. 그렇다고 권력의 무게가 모두 위에서 아래만 흘러간 것은 아니다. 간혹, 임금의 잘못된 정책에 반대하는 성균관 유생들이 '임금의 마당'에 모여 석고대죄(席藁待罪)한 끝에 그들의 뜻을 관철한 역사도 있다. 절대 왕정시기에 마당에서 '민주주의의 그림자'를 보았다.


'마당'은 우리 민족의 기질을 그대로 표현한 공간이다. 민족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담겨 있다. 양반은 양반대로 천민은 천민대로 각자의 사회가 마당 위에 존재했다. 마당은 민중의 유희(遊戲)와 권력의 엄중함이 공존했던 우리 민족만의 공간이다. 과거의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우리 민족이 똘똘 뭉쳐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마당에서 생산된 우리 민족만의 기질(器質)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제는 우리의 거주 공간에 마당은 거의 없다. 나라가 잘살게 되면서 인구가 늘어났다. 인구가 많아지니 당연히 높은 아파트가 필요했다.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주택 구조는 서양식 주택 구조인 아파트가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지난해 통계만 봐도 1,000만 가구 이상이 마당이 없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본이 들어오면서 우리만의 공간이 사라졌다. 그런데 마당이 사라졌다고 우리 민족의 기질이 사라졌는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똑같은 구조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아파트에 들어갔다고 하루아침에 그 기질이 온순해질 리 없다. 아파트에 살지만 억제할 수 없는 에너지 때문에 하루가 멀다고 층간 소음 분쟁이 일어난다. 죄다 마당에서 놀던 버릇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권력이 잘못하면 일단 광장으로 나간다. 마당이 없으니 거기서 분출한다. 최근 광장의 의미가 다소 변질된 감은 있지만, 군사독재도 막지 못했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광장에서 이뤄졌다.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번엔 '마당'이 나를 살렸다. 슈테판 교수의 칭찬은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진출처: https://de.wikipedia.org/wiki/Datei:Innenhof_mit_Springbrunnen.JPG

독일의 건축 구조에도 마당과 비슷한 ‘중정’이라는 공간이 있다. 독일어로는 호프(Hof)라고 부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1가구에 1개씩 있는 공간이 아니라 호프를 4면으로 둘러싼 보눙(Wohnung, 독일식 아파트)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다. 건너편 보눙에서 창문을 열고 음악을 듣는다. 음악은 '중정'을 거쳐 모든 건물에 전달된다. 그 음악이 내가 좋아하는 폴 킴(Paul Kim)의 음악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고막을 찢는 'Razor'의 음악이라면 상황은 좀 곤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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