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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씨 Apr 15. 2022

청춘비가

개인적인 위로를 위한 선곡리스트 

#1

동화 속 삽화 마냥 아름다울 것 같은 세상 속의 주인공은 내가 될 거라는 말에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다. 크면 알게 될 거야. 

아직도 알아야 할 게 있다는 게 여전히 무섭네요 어머니.

길을 걷던 한 소년은 물었지
엄마 저건 꼭 토끼 같다. 라고..
심드렁한 엄마는 대답했지 얘야 저건 
썩은 고양이 시체일 뿐 이란다..

델리스파이스 -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


#2

어김없이 첫 몽정과 첫 번째 사랑이 찾아왔지. 그게 사랑이란 걸 깨달은 건 정말 아주 오랜 후였어.

미운털이라도 박혀서 기억에 남고 싶었던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불쾌함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지.

중2때까진 늘 첫째 줄에 
겨우 160이 됐을 무렵
쓸만한 녀석들은 모두 다 
이미 첫사랑 진행 중

델리스파이스 - 고백


#3

아주 서툴렀던 첫 고백. 그래 그때는 내가 사랑한 만큼 그 사람도 나를 알아줄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어.

왜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을까? 타인의 마음은 나의 거울이 아닌데.

이제는 보이나요
이미 다 얘기했는데
그래도 모른다면
나도 잊을까요

루시드 폴 - 보이나요?


#4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우습기도 한 시작도 못한 사랑의 애틋함.

나에게는 아주 기나긴 시간이 있었기에 외려 시간이 약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

이젠 헤어졌으니 나를 이해해줄까
사랑 없이
미움 없이
나를 좋아했다면 나를 용서하겠지

미선이 - 시간


#5

제대하고 뻘쭘하게 들어섰던 첫 강의실 앞 자리에서 마주쳤던 그녀.

솜털 갓 벗은 병아리 마냥 귀여웠던 그녀는 언제나 나의 밥 사준다는 말을 거절한 적이 없었어.

즐거운 목소리로 ‘네 저도 그 영화 보고 싶었어요’라고 대답하던 너의 목소리를 왜 난 바보 같이 나에 대한 호감이라 넘겨짚었던 걸까. 

넌 그냥 그 영화가 보고 싶었을 뿐인데.

맛있는 거 먹자고 꼬셔
영화 보러 가자고 불러
단대 호수 걷자고 꼬셔
넌 한 번도 그래 안 된다는 말이 없었지

꽃송이가 - 버스커 버스커


#6 

친구들과 여행 간 밤바다에서 술 한잔 먹고 파도 소리 들려주겠다고 너에게 전화했던 그 순간의 정적과 싸늘함을 아직도 기억해. 

바쁘다는 너의 말과 함께 그 날의 파도 소리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되었지.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여수 밤바다 - 버스커 버스커


#7

안되는 건 안되는 거고

없는 마음이 애타는 구걸로 돌아서지는 않는 법.

진심은 꼭 통한다는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의 잠언이 얼마나 글러먹은 얘기였는 지 뒤늦게 원망해서 뭐한담.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때 그 맘이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앵콜 요청 금지 - 브로콜리 너마저


#8

젊음이란 이름만으로 반짝반짝하던 시절은 순식간에 끝나고

우리는 모든 낭만을 갑작스럽게 종료하고 잠이 아직 덜 깬 상태로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직 사랑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사랑이 사치라고들 한다.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졸업 - 브로콜리 너마저


#9

자다 깨어 머리 맡에 둔 자리끼를 찾다가 손에 잡힌 콜라캔.

허겁지겁 들이킨 캔 속에 들어있던 건 눅진 하게 식은 콜라와 간밤에 뱉은 가래와 담배꽁초의 콜라보레이션.

반지하 방으로 하루 30분 가량만 얼굴 보여주시던 햇볕은 구토 하는 내 바짝 마른 등짝 위로 뜨끈하게 쏟아졌었지.

뭐 한 몇 년 간 세숫대야에 고여있는 물 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 보면은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

싸구려 커피 - 장기하와 얼굴들


#10

또 다시 사랑을 한다. 더 이상 풋풋하지도 않고 눈가가 시큰해지진 않지만 가슴은 쿵쿵 거리고 아랫도리에 피가 잔뜩 몰린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서투르거나 어수룩하거나 낭만적이지 않아. 지갑은 가벼워도 난 사랑을 위해 낭만을 연기할 마음 가짐을 갖출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혹시나 내가 못된 생각 널 갖기 위해 시꺼먼 마음
의심이 된다면 저 의자에 나를 묶어도 좋아
창밖을 봐요 비가 와요
지금 집에 가긴 틀렸어요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 10cm


#11

혹시 나라는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닐까? 난 아직 멀쩡히 살아 있는데 벌써 이 세상은 나에게 사망 선고를 내린 것 같다. 거리에 마주치는 모두의 시선이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 난 좀비다. 잉여가치 생산의 기회조차 박탈되어 버린 채 도사의 종소리에 발맞춰 움직이는 법만 간신히 배운 강시다.

이미 늦었다 말하지 마요 나는 아직 숨을 쉬어요
가망 없다고 하지 마요 무너진 건물 당신 발 밑
아래 숨 쉬고 있죠 이 미어 터진 좁은 공간에
나는 아직 살아 있죠 이 빌어먹을 텅 빈 공간에

여기 사람 있어요 - 중식이 밴드


#12

파도에 쓸려 가는 모래탑 마냥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흩어져 간다. 한 때는 절실했던 시간들이 이젠 그저 아랫 목에 개어둔 오래 빨지 않은 담요 같이 편안하고 구차하다. 싸우다가 싸우다가 무뎌진다. 그렇게 멀어진다. 

마주 본 식탁에 성의 없는 젓가락질
시간이 지루하네 느리게 흘러가네
마주 본 그대의 성의 없는 반찬을 보면 
그대는 철이 없네 우리 둘 변해가네

그대는 철이 없네 - 장재인 (Feat. 김지수)


#13

고등교육이 내가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걸 배우는 시간이었다면 사회의 문턱에서 지금까지 내가 배운 건 그 허구를 하나 하나 포기 하는 법이었지. 나에게 욕을 하는 건 돈 주는 고용주가 아니라 저임금 고효율을 추구하는 시스템의 알고리즘이야. 웃어. 밝게 웃어.

또 표정이 굳어 이유가 없어 어이가 없어
무슨 욕을 먹는 게 내겐 업무의 옵션인가 봐
난 그럴 때마다 속이 쓰려와 가슴이 아파
그 분 내 이름을 부르면 우선 겁부터 나지

죽어버려라 - 중식이 밴드


#14

텅 빈 방안에서 기계적으로 재생한 야동 속에서 만난 한 때 숨 막힐 정도로 내 가슴을 뛰게 했던 첫 사랑의 기억. 가장 서글픈 모습으로 부정 당한 추억들.

난 야동으로 거시기를 위로 하려다 이제 추억 속에서 현실을 위로 받지 못하는 저주에 걸렸다.

카메라를 보는 너 모니터를 보는 나
우린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전혀 상관 없는 남인데
왜 자꾸 성질이 나지
너를 사랑했던 내가 그 때 그 시절 니가 떠올라

야동을 보다가 - 중식이 밴드


#15

나 빼고 다 멋지게 사는 것 같네. 모두가 빛나네. 나는 그림자네.

그렇게 번쩍 번쩍 하는 세상엔 별 의미 없는 텅 빈 여백 같은 시간을 인내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혼자 위로하네.

난 별 일 없이 산다. 니들은 매일 매일이 별 일 이겠구나.

오늘은 뭐 먹나.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아주 그냥

별일 없이 산다 - 장기하와 얼굴들


#16

그녀가 떠난 후 날 찾아온 이 외로움과 추위 모두 존재 자체가 죄악인 나에게 내려진 천형인 걸까. 속죄의 방법은 있는걸까.

어디서 부는 지 모를 바람이 구멍난 가슴을 스친다. 난 덜그럭거리며 쏟아질 것 같은 허약한 심장을 부여잡고 비틀 비틀 걷는다.

내 맘에 덧댄 바람에 창 닫아보아도
흐려진 두 눈이 모질게 시리도록
떠나가지 않는 그대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 루시드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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