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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rat Dec 12. 2017

버릴수록 채워지다

다큐  <미니멀리즘> 


꽤 오래전에 본 다큐인데, 이제야 리뷰를 적어본다.



<다큐> 미니멀리즘 -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원제 : MINIMALISM: A Documentary About The Important Things)



Netflix 캡쳐



Official Trailer : https://youtu.be/0Co1Iptd4p4

공식 예고편 (출처: 유튜브)










얼마 전부터 '시발 비용'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정확한 시작은 잘 모르겠으나 아마 한 트위터리안의 트윗에서 시작된 듯하다) 인터넷에서 쓰이기 시작했고,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시발 비용'이란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돈'이다. 예를 들어, 화가 나서 시킨 치킨, 대중교통을 타기엔 너무 피곤해 타버린 택시 비용, 시험을 망치고 질러버린 물건값 같은 것들이다. 이 외에도 우리 일상적으로  끝없는 '시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시발 비용'으로 정의하기 전에도 우리는 마음속의 공허함이나 벅차오르는 스트레스를 소비로 풀어왔다. 홧김에 뭔가를 '지르'거나, '지름신'이 강림하셨다거나.  더없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 2017년의 우리는 스트레스를 '소비'로 푸는데 너무나도 익숙하다. 


인간이 물건을 소유하는 게 아니다. 물건에 얽매여 소유당하는 것이다. -시그리 운센트(노르웨이 소설가)




현대는 '소비의 시대'다. 매년 미국에서는 연말에 온 나라가 들썩이는 '소비 축제'가 열린다. 11월 넷째 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에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이름 붙여진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 추수감사절 휴일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소비자들이 온라인 쇼핑을 즐기면서 온라인 쇼핑몰의 매출이 월요일에 급등한데서 유래한 '사이버 먼데이(Cyber Monday)'가 그것이다. 미국인들은 농담으로 한 해를 이때 쇼핑하기 위해 보낸다고도 한다.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이하여 상점 바깥에 전날부터 길게 늘어선 줄과 사람들이 상점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가 물건들을 쟁취(?)하는 광기 어린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비주의의 초절정을 보여주는 미국에서 시작된 이 축제들은 바다 건너 우리에게도 전해져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를 탄생시켰다. '직구족'도 분주해졌다. 중국 최대 인터넷 쇼핑몰인 알리바바의 올해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광군제' 하루 매출은 28조 원에 달했다.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발 벗고 나서서(?) 소비를 부추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여기저기서 철장 속에 갇혀 있다.  -장 자크 루소, <사회 계약론>




자본이 증가하고, 생산량이 증가하니 잉여생산물을 남기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는 소비가 필요하다. 때문에 기업은 온갖 광고와 마케팅 전략으로 소비를 촉진시킨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반드시 필요한 것' 같이 느끼게 만들면서. '더 팔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때문에 소비는 아무리 채워도 궁극적 만족이 없다. 뭔가를 소비해도, 또 새로운 것이 소비자를 현혹한다.   


하나의 욕망이 채워지면 또 다른 욕망이 생긴다 - 에피쿠로스, <격언>


필요 없는 것이 끝없이 늘어나는 과정, 그것이 바로 문명이다.   -마크 트웨인




이렇게 상품 판매를 위한 전략에 휘말린 현대인들은 강박적이고 집착하는 소비주의의 성향을 보인다. 더 많은 물건을 원하고, 구입하고, 버린다. 현대인들은 "우리는 자유롭다"라고 믿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가?


자신을 구속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가 열린다.  -렌 말루 앵(캐나다 작가)









소비주의 세상에 물음을 던지고 반기를 던지기. 이것이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다. 더 적게 소비하고 덜 버리는 삶의 방식이다.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만을 지칭하진 않는다. '덜 소비하기'와 '덜 채우기'에는 생각, 생활 습관, 움직임, 관계, 가치관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그리고 이런 삶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들을 '미니멀리스트'라고 한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물건을 덜 사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단순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천사인 척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사샤 기트리(프랑스 극작가)


최대한 적게 가져야 인생이 편안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마제국 황제, 철학자)




이 다큐는 미니멀리즘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본 지가 오래되어서 상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큐를 보면서 떠오른 책이 있는데, 도미니크 로로의 <지극히 적게>다. 일본의 선불교와 동양 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받은 프랑스 수필가가 미니멀리즘에 대해 쓴 책이다. 물건부터 인간 관계까지, 꽤나 자세히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삶'의 단면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매 챕터마다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일종의 '격언'이나 '명언'들을 실어놓았는데, 그러고 보면 '미니멀리즘'이란 것이 최근에 어디선가 짜잔! 하고 나타난 것은 아니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에른스트 슈마허(1911~1977)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고 말했고,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은 현대인은 '소비자'라는 정체성으로 규정된다며 소비지상주의를 비판했다. 소비 중심주의, 물질중심주의를 향한 반발이 최근에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로 규정된 것이다.  


인간의 가장 소중한 보물은 적은 것에 만족하는 삶이다. 적은 것에 만족하면 부족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루크레티우스(고대 로마 시인)


L'INFINIMENT PEU by Dominiaue Loreau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소비'에 몰두한 삶의 문제는 무엇인가? '소비'는 나를 위한 행위다. 내가 '소비'하면 상대방은 가질 수 없다. 일종의 자기 몰두다. 소비는 자기 자신만 채우려고 하는 자기중심적인 상태에 빠지게 한다. 자기에게 갇히고, 자기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상태인 "영적 세속성"( by 프랑스의 신학자 앙리 드루박)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장 위험한 상태'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은 '나' '나의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나 자신을 재산, 돈, 힘, 명성을 통해 드높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는 비참함을 초래하기도 한다. 소유는 이기주의에서 나오고, 이기주의는 불행을 가져온다. '나', '나의 것'은 우리를 속박하고 노예로 종속시킨다.     - 스와미 비베카난다, <카르마 요가>


 


'소비'는 '버림'을 동반한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1년에 230억 개의 일회용 컵이 소비된다. 재활용률은 1%에 그친다. 남태평양 부근에는 우리나라의 3배 크기의 쓰레기 섬이 떠다닌다. 2050년에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예정이다. 우리의 지구가 점점 더 쓰레기 더미에 잠식되고 있다. 물건을 버리는 게 습관이 된 우리는 결국 사람도 쓰고 버린다. 비정규직 노동자, 기간제 노동자, 하청 노동자들을 쓰고 버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우리나라는 2015년 통계청의 통계에 따르면 하루에 노동을 하다 죽는 노동자가 5~6명 정도 생긴다. 이는 산재로 처리되는 사람들만의 숫자니 아마 실제로는 더 죽을 것이다. 그리고 사망자의 95%는 하청노동자들이다. 가장 위험하고 열악한 곳에 보내진다는 소리다. '소비'가 무서운 것은 '버림'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원대하고 고귀한 일을 하고 싶다. 그러나 나의 첫 번째 임무는 소소한 일부터 대단하고 고귀한 일처럼 대하고 완수하는 것이다.   -헬렌 켈러 




소비는 끝없는 자기 팽창이자 자기 확대다. 더 사면 내 가치가 올라간다고 느낀다. 미니멀리스트들은 이에 반대하여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Less is more)를 외친다. 이 역설은 어떻게 성립될까? 소비는 채움이다. 소비로 나를 채울수록 상대방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든다.  소비에 몰두한 삶은 타자가 내 것을 노리지 못하도록 항상 경계하는 삶이다. 때문에 타자는 나의 이웃이 아니라 경쟁상대다. 


그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켜라.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성경, <구약성서> 잠언 4장 23절




자기 자신을 완성한다는 것은 타자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덜 갖고, 덜 채우면서 남을 위한 자리를 내주기. 상

대방을 위해 나를 비우는 검약과 절제. 성경 용어에 '페리코레시스'(상호 공재 또는 상호 침투)라는 것이 있다. '페리'는 '원'을 뜻하고 '코레시스'는 춤을 뜻한다. 즉, 원을 이루고 춤을 추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강강술래를 떠올리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행위는 서로가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침투되게 만든다. 


정신을 바짝 차리되, 마음은 열고 비워 둘 필요가 있다.    -올더스 헉슬리(영국 소설가)




여기서 '실존'의 뜻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실존하는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실존'은 영어로는 'existence' 다. 뜻을 생각해 보면 '밖'(exit)에 '서다'(stance)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인간 실존이란 나 자신 밖에 서는 것이다. 나의 완성은 '나'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밖'에 설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의 바깥'에 서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워야 한다. 그리고 그 빈 공간에 타자를 채워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밖으로"가라고 말했다. 자기 자신에 파묻히지 말고 '밖으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타인을 채우는데, 특히 약자들을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노예가 더 이상 노예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족쇄가 풀린다.    - 마하트마 간디 


'나 '라고 부르는 작은 것을 던져 버렸더니 오히려 나 자신이 광활한 세상이 되었다.   -무소 소세키, <선불교 이야기> 




'의도적인 비움'은 성경에도 나온다. 십계명의 '안식일'이 그것이다. 더 생산할 수 있어도, 더 일할 수 있어도 일부러 쉬는 것이다. 내가 쉼으로 인해 남들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안식'은 끊임없이 생산과 소비를 할 수 있어도 거부하는 것이다. 덜 가질수록 더 채워지는 삶. 이것이 미니멀리즘의 궁극적인 의미다. 


시간을 흘려 보내고, 시간 여유를 갖고, 시간 낭비도 하고, 그때그때 살아가는 것이 나의 취미다. 

- 프랑수아즈 사강, <카르페 디엠>







신은 작은 것 속에 깃들어 있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프랑스 작가)










*본문의 격언과 인용구들은 모두 <지극히 적게> (도미니크 로로 지음, 북폴리오 출판사)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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