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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rat Jan 02. 2021

2020년 마무리 - 그동안  읽은 책들

9,10,11,12월 읽은 책들

*커버 이미지 : Photo by Jude Beck on Unsplash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지배한 2020년. 야속하게도 시간이 참 빨리 흘렀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새해다.


타인과의 접촉이 금지되는 세상. 외부 활동이 적어지다 보니 실내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모범 시민으로서 '집콕'에 충실하다 보니, 그간 평소보다 책을 더 읽었다. (책값을 엄청 썼다. 아직도 사놓고 못 읽은 책이 산더미다.) 휴가 동안 방에서 책만 읽은 때도 있었다. 빌 게이츠며 오바마며 휴가 동안 수십 권 책을 싸들고 별장으로 가지 않나. 나름 따라 해 보니 만족스럽다.


평범한 일상이 지워지다 보니 자유로운 종이 속 세상을 더 찾았나 보다. 특히 소설을 많이 읽었다. '문학이 세상을 구한다'란 진부한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니까.


한꺼번에 정리하다 보니 텍스트가 좀 길어질 것 같다. 그래도 한 해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적당히 남겨본다.


모아놓으니 꽤 많다



1.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장편소설 / 문학동네 / 2020.06 / 340p

정말 재밌게 읽었다. '와 이렇게 쓰네' 싶을 정도로 흡입력이 좋았다. 소설 자체에서 풍겨오는 분위기도 매력적이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어 졌다. 이 책은 구성부터 완성까지 5년이 걸렸다고 한다.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는데, 적절한 설명이다. 3대에 걸친 여성 중심 서사로 이어지는 이 소설에선 당당한 여성, 상처 입은 여성, 재밌는 여성, 신기한 여성, 무난한 여성, 화내는 여성까지 모든 여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문득 '어떤 게 '살아가는' 거지?' 생각이 들 때 또다시 읽고 싶은 책.



2. 여름의 빌라 - 백수린 소설 / 문학동네 / 2020.07 / 292p

작가의 단편 소설들을 모은 소설집. '여름'이 잘 어울리는 책. 읽는 내내 창가의 여름 햇살을 떠올리게 한다. 이야기 각각이 다른 색의 수채화 물감으로 물들이는 느낌이랄까? (나의 문학적 표현엔 한계가 있다) 현실적으로 말해보면, 문학적 능력(?)이 뛰어난 친구가 즉흥에서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서 얘기해주는 느낌이랄까... 어떤 사물을 보다가, 어떤 경험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떠올리게 됐을까? 생각하게 된다. 확실히 이 소설들은 이 갑갑한 시기에 심심한 위로가 된다.



3. 복자에게 - 김금희 장편소설 / 문학동네 / 2020.09 / 244p

제주도의 파란 하늘과 바다가 생각난다. (제주도 가고 싶다!) 소설의 신비한 마법은 화자의 인생에 어느새 내가 몰입하는 것인데, 틀림없이 이 소설은 그 부분에서 탁월하다. 우리가 '그렇게' 강한 사람들이 아니어도, 실패를 이겨낼 힘 정도는 있다고 말하는 소설. 상처의 치유도 대단한 건 아니다. 상처란 바람에도 깎이는 법이니까.

제주 속담에 '속상한 일이 있으면 친정에 가느니 바다로 간다'는 말이 있다. 복자네 할머니에게 들었지. 나는 제주, 하면 일하는 여자들의 세상으로 읽힌다. 울고 설운 일이 있는 여자들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무한대의 바다가 있는 세상. 그렇게 매번 세상의 시원을 만졌다가 고개를 들고 물밖로 나와 깊은숨을 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다 잘되지 않겠니?      -189p



4. 내가 사랑한 시옷들 - 조이스 박 / 포르체 / 2020. 03 / 320p

조이스 박 영문학 교수가 모은 30편의 시들이 수록돼 있다. 원문도 함께 수록되어 바로 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디선가 본 시도 있고, 처음 만난 멋진 시들이 많다. 내가 '시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역시나 시가 주는 울림에 대해서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때때로 계속 꺼내 읽을 만한 책이다. 새삼 '시'를 번역하는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5.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문예출판사 /2018. 05 / 140p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멘토링' 편지를 모은 셈. 이 책에 나오는 구절 일부를 우연히 다른 책에서 읽었는데, 짧은 문장인데 맘에 들어서 바로 주문했다. 시인이 되고 싶은 한 청년이 커리어에 대해, 인생에 대해 릴케에게 편지를 보내 그 뒤로 둘이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생판 남(지인의 소개가 있었지만)의 고민에도 이렇게나 정성 어린 답장들이라니! 내용들도 참 좋다. 텍스트에서 "아 릴케란 사람은 참 따뜻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라고 느꼈다. 삶에 대한 그의 생각과 태도도 본받을만하다.


딴말이지만.  요새 '꼰대'란 말이 유행처럼(?) 쓰인다. (비합리한 '꼰대질'은 나도 싫다) 그런데 상사, 윗사람, 연장자, 선배, 부모님까지.. 누군가가 나에게 조언을 주거나, 혼을 내거나('태클'말고), 관심 갖는걸 '꼰대'라는 단어로 묶이는 경우가 있다. 사실 혼내고, 지적하는 것도 관심과 애정에서 나온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는 말도 있듯이. 누군가를 '혼낼' 열정이 있단 건 아직 그 일이든, 조직이든, 관계든 열정이 있는 거다. 정말 마음이 뜨고, 관심이 없으면 누군가를 혼낼 의지 따위 없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되는 나랑은 상관이 없으니까.

친애하는 카푸스 씨, 신이 시작하기 위해서는 필시 당신의 그러한 삶의 불안을 필요로 한다는 경건한 감정으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십시오. 당신이 놓인 과도기의 이 나날이야말로, 언젠가 당신이 어린아이였을 때 숨도 쉬지 않고 신을 만드는 일에 관여하고 있는 때입니다. 언짢아하지 마시고 참으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봄이 오려고 할 때 대지가 그렇게 하듯, 신의 생성을 어렵지 않게 해주는 것임을 생각하십시오. 아무쪼록 밝은 마음으로 안심하고 계십시오.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52p



6. 마음 챙김의 시 - 류시화 / 수오서재 / 2020.09 / 184p

코로나 시국을 잘 겨냥해서 나온 책이라고 본다. 팍팍한 세상에서 시 한 줄 읽는 여유는 가질 수 있지 않나! 류시화 시인이 모은 시들은 '믿고 읽는' 시들이긴 하다. 정말 '마음 챙김'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요즘, 그래도 시가 있어 다행이다.



7. 슬픔이여 안녕 - 프랑수아즈 사강 / 아르테 / 2019. 09 / 272p

왜 사강을 이제야 읽었을까? 뒤늦게 이 천재 작가에 빠졌다. 글을,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잘 쓸까.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글로벌 스테디셀러인 이 책은, 무엇보다 재밌다. 2020년의 내가 읽어도 재밌는데 1950년대에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얼마나 더 재밌었겠나. 심지어 19세 소녀의 데뷔작이라니... 이 책을 시작으로 사강을 찾아 읽었다.



8.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 민음사 / 2008. 05 / 160p

이 책은 제목부터 너무 유명해서.. 최근에도 이 제목을 가져다 쓴 드라마가 방영된 걸로 안다. '...' 이  말줄임표에서 오는 여운과 분위기가 가히 천재적이다. 사강이 꼭 말줄임표가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는데. 물론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은 이유가 있을 만큼 재밌다. 일단 재밌다. 현시대의 드라마 작가를 해도 정말 잘했을 것 같다. 사강은. 플롯이며 캐릭터 설정 자체가 '여성'의 시선, 욕망(?) 중심이란 것도 맘에 든다.



9.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 프랑수아즈 사강 / 소담 출판사 / 2009. 11 / 216p

사강의 에세이들을 모은 책. 사강이란 사람 자체에 대해서도 궁금해져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는 에세이(글)를 읽는 것만큼 '직빵'이 없다. 천재 작가로, 셀럽으로, 폭풍 같은 인생을 살았던 사강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살았는지 엿볼 수 있어 재밌다.


사강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의 그녀를 세계에서 사랑받는 작가로 만들고, 지탱해준 것도 독서였다.

나는 지나치게 나 자신으로 강렬하게 살았던 것이다. 그런 만큼 다른 누군가가 내 대신 살게 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의 존재가 완벽하게 느껴지도록, 다른 누군가가 살아가는 모습을 책을 통해 읽을 필요가 있었다. -'독서' 중



10. 봉쥬르 뉴욕 - 프랑수아즈 사강 / 학고재 / 2015. 06 / 144p

여행과 사강의 조합이라니. 안 읽을 이유가 없지.. 뉴욕, 베니스, 나폴리 등 사강이 세계 곳곳을 다니며 기록한 에세이 모음집. 각각 짧아서 부담 없다. 코로나로 해외는커녕 국내 여행도 힘든 지금, 반세기 전 천재 작가의 여행기를 읽는 건 위안이 된다. (내가 워낙 작가들의 여행기를 좋아하기도 한다. 같은 장소에 가도, 같은 여행을 가도 작가들은 이렇게 표현하고 기록하는구나 감탄할 수 있어서.)



11. 끌리는 말투에는 비밀이 있다 - 장차오 / 미디어숲 / 2020.11 / 240p

말 즉 대화 방법에 대한 지침서.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단 조상들의 가르침은 틀린 게 없다. 자세한 예시로 '좋은 발화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결국 좋은 발화란 '타인을 고려한' 발화다. 즉 '배려'고 더 깊이는 '공감'이겠다.  나이 들수록 느끼지만 '대화력'이 누군가의 경쟁력과 매력을 결정짓는 큰 포인트다. 같은 주제로, 같은 상황에서, 같은 의도로 말할 때 사람마다 정말 다르다.



12. 우아하게 이기는 여자 - 윤여순 / 비즈니스북스 / 2020.09 / 240p

저자는 한 층에 여성이 한 명 있을까 말까 했던 90년대 대기업에서 그룹 내 최초 여성 임원을 지냈다.'일하는 여성'으로 (남성 중심 기업문화에서) 느꼈던 어려움, 고민, 보람, 성취, 연대를 이야기한다. 그 길을 '먼저 가 본'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읽어보면 정말 단단한 분이란 게 느껴진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자문하게 되기도. 아직까지도 '최초' 여성 임원, 여성 대표 기사가 매해 나온다. 많이 바뀌고는 있지만, 여전히 '일하는' 사회는 남성 중식적이다. 금융사나 기업의 임원 소개는 물론이고 각종 포럼들이나 강연까지 초청 연사가 100% 남성인 경우가 허다하다. '최초' 타이틀이 붙지 않는 그날이 어서 왔으면. (우리나라 상장사 여성 임원 비율은 OECD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친다.)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서 꽃길만 걸으신 줄 알았어요"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처음 걷는 길이어서 더 척박했다.    -43p
인간은 경쟁하며 성장한다. 여성이 일하는 사회에 발을 디디면 소수의 여성은 다수의 남성이 정해놓은 룰에 따라, 그들의 잣대에 따라 평가받고 비교된다. 그것도 모자라 여성이 제대로 일하려면 남성을 이겨내야 살아남을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경쟁의 틀에 나를 담으면 한없이 휘둘리고 피폐해진다. 나에게 꿈이 있고 비전이 있으며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나 자신과 경쟁해야 한다. 이런 경쟁에 나를 담으면 무한한 성장을 체험할 수 있다.    -92p
여성은 여성이 겪는 모든 것에 관해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남성은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여성의 일은 남성이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에 맞추어 얘기해서는 안 된다.    -137p



13.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말기를 - 아서 P. 시아라미콜리, 케서린 케첨 / 위즈덤하우스 / 2020. 11 / 460p

저자는 하버드 의대 임상심리학 교수이자 심리학자다. 평생 '공감'에 대해 연구했다. 그를 '공감'에 빠져들게 한 도화선은 동생의 자살이다. 가장 가까운 타인인 가족이 극한의 절망감을 느낄 때 '나'가 할 수 있는 건 뭐일지(뭐였을지), 그런 이들을 절망에서 꺼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뭐일지 고민하다 나온 답이 '공감'이었던 셈이다.


가족이 자살한 사람이 쓴 글을 종종 읽는다. 분노, 미안함, 절망, 안타까움, 자책감, 원망까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없을 만한 감정들이 담겨 있다. 이런 글들에 가장 크게 담긴 감정은 '후회'인 것 같다. '왜 더 따뜻한 한마디 해주지 못했을까' '그렇게 말하지 말걸' '사달란 거 사줄걸' '짜증 내지 말걸... 그게 뭐라고'. 저자는 남들이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즉 자신처럼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예전에 공감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책 읽고 글로 남겨보는 것도 '공감능력' 배양의 취지가 있다고 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부가 많이 됐다. 이론적인 내용이 아니라, 저자가 오랜 기간 만나온 '정말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공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타인을 향한 공감은 곧 나를 아는 것이고, 나를 완성하는 길이다.

타인을, 그리고 그들의 세상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인 관점을 포기해야만 한다. 공감이 가져다주는 타인 중심적 관점에서 우리의 문제는 그렇게 크고 복잡해지지만 분명 훨씬 더 흥미로운 장소가 된다. 우리는 그 세상을 자유로이 탐구하고, 타인의 삶 속에 자신을 흠뻑 빠뜨리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이것이 바로 공감의 힘이다. -158p
공감의 겸손은 인생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업적이 서로를 아끼고 위로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발견된다. 우리의 주된 존재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거나 부유하거나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관계, 즉 상대를 발견하고 그 사람 없이는 오래 지속되는 삶의 의미나 목적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 깊고 오래 지속되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303p



14. 화폐전쟁 - 쑹홍빙 / 알에이치코리아 / 2019.08 / 512p

나온 지 10년 된 책이고, 산 지 반년은 된 책이다. 어쩌다 올해의 끝자락에 와서야 읽었다. 이 책이 히트 쳐서 뒤에 시리즈로 책이 몇 개 더 나왔다. 여하튼, 재밌게 읽었다. 두껍지만 거의 하루 만에 다 읽은 것 같다. 저번 포스팅에 올린 <금융의 지배>가 교과서적인, FM 같은 '금융의 역사'라면, 이 책은 그 역사를 만들고 좌지우지한 사람들(가문들)에 대한 이야기다. '비하인드 스토리' 느낌? 교과서로, 미디어로 배우고 접하는 역사는 표면적인 게 대부분이다. 뒤에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이해관계가 얽힌 건지, 무슨 목적으로 누가 왜 이런 일을 만든 건지. 이런 것들이 훨씬 재밌을 때가 많다! 물론 저자의 의견(?)에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 배경을 이해하고 세상의 흐름을 더 넓은, 더 깨인 시각으로 보게 돕는 책임은 분명하다. 책 내용을  블라블라 쓰기엔 길어질 것 같아 줄여야겠다.



15.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 호프 자런 / 김영사 / 2020.09 / 276p

<랩 걸>의 저자 호프 자런의 신작. '지구과학자가 풀어내는 삶과 지구, 풍요에 관한 이야기'란 설명에 동의한다. 원제는 <The story of more>.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진 건 사실이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가장 많이 소비하면서 가장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 더 안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구는 달라졌다. 이제 우리는 '하나뿐인 지구'의 지속성을 지켜야 한다. 호프 자런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생태계 파괴, 전염병, 기후변화 등 '달라진' 지구에 대해 말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2011년 개봉한 미국 영화 '컨테이젼'이 화제가 됐다. 갑자기 전 세계에 퍼진 전염병에 관한 이야긴데, 내용이 상당히 사실적이라서 '코로나 19를 내다본' 작품이라고 재평가(?) 받은 것. 나도 그 영화를 봤는데, 정말 현실과 다를 게 없더라. (치사율이 훨씬 높은 것 빼고) 영화를 보면, 결국 그런 변이 바이러스가 생긴 건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이 밀림을 밀어버리고, 터전을 잃은 박쥐는 가축에게 날아가 바이러스를 옮기고, 인간은 그 가축을 도살해 섭취하면서 바이러스가 시작됐다.


나 하나 사는데 하루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지 생각하면 새삼 끔찍하다. 배달음식, 마스크, 새로 산 공책을 감싼 비닐, 식후 마신 커피 컵, 출퇴근을 위해 탔던 버스 매연까지.. 끊임없이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 물론 '폴루션 제로'의 삶을 사는 건 힘들다. 다만 줄일 수는 있다. 더 반성하고, 더 자각하고, 노력해야겠다. 지금 이 시기에 딱 우리가 읽어야 할 책.


*최근 읽은 '소비하지 않는' 삶에 대한 뉴욕타임스 기사.

https://nyti.ms/3nYf0ym



16. 증언들- 마가렛 애트우드 / 황금가지 / 2020. 01 / 600p

<시녀 이야기> 출판 15년 후 나온 후속작. 2019년 부커상 수상작. <시녀 이야기>를 워낙 재밌게 읽어서 당연히 바로 구입은 했는데 이제야 읽었다. 역시나 기대만큼 재밌었다. 초반부엔 <시녀 이야기> 디테일을 많이 까먹어서 좀 지루한 감도 있었는데, 갈수록 정말 빠져들어서 말 그대로 새벽까지 졸린 눈 비비며 끝냈다. 마지막 쪽으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져서...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그 이야기 속에 들어간 것처럼 생생했다.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가질까??



17.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양귀자 장편소설 / 쓰다 / 2019. 04 / 368p

1992년에 출판돼 바로 페미니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그 해 최고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평범한(하지만 엄청난 재력!) 젊은 여성이 당시 최고 인기 꽃미남 남자 배우를 납치해 감금하는 스토리라니. 지금 읽어도 상당히 신선하다. 화제가 됐을 수밖에! 게다가 이 주인공의 거침없고 대담한 행보, 시대를 한참 앞서가는 생각이라니... 때론 '충격요법'이 가장 효과가 좋다. 파격적인 줄거리로 현실을 뒤집으면서 반대로 우리 현실의 성 불평등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문학의 존재 의미를 보여주는 소설.  



18. 두 도시 이야기 - 찰스 디킨스 / 허밍버드 / 2020. 12 / 698p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단행본.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을 가진 소설. 오래전 청소년 때도 읽었는데, 집중해서 읽었던 것 같지 않다. 다시 보니 새삼 대단한 소설이다.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이면서 개인의 사랑과 희생을 담은 대서사시. 1859년에 발표된 소설이란 점을 고려하면 더 대단하다. 지금 나와도 할리우드에서 바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할 만한 대중성과 예술성...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계속 사용하는 장치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잠깐 200년 전 격변기에 다녀온 기분이다. 꽤 두꺼움에도 빨리 끝을 보고 싶어서 새벽에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러고 보면 소설의 힘은 참 신기하다. 찰스 디킨스는 2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서울에서 누군가가 새벽까지 이 책을 보며 감탄하고 감동할 줄 상상이나 했을까?



19. 이선 프롬 - 이디스 워튼 / 민음사 / 2020. 08 / 212p

이디스 워튼은 <순수의 시대>로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다. 미국 여성 작가 중 순수 문학의 길을 걸은 최초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중 <이선 프롬>과 <여름>은 일종의 '세트'다. 두 소설 다 자전적 요소를 갖고 있기도 하고, 섬세한 심리 묘사가 두드러진다. 이선 프롬의 결말은 상당히 파격적이어서 영화와 연극으로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아내(지나)와의 결혼 생활 중 젊은 여성(매티)을 사랑하게 되는 설정이 '결혼 후 젊은 여자에 눈을 돌리는 남성'이라고 이해하면 거부감(?)이 든다. (원문에 어떤 표현인지 모르겠는데, '아저씨'로 번역돼  더 그런듯. 이선 프롬은 28세다.) 이선 프롬이 남자로 설정돼 있어서 그렇지 이디스 워튼의 자전적 성격이 크다. (워튼 본인이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겪으며 다른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이선 프롬은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과 질서, 규칙에 자신의 욕망을 억압한 모두의 내면 속 자화상인 셈이다.



20. 여름 - 이디스 워튼 / 민음사 / 2020. 08 / 308p

<여름>은 미국 문단에서 여성의 성적 열정을 다룬 최초의 문학이다. 감각적인 문장과 대자연 배경 묘사, 여성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한 여성의 '성장'의 중심에 '성적 욕구'를 중심에 뒀다는 점이 그 시대엔 파격적이었다. 지금에야 '이게 뭐?'라고 할 수 있지만.


주인공 채리티는 시골에 사는 18살 여성이다. 자신을 키워준 후견인 로열 씨에게 청혼을 받고 증오와 역겨움, 분노를 느낀다. 채리티 입장에선 키워준 할아버지가 아내가 죽으니까 갑자기 나한테 결혼하자는 거다. (물론 맥락상 '보호'의 의미가 크다) 그러다 채리티는 어느 날  젊고 건장하며, 똑똑한 건축가 청년 하니에게 마음을 뺏긴다. 청춘남녀가 눈 맞는 건 자연의 이치. 다만 채리티와 하니는 교육, 집안 등 모든 환경이 너무 다르다.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하긴 하지만, 현실의 벽은 컸다. (하니는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다.그 '여름'의 채리티를 사랑했을 뿐. 물론 채리티도 그 '여름'의 하니를 사랑했던 것.)


<여름>이란 제목이 정말 잘 어울린다. 배경인 한여름 숲 속의 찬란함, 여름밤 폭풍우까지 그 둘의 사랑을 돋보이게 한다. 이 둘의 사랑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반짝 빛났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랄까.



21.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 치누아 아체베 / 민음사 / 2008. 02 / 221p

작가인 치누아 아체베는 2007년 부커 상 수상 작가다. 이 작품은 폭력적인 서구 세력에 맞서 부족의 문화와 풍습을 지키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서구 세력의 침입으로 서서히 몰락하는 과정이 생생히 담긴 소설로,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의 고전으로 꼽힌다. 아프리카 문학은 생소하지만 오히려 생소해서 읽어보고 싶었다. 19세기 말 아프리카의 우무오피아 마을이 배경이고 오콩코라는 남성이 주인공이다. 재밌는 점은 서구의 침입을 다루고 있지만 이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지켜온 생활과 풍습, 문화를 상세히 보여주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는 점이다. 부족의 생활상, 오콩코의 인생을 한참 읽어야 서구 세력의 침입이 시작된다. 그 이후 과정도 길게 나타나진 않는다. 그만큼 갑자기 나타난 서구 세력이 빠르게 원주민 문화를 잠식한 사실을 부각한다.



22. 화이트 호스 - 강화길 / 문학동네 / 2020. 06 / 300p

'여성들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시작되는 지독하고 아름다운 고딕 스릴러'라고 한다. 어떤 이야기들인지 궁금해서 사봤다. 강화길은 2020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가다. 이 책은 그의 단편들을 모은 책이다. '고딕 스릴러'란 설 명답게, 전체적으로 스산하고 섬뜩한 분위기다. 귀신 얘기는 아니고, 좀비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소설 속 화자들이 관습, 연쇄살인, 가십 등 현실 속 상황을 '파악'하고 시야를 넓힘으로써 소설은 어느새 '스릴러'가 된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신체적 위협, 소문, 험담, 부당한 인식 등 교묘히 여성들을 억압하는 거대한 구조는 공포 그 자체인 것. 익숙한 소재로 신선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세련됨, 단편임에도 몰입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노련함을 느낄 수 있는 소설들.



23.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  올가 토카르추크 / 민음사 / 2020. 09 / 396p

드디어 2020년의 마지막 책. 저자가 <방랑자들>을 발표하고 일 년 만에 내놓은 '범죄 스릴러' 소설이다. 올가 토카르추크의 입문작으로 딱이지 않나 싶다. <방랑자들>보다 재밌고 읽기 쉽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제목과 표지 디자인도 너무 멋지고. 제목은 이 소설에서 계속해서 인용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 중 일부다. (저자는 이 시구에 대해 "이 한 줄의 문장이 바로 작품의 모토이자 메시지이고, 상징이자 메타포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중간중간 배치된 판화도 책의 분위기를 더 부각한다.


폴란드의 외딴 고원에서 의문의 죽음이 연달아 일어난다. 소설의 주인공은 교사로 근무하다 별장 관리인으로 일하는 두셰이코로, 의문사가 '동물들'의 인간을 향한 복수라고 주장한다. 사회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 '혼자 사는 나이 많은 여성'인 두셰이코는 '점성술'을 신봉한다. 사회의 '아웃사이더'인 셈이다. 그렇다고 나약한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자신보다 나약한 존재들을 지키려고 세상에 거침없이 반기를 든다.


한 편의 동화 같은데, 잔혹동화다. 주제가 가볍지 않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저자가 추구하는 채식주의, 생태주의, 동물권 수호 등 사회적 이슈를 향한 가치관과 신념을 놀라운 솜씨로 녹여냈다. 지구에서 함께 사는 동물들, 그리고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굳게 믿는 토카르추크는 단호하게 말한다. "세상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거대한 그물망이며, 그 속에서 우리 인간은 다른 존재와 보이지 않는 실타래로 연결되어 상호 작용하고 있다"라고.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인간은 실은 서로가 서로를 놀랍도록 닮은 존재라는 사실을 문학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우리가 쓰고 또 읽는 한 우리는 함께입니다.

-올가 토카르추크 기고문, '두려워하지 마세요' 중에서(2016) /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옮긴이의 말 중 발췌


2021년에는 어떤 책들을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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