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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rat Sep 14. 2021

2021년 여름 읽은 책들

7월과 8월의 독서기록

*Photo by Chen Mizrach on Unsplash



9월도 어느새 중순에 접어들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여름에 읽었던 책들을 정리해야겠다. 그렇게 더웠던 여름도 가고 밤에는 이제 꽤 쌀쌀하다. 한동안 짧게만 갈무리했는데, 이번 달에는 간단하게라도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쓰다보니 너무 횡설수설 하긴 했다. 뭐, 항상 완벽한 글을 남길 순 없으니…)



2021년 여름을 함께한 책들


1. 천년의 사랑 - 양귀자 장편소설 / 쓰다 / 508p

6월에 이어 양귀자의 소설들을 연달아 읽었다. 꽤나 두꺼운 이 소설은, 한마디로 상당히 '정통 로맨스'랄까? 사실 나이가 들면서는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를 점점 더 안 보게 된다. 아무래도 덜 자극적(?)이라서 재미가 덜한 것일 수도. 수사물, 스릴러물 같은 장르물들이 가지는 재미요소를 가지기가 힘들다 보니. 아니면 연인 간의 '사랑'이란 감정선을 다루는 게 이젠 꽤나 진부하게 느껴져서일지도. 어찌 됐건, 이 소설은 오랜만에 읽은 '사랑'이야기였고, 결론은 매우 재밌게 읽었다. 이런 사랑이 존재할까? 싶은 사랑 이야기지만. 천년 전에 예정된 인연이라니. 단순 사랑 얘기는 아니다. 온갖 고생을 하고 버거운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은 천년 전부터 그를 지켜보는, 그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있다는 이야기는 꽤나 희망적이지 않나.



2. 슬픔도 힘이 된다 - 양귀자 소설 모음집 / 쓰다 / 316p

중편과 단편 소설들을 모아둔 책. 단편소설들을 참 잘 쓰는 것 같다. 사실 나는 때마다 새 세계에 빠져야 하니까 단편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매끄럽게 이어진달까? 먹다 만 식사 같아서 그다지 즐기지 않는 점도 있는데. 오히려 이젠 그 여운을 즐기게 되는 것 같다.



3.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Makers and Takers : How Wall Street Destroyed Main Street) / 부키 / 532p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라나 포루하의 신작(?)인 돈 비 이블을 읽기 전에 다시 한번 읽고 싶어서. 돈 비 이블도 지금 타이밍에 딱 읽어야 할 책이지만, 이 책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지난해부터 넘치는 시장 유동성으로 말 그래도 '돈이 돈을 불리는'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지 않나. 금융경제는 현대 자본주의에 너무나도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지나치게 비대해졌을 때 성장을 방해하는 지경에 이른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들조차 (애플 같은) '생산'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좀 더 쉬운'방법인 금융을 통해 이윤을 불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꽤나 집요하고 자세하게, '테이커스'의 대표주자인 금융업체들이 실물경제의 자산과 잠재적 가치를 갉아먹는지 분석한다. 앞단에 있는 대형 은행들(시티그룹 등)을 비롯해 기업들을 공략해 주가 상승을 추구하여 시세차익을 노리는 행동주의 투자자들, 한정된 정보력을 이용해 상품시장을 조작하는 대형 투자은행(골드만삭스 등), 어느새 '금융적 사고'에 사로잡혀 본업보다는 '은행업'과 같은 돈놀이에 열중인 대기업들까지.


설명이 꽤나 익숙하지 않나. 대한민국의 상당히 많은 시스템들이 보통 미국을 따라가는데, (문화까지) 작금의 대한민국도 점점 더 저자가 지적한 '테이커스'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대형 투자은행(IB)들의 힘이 더 세지고 있고, 대기업들은 더 이상 고용을 창출하고 공장을 짓기보다는 마치 pef(사모펀드)처럼 활동하고 있다. 각 기업의 지주사는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보다는 '투자형 지주회사'가 된 지 오래다. 모 대기업의 지주시가 미국의 모 기업에 투자해서 시세차익만 몇 배를 먹었다는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해 경제지에 연일 실린다. 물론 돈을 못 버는 것보단 버는 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 뒤,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장담할 수 없겠지. 지금의 미국의 모습이 '선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4. 돈 비 이블(Don't be evil) 사악해진 빅테크 그 이후 - 라나 포루하 / 세종서적 / 444p

앞의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의 저자 라나 포루하의 후속작(?). 미국에선 가장 핫했던, 그리고 지금도 핫한 '빅테크'들의 변화에 대해 다룬다. 최근 우리나라도 정치권에서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규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플랫폼'이란 이름 아래 '혁신' 보다는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있다는 경계심이 커지면서, 여론도 나빠지고 있는 것. 택시부터 대리기사, 이삿집, 미용실 예약까지...원래 있던 시장에 '플랫폼'으로만 진출해 수수료 장사를 한다는 비난이 커졌고, 잇단 계열사 쪼개기와 줄줄이 상장을 통해 시장 유동성을 다 빨아들이는 카카오의 모습을 보면 '조금 과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기업이 이윤추구를 위해 사업을 확장하고, 시장에서 활동을 하는 게 나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기업이 덩치가 커지면 그만큼의 사회적 책임도 지게 되어있지만, '혁신'이라는 핑계(?) 아래 오랜 기간 빅테크들이 규제의 눈을 벗어나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대기업들은 '못'해서 골목상권 진출을 못했겠는가.)


실제로 저자도 10살짜리 아들이 스마트폰으로 '무료'라고 생각한 게임을 다운로드하고 아이템을 추가하면서 '과금된' 엄청난 금액을 보고 이 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빅테크들은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돈을 쓰게 만들고 있다. 정보의 수집도 이뤄진다. 정말 가끔 무서운 게, 카카오톡으로 친구와 이야기 한 내용이나 사람, 물건에 대한 광고가 유튜브나 구글에 뜬다. 핸드폰을 올려놓고 친구와 이야기 한 유명인에 대한 영상(게다가 오래전 영상!)이 정말 뜬금없이 바로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적도 많다.(마이크로 듣는 게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카톡'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적인, 중요한 정보들이 오갈까? 카카오란 회사가 그 대화 내용에는 접근을 못한다고 하지만, 정말 '아무런' 접근이 안 되는 걸까? 적어도 사용자의 단어 사용, 패턴까지 정보로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음은 분명하지 않나. 가끔 카카오톡이 먹통이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인터넷에서 난리가 난다(실검이 있을 때면 1위고). 전 국민의 소통(?)이 하나의 앱에 좌지우지되는 게 생각보다 무서운 일 아닐까. 내 번호를 알면 내가 친구로 뜬다는 방식도 지금 생각해보면 강압적이지 않나?


어쨌든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이제는 빅테크들에 사업에 대한 재정의와 정리의 시간이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이 책에서는 이미 '그 단계'를 겪고 있는 미국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소위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으로 불리는 빅테크들은 단순 혁신 기업을 넘어 독점과 세금, 경제 질서 교란 문제의 중심에 서 있다. 심지어 이들은 국경도 없이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기술 기업들이다.


위의 두 책의 저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라나 포루하(Rana Foroohar)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파이낸셜타임스의 글로벌 비즈니스 칼럼니스트 겸 부편집장으로, CNN에서는 글로벌 경제 분석가로도 활동 중이다. 타임지에서도 비즈니스와 경제 부문을 담당하는 부편집장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뉴스위크에서 13년간 해외 특파원 겸 경제, 외교 담당 에디터로 일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이 정도의 경력이면 이런 책을 낼 수 있다.(내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해야 하나.) 미국은 미국이라고 생각한 게, 이 정도로 어떤 시장 상황에 대해서 자세하고, 진지하게 분석하는 기자가 있다는 게 부럽다(?). 자료 수집과 취재, 그리고 집필은 오랜 기간 준비하지 않고는 나올 수가 없다. 또 포루하처럼 긴 시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시장을 분석하고 지켜봐 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책이다. 그녀의 분석과 지적에 100%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정신없이 지나가는 세상에서 '질문'을 던지고 제동을 건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또 그게 저널리스트들이 하는 일이고. (실제로 그녀는 미국에서 트위터, 페이스북 등 빅테크를 청문회에 세우는 데 공이 있다.)


아래 영상들은 유튜브에서 해당 책과 관련한 영상을 찾아봤던 것들이다. 하나는 대담 형식이고, 다음 영상은 서점에서 하는 일종의 책 리뷰 행사 영상이다. 전자도 좋지만 후자의 경우가 더 정이 간다(?). 미국이나 유럽은 저런 생활 속 문화생활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어릴 때 미드를 볼 때도 작가들이 책을 내거나 하면 동네 서점에서 낭독회를 열고 시민들과 질문을 주고받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저런 행사들도 많이 줄었겠구나.


https://youtu.be/MA8hHseJ6ko 


https://youtu.be/UFjavV4Oawg



5. 지상의 양식 - 앙드레 지드 / 민음사 / 343p

내 기억에 프랑수아 사강이 자신을 만든 책 두 권을 뽑았는데, 그중 하나가 이 책이었다. 이 책은 정확히 '어떤 책'이라고 정의하기가 어렵다. 일종의 사상적 자서전. 확실한 건 내가 밑줄 친, 접어둔 페이지가 정말 많다는 것...

나의 이 책이 그대로 하여금 이 책 자체보다 그대 자신에게-그리고 그대 자신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도록 가르쳐주기를. -16p
동지여, 사람들이 그대에게 제안하는 바대로의 삶을 받아들이지 말라.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굳게 믿어라. 그대의 삶도, 다른 사람들의 삶도. 이승의 삶을 위안해 주고 이 삶의 가난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어떠 다른 삶, 미래의 삶이 아니다. 받아들이지 말라. 삶에서 거의 대부분의 고통은 신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들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그대가 깨닫기 시작하는 날부터 그대는 그 고통들의 편을 더 이상 들지 않게 될 것이다.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말라. -296p
나타니엘이여, 이제 나의 책을 던져버려라. 너 스스로를 해방시켜라. 나를 떠나라. 나를 떠나라. -201p



6. 권력과 영광 - 그레이엄 그린 / 열린 책들 /  378p

세계 고전문학 반열에 오른 소설 중 하나. 혁명정부가 들어선 직후의 멕시코에서 박해를 피해 도망 다니는 한 신부의 기묘한 모험을 그린 소설이다. '위스키 사제'로 불리는 이 신부는 술을 좋아하며 사생아를 낳기도 한 '타락한' 신부다. 사제들을 대부분 순교당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도망 다니지만, '사제'를 찾는 사람들의 부름에 응답하기도 한다. 살고 싶은 욕망과 '사제'라는 이름의 영광 그리고 권력... 그 사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한 인간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대단히 박진감 있는 사건이 있는 것도, 뒤엉킨 인간관계가 담겨 있는 것도 아닌데 흡입력 있게 읽히는 소설.



7. 불평등의 이유 - 노암 촘스키 / 이데아 / 224p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과 비슷한 맥락으로 읽혔다. '민주주의'가 확대되었는데 우리의 삶은 왜 더 불평등해졌나? 에 대한 질문에 노암 촘스키는 10가지의 원리를 들어 설명한다. '아메리칸드림'의 몰락은 어떻게, 누가, 어디서 시작했는가?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미국의 민주주의를 '실제로는 실망으로' 이끌었는지 촘촘하면서도 큰 맥락에서 비판하는 책.



8.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 / 와이즈베리 / 420p

'내가 이룬 것은 모두 나의 성과다'. 미국식 능력주의의 '절대 믿음'은 과연 '공정'할까? 샌델에 의하면 '아니다'.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 성공과 실패, 그리고 승자와 패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 부작용을 가져오는지 보여주고 있다. 내가 이룬 것, 내가 가진 것이 '오로지 내 능력'이 아니다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내 '성취'에는 나의 조상, 부모, 환경, 국적, 인종, 국가, 시대 그 모든 것들의 영향이 집약되어 있다. 그러나 '능력주의 사회'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의 이분법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다. 승자는 승자대로 오만해지고, 패자는 패자대로 좌절하는 사회를 만들면서.  



9.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 - 신순규 / 판미동 / 264p

시각장애를 가진 월가 애널리스트의 에세이. 팬데믹 시대, 새삼 삶의 가치를 되새겨 보고 싶을 때 읽으면 좋다.



10. 법정에 선 수학 - 레일라 슈 넵스, 코랄리 콜 메즈 / 아날로그 / 352p

수학이 판결을 바꾼 사례들을 모은 책. 법정물 미드를 읽는 듯 사건을 따라가면서 재밌게 읽었다. 결국 '수학'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사람이 그 '수'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관건이란 결론이 나오는 것 같다. 일어난 일(?)은 결국 하나고, 팩트도 진실도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판결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해석이 들어가고 편견과 오해가 끼어들기도 한다. 이때, '객관적'이라고 생각되는 숫자가 해결책으로 등장하게 된다. 물론 '잘 쓰면' 누군가에게 구세주가 되기도 하지만, 숫자마저 '잘못' 쓰인다면 누군가는 굉장히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보통 숫자는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맹신하는 경향도 세다.



11. 바쇼의 하이쿠 - 마쓰오 바쇼 / 민음사 / 184p

바쇼의 하이쿠를 모은 시집. 하이쿠를 자주 접해보긴 했어도 이렇게 모아둔 시집을 읽어본 건 처음.

역시 글이고 말이고 적을수록 좋다. 말하고 싶은 바를, 전달하고 싶은 바를 짧고 간결하게 나타내는 재주는 진짜 대단한 재주다. 글도 쓰다 보면 길어지고... 말도 길어지고... 시들은 신기하게 짧은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머리에 그림이 그려진다. 가끔은 그 서릿함이 느껴지기도. 이번 포스팅은 지금 계절에 딱 맞는 하이쿠로 마무리.

따갑게 쬐는
햇살은 무정해도
바람은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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