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민 Aug 18. 2016

[번외편] 실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너에게

실연(失緣)한 동생의 전화를 받고

오랜만에 전화가 온 동생에게서 여자친구와 갑작스레 헤어지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의 말문은 자주 막혔고, 가끔 떨리는 목소리에서는 그 아이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가 느껴졌다. 나는 너의 고통을 알고 있다는 말과, 알지 못한다는 말 가운데 어느 것이 동생에게 더 위로가 될지를 생각했다.


나는 물론 너의 고통을 이해한다. 실연은 외부의 누군가를 잃는 일이면서 동시에 내 내부의 균형을 잃는 일이다. 마음은 자주 위태로운 방향으로 급격히 쏠리고, 그렇게 쓸려간 것들은 의지만으로는 좀처럼 가지런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균형이 생기기 전까지 우리는 휘청이게 되어있다. 어지럽게 휘청이는 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단 하나다. 나를 떠난 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의 분노와 원망과 자책과 고통과 슬픔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있게 한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들에 대해 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는 그 시간의 디테일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인 까닭이다. 오직 그 사람만이 그 시간의 의미와 온도와 질감을 설명 없이 이해한다. 그러므로 이별의 고통의 핵은 외로움이다. 내가 너와 나누고픈 무수한 이야기들이, 더 이상 너에게는 의미가 없(어졌)다는 데서 비롯하는 외로움. 내게는 여전히 선명한 그 날 그 날의 디테일들이, 너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는 외로움. 나의 고통과 절박과 호소가, 이제 너에게는 닿지 조차 않으리라는 외로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의 고통을 알지만 알지 못한다. 실연의 한 가운데에 있는 너를 괴롭게 하는 것은 이러한 마음의 동학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그야말로 너만이 아는 시간들의 디테일들이기 때문이다. 이 디테일들이 평정을 찾아가던 우리를 다시 무릎 꿇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 그건 타인들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어서, 닿지 않는 타인들로부터 듣는 이별 이후의 조언들은 비슷하게 흐릿하게 들릴 뿐이다. 그들의 위로와 조언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행할 수는 없는 것들이다. 닿지 않는 것들이다. 나는 너의 고통에 대해, 그 심연에 대해, 알지 못한다.


조심스럽게 나는 단지 시간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지금의 너는 일주일 뒤, 한 달 뒤를 상상할 수 없겠지만 시간은 흐르고 결국은 도달하게 된다고. 시간을 되짚고 어긋남의 순간들을 복기하고 하지 않은 선택들을 가정하는 일을 지칠 때까지 하고 나면, 고여 있던 물이 마르듯 마음도 마르게 된다고. 의지적이지 않아도 시간은 견디어진다고. 나의 이런 낙관이 지금의 네게는 닿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될 거라고, 나는 닿지 않을 위로와 응원을 보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썅년’을 이제 잊어버려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