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멈추기로 한 이유
이 글을 발행한건 2025년 11월이지만 이 글을 써둔건 2024년 12월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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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년 동안 9개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며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혔다. 그 시간들은 내 삶에서도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씁쓸하고 견디기 힘든 순간도 많았다.
오늘 나는 이 마지막 장에서 '기획자'로서 겪은 생각의 일부를 털어놓으려 한다.
이 기록은 단순한 회고를 위한 기록은 아니었다. 내 선택의 과정을 정리하고 싶었다. 9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동시에 스스로의 한계를 많이 깨닿게 되었다.
지역으로 쏟아지던 많은 예산들이 홀연히 흔적없이 사라져버리는 상황들이 심심치 않게 목격되면서 일을 진행하면 진행할 수록 나는 점점 어떤 질문 앞에 가까이 서게 되었다.
'이 일은 계속할 수 있는 일일까?'
'이 일이 나의 삶을 지속시켜줄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에 오랜 시간을 들여 답을 구했고 결국 멈추는 선택을 했다.
좋은 일이라는 이름의 함정
지역에서의 기획은 많은 경우 '좋은 일'로만 치부된다.
공동체를 위한 일.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 따뜻한 이야기. 하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9개의 프로젝트를 1년 동안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이 사라져가는 것을 알아챘다. 시간이든 돈이든 자존심이든 무언가 하나는 나의 에너지를 갈아 넣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다.
내가 기획한 일이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것은 잠깐의 허상이었다. 그 박수와 함께 나오는 "대단하다"는 말은 대부분 "왜 그렇게까지 하냐"와 같은 맥락에 있었다.
지역에서의 기획자는 봉사활동가나 열정 넘치는 사회혁신가 혹은 지역에 애정을 가진 활동가로 여겨졌다. 그 일이 정당한 대가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 프로젝트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좋은 일 하시네요.
처음에는 그 말이 기뻤다.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인정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말이 무섭게 느껴졌다. 좋은 일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희생을 당연하게 요구받고 감정노동까지 무한정 해야 했다. 좋은 일은 때로 사람을 소모시키는 일이 되었다.
끊임없는 검증
현실에서 나는 기획자였고 촬영자였고 행사 진행자였고 대관 협상가였고 디자이너였고 민원 응대자였다. 게다가 지역에서는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검증을 요구받았다.
"너는 왜 여기서 이 일을 하는가."
"너는 진짜 이 지역을 위하는 사람인가."
나는 그럴때마다 매번 설명해야 했다. 설명하는 데 지쳐갈 때쯤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냥 끊임없이 소모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지역에서 아무 연고 없이 지역을 위해 일한다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경제활동 없이 활동만 할 수도 없고 경제활동이란 결국 나를 위한 일이었다.그것을 인정해야 했다. 내 활동이 지역에 도움이 되면 좋지만 지역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는 실행 후에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무언가를 위한다는 것은 결과론적인 일이라는 것을 깊게 깨달았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
그렇게 나는 더 이상 지역에서 이 방식으로 일하지 않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이유로 계속 감당해왔지만 그것은 나에게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먹고사는 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역과 연결된 일들의 특성상 공공사업의 구조 안에서 기획자는 여전히 '브로커'로 보이기 쉬웠다. 바라보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결과만을 원하면서 동시에 과정의 정당성은 살피지 않았다.
나는 내 일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매번 스스로를 소진시켰다. 정량으로 평가되지 않는 기획의 가치.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행정의 예산 없이는 수행되기 어려운 수익성 없는 일들. 그리고 수익성을 논할 수 없는 관례와 법 규정. 정량적 성과에만 치중된 행정의 시선까지.
나는 점점 더 이 구조 안에서는 내 일을 지속할 수 없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어느틈엔가 지역의 행정가들은 사업을 운영하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고 그 권리에 응하지 않으면 자기들이 아는 만큼의 '지시'를 했다. 그것은 결국 숫자로만 환산되는 일들이었다. 실적을 가늠하기 좋은 것들.
몇 명이 왔는지. 몇 명이 봤는지. 몇 명이 이주했는지.
하지만 변화는 숫자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몸으로 부딪히며 체득했다. 나의 방향이 '지역'이라는 틀 안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리고 내가 원래 하던 일들을 버리듯 지역으로 이주한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20년 넘게 쌓아온 커리어를 말이다.
환상과 현실
'로컬'이라는 단어의 붐을 타고 환상을 안고 좋아하는 지역으로 향한 수많은 기획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중 성공한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좋은 말로 포장되는 수많은 기사와 행사에서 발언되는 이야기. 그 이면에 그 사람이 가진 환경과 배경과 이력까지 보면 납득이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나처럼 '환상'만 가진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언젠가 어떤 프로젝트에서 내가 운영하는 공간을 프로그램 운영 장소로 사용하겠다고 했더니 '무상'으로 하라는 식의 의견이 들어왔다. 왜 그래야 하냐고 반문하니 "홍보가 되잖아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날 나는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왜 지역의 행사를 운영하고 기획하는 사람들은 내 것을 내어주면서까지 해야 하는 걸까?
인건비도 책정할 수 없고 내 자산으로도 운영할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먹고살 수 있는 것인지 아직도 아리송하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기준은 너무나도 많다. 한쪽에서 생각하면 그렇게 돈을 버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이후 결과는 더욱 아이러니했지만 그것은 말을 아끼겠다.
빚으로 남은 1년
그렇게 1년 동안 9개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금전적으로는 빚이 생겼다. 행사 준비비. 현장 운영비. 인건비. 그리고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생활비와 이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운영을 위해 회사이름으로 또 개인이름으로 빚을 냈다.
공공의 보조금은 기획과 운영에 드는 모든 현실적 비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나는 내 사비를 끌어다 프로젝트를 완성해 나갔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완성도 낮은 프로젝트를 내고 싶지 않았고 확실한 실험의 결과가 필요했다.
그렇게 긴 시간 프로젝트들을 모두 끝내고 남은 것은 숫자가 아니라 감정이었다.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던 장면. 누군가가 사진을 제출하며 썼던 짧은 메모. 마을을 걸으며 들었던 말들.
나는 그 장면들을 기억하지만 그것들이 내 생계를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그 간극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현실을 외면한 채 일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고 결국 이 일은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런 일들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마을을 연결하는 일. 사람들의 경험을 기록하는 일. 지역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일.
이런 일들은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 계속되어야 하고 이것은 사업이 아니라 '운동' 같은 일이어야 한다.
지역에서 기획을 한다는 것은 관계를 설계하고 자원을 해석하고 구조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비용이 든다.
나는 그 비용을 너무 늦게 인식했고 그 대가로 소진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에 이 일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처음부터 자신의 지속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여겼으면 한다.
시작할 때는 진심을 다하되 당신의 삶을 모두 소모하지는 않기를.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 일은 결코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어떤 지역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 이유로 자신을 희생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나 역시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마음으로 작은 변화를 계속 시도하는 것. 그것만은 포기하지 않고 싶다.
나도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한 해가 훌쩍 지난 2025년의 11월에 추가해보는 지난 글의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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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써 두고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무엇이 많이 달라졌을까?
보조금 헌터라는 말을 알게되었고,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수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기관의 실적위주 예산 편성은 그들의 말을 잘듣는 사람들을 위주로 선발되었다. 정황만 있지 물적증거가 없으므로 성립되지 않는 사건의 추론들이 끝없이 남았다.
"로컬"을 이야기하던 수많은 스피커들이 1년사이 "로컬"이라는 단어를 더이상 소비하지 않는다.
지역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들이 앵글이 상당히 달라졌다.
기회주의적 삶.
지역에 상관없이 사업을 따내기에 혈안이 된 회사들이 수두룩 했고 그들의 뉘앙스는 늘 "지역을 하대하는" 태도였다. 이해도되고 화도난다.
1년전과 변한건 없다. 나는 여전히 지역에서의 삶에 매력을 느끼고 있고 이런저런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다.
논문을 쓰고 있고, 공간도 운영해나가고 있고, 사업도 하고 있다.
작년보다는 많은 동료가 생겼고 단단해지고 있다.
아무튼 나 역시 아직 지역에, 이 곳 양양에 잘 살고 있는걸 보면 아직 포기하지 않은것 같다.
1년이 지난 2026년엔 어떤 글을 남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