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다 나녀석
2023년 말, 나는 '제 1회 잘했다! 나녀석전'을 준비했다. 당시 프로젝트는 거창한 목표로 시작되지 않았다. 그저 '어른이 된 이후, 누군가에게 칭찬받을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누구도 더 이상 우리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고, 잘한 일에 박수쳐주지 않는 일상이 계속되면서, 나는 스스로를 칭찬하는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1회가 좋은 기억을 주었고, 다른방향으로 확장해 보고 싶었다.
1회의 시작은 나로부터였지만 이 행사를 꾸준한 행사로써 운영하려면 지역의 앵커조직이 하는게 맞을 것같아 로마드 협동조합에 프로그램의 기획을 이관하였다. 그렇게 나는 프로그램 조력자로서 참여하게 되었고, 2회는 1회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2회는 조금더 지역을 타겟으로 면밀히 계획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잘했다 나녀석이라는 셀프칭찬을 할 수 있는 대상자들을 떠올렸고 '이장님들'을 타겟으로 했다.
작은 마을의 가장 가까운 리더. 매일같이 마을 사람들의 민원에 대응하고, 때로는 행정과 주민 사이에서 조율자의 역할까지 감당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거의 늘 '당연하게' 일하고 있었고, 고마움도, 감사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름도 바꿨다. '잘했다! 나녀석전 – 이장전'으로.
프로젝트는 인구초등학교와의 협업으로 시작됐다. 나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이장님들을 축하하고 싶었다. 행정기관이기도 한 초등학교와 협업하기 위해 여러 행정적 협의 과정을 거쳤고, 아이들의 안전과 참여 조건을 조율했다. 아이들은 방과 후 노래를 연습했고, 우리는 그 아이들의 노래가 울려 퍼질 장소를 고민했다.
처음에는 양양군의 워케이션 센터를 고려했지만, 장소 특성상 음식물 반입 등의 문제로 진행이 어려웠다. 여기서 정말 행정기관과 위탁운영이라는 두가지 평행선 사이에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공간이 없는 조직의 설움을 느꼈다. 지역에는 큰 공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이런 "갑작스런"행사가 있을때 턱하니 공간을 내어줄 곳은 더더욱 없다.
힐러스라는 내가 운영하는 공간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이동과 안전을 생각하면 현실적인 선택도 아니었다. 어찌저찌 우리는 현남면사무소 2층에 있는 '해당화 극장'이라는 오래된 공간을 대관받았다.처음 문을 열고 강당을 마주했을때 사실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다. 어떻게 바꾸지?
낡고 오래된 공간이었지만, 조명을 끄고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로 했다. 테이블보와 조명을 직접 준비했고, 의자 커버도 새로 씌워 연말 파티를 하는 공간처럼 바꾸었다. 미리 준비하고 눈으로 확인하고 대비를 해야 걱정을 하지 않는 내 성향덕에 같이 진행한 팀원들이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안해도 될일, 두번해서 귀찮은 일들까지 마다 않고 진행해준 덕에 행사가 더욱 알차게 진행되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미리 체크하지 않아도 잘 되었을지도 모를텐데 말이다.
음식은 동네 식당에 삼계탕 20인분을 주문했다. 무언가를 대단하게 제공한다는 마음보다, 어르신들이 드시기에 편하고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하고 싶었다. 모든 것이 과하지 않게, 하지만 정성스럽게 준비되었다. 행사 당일 아침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의 악기와 행사 준비물을 옮겼고, 리허설을 통해 아이들이 공간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전교생 30명 남짓한 작은 학교의 아이들은 하얀 셔츠에 목도리를 하고, 무대 위에서 이장님들에게 노래를 불러줬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면, 아이들이 이장님 한 분 한 분에게 장미꽃을 전달했다. 그 모습은 마치 마을 전체가 함께 준비한 축하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상장 수여식'. 나는 이장님들에게 '스스로에게 주고 싶은 상'을 직접 적어보도록 요청했다. 준비된 상장 용지에, 자신이 어떤 상을 받고 싶은지, 왜 그런 상을 받아야 하는지를 쓰는 시간이었다. 그 상장들은 무작위로 섞였고, 이장님들은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상장을 전달받았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분위기는 점차 부드러워졌고, 상장을 주고받을 때의 표정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어떤 분은 평생 이런 자리를 처음 겪어본다며 웃으셨고, 어떤 분은 다음에도 꼭 다시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이장님들과의 접촉이었다. 외지인인 구성원들이 각 마을의 이장님들에게 연락을 드리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현남면의 면사무소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면장님과 이장협의회 회장님의 도움을 받아 이장협의회를 통해 사전에 전체 설명을 드리고, 이후에는 각 마을에 직접 전화를 걸어 일일이 설명했다. 이 과정은 온전히 로마드 협동조합에서 진행했는데 그 역시 쉽지 않은 일이긴 했다. 일단 무슨 행사인지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기에 행사 취지를 이해하기도 어려웠던것 같다.
반응은 다양했다. 흔쾌히 응해주신 분도 있었고, 일정상 불가하거나 처음엔 거절했다가 다시 연락을 주신 분도 있었다. 결국 19명의 이장님 중 12명이 참석했다. 처음 기대했던 '절반 이상이면 성공'이라는 기준은 충분히 넘긴 셈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무언가 대단한 성과를 남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역에서 기획을 한다는 일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커다란 숫자나 미디어의 주목이 아니라, 누군가의 얼굴에 생긴 작은 표정 하나가 더 중요한 성과일 수도 있다는 것. 제2회 잘했다 나녀석전이 바로 그런 기획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박수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정말 박수를 보낼 수 있었던 시간. 그 순간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그렇게 나는 도전같기도, 실험같기도 했던 2024년의 프로젝트들을 모두 마무리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