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에서의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
장인학교라는 이름은 무게감이 있었다. 처음 이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을 제안받았을 때부터 나는 그것이 단순한 창업 교육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장인은 기술자 이전에 어떤 태도의 문제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현장에서 천오백여명의 가맹점을 대상으로 매뉴얼을 설계했던 경험이 있다. 1년에 2번 상 하반기에 걸쳐 전국을 돌며 교육을 운영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운영 지침을 따르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았고 그것은 정형화된 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줄만 알았다. 그런 내가 지역이라는 현장에 와서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장인학교는 그 '정답 없음'을 함께 견디고 지역의 현상을 이해하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행정안전부 로컬브랜드 창출 사업의 과제중 하나였던 장인학교는 양양의 현북면 하조대 권역을 대상지로 진행됐다. 나는 이 교육 프로그램의 총괄 기획과 커리큘럼 설계를 맡았다. 이론 교육 중심의 기존 창업교육과는 달리, 이 지역을 실제로 경험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는 과정을 핵심에 두었다. 그래서 14박 15일간 양양에 실제로 체류하며 교육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짰다. 양양이라는 공간은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리듬과 결이 있었다. 나는 그걸 체험하게 하고 싶었다.
교육은 단순히 강의를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양양에서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창업자들을 만나는 프로그램도 포함시켰다. 하지만 그 과정조차 수동적이지 않도록 설계했다. 수강생이 직접 리서치를 통해 만나고 싶은 창업자를 선정하고, 우리는 그들과의 만남을 연결해주는 방식이었다. 기획자로서 내가 생각했던 로컬 창업 교육의 핵심은 지역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해였다. 아무리 뛰어난 BM을 가지고 있어도, 그 땅을 모르고는 지속가능한 창업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수강생이 이 시간을 통해 자기만의 질문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양양에 와서 듣고, 보고, 부딪히며 얻게 되는 감각은 교육 자료로 제공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 감각의 누적을 믿었다. 지역은 책으로 공부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교육 마지막에는 자신이 구성한 로컬 사업 모델을 발표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서로의 모델에 피드백을 주는 구조로 설계했다. 비즈니스 모델을 평가받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감각한 것을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 예산이 일부 남았다. 나는 그 예산을 소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과공유회를 제안했다. 서울 연희동에서 3일간 진행된 이 공유회는 단순한 발표의 자리가 아니라, 로컬을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도시로 끌어올리는 실험이 되었다. 특히 장인학교에 참여했던 수강생 중 한 명이 이 전시를 직접 기획하고 운영했고, 이후 내가 운영중인 회사의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이것은 교육이 일자리로, 관계로, 그리고 삶의 방향으로 이어진 한 사례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장인학교를 운영하며 나는 교육이 사람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 스스로 방향을 찾도록 설계된 시간은 그 사람의 속도를 조금 바꿔놓을 수는 있다고 믿었다. 이 교육이 끝난 후, 실제로 양양에 남기로 한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양양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로컬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변화는 설득으로 생기지 않는다. 느껴지는 일이고, 그건 결국 감각의 총량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프로젝트였다.
2024 장인학교의 기록은 홈페이지에서 확인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