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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콘텐츠 세미나

지역을 살아내는 사람들

by 김스윔

상반기에 열렸던 지역탐구 세미나 이후, 나는 그 연장선 위에서 두번째 세미나를 제안했다. 이번에는 지역을 보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지역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함께 참여시키고 그들과 함께 지역을 바라보는 과정을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첫 번째 세미나는 외지인의 시선으로 현남면을 관찰하는 자리였다.
물론 그 자체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생활인이 익숙하게 지나치는 풍경을, 관찰자는 다르게 보고 기록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우리가 실제로 부딪히는 문제는, 외부인이 감각적으로 느낀 가능성과 실제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현실 사이에 놓인 간극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를 짰다. 상반기에 이미 마을을 돌아보고 관찰했던 전문가 집단을 다시한번 초대했다. 세심하게 들여다본 이력이 있으므로 조금 더 깊게 관찰 하기 위해 지역민들과 연결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양양 지역 주민들과 참가자들이 섞이도록 구성했고, 한 팀씩 공간을 특정하고 돌아보게 했다.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공간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내가 진짜 바랐던 건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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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이 그 공간에 대해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제시한 3곳의 공간은 “양양 워케이션센터”, “북분리 캠핑장”, “해양 레포츠센터” 였다. 내가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양양군 현남면이라는 동네는 아주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서핑이라는 문화라면 다른 하나가 이주해온 사람이 양양의 타 지역에 비해 많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나고자란 사람들이 아니라 이곳으로 삶의 터전을 이전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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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져있고 이번 세미나에 참여한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아무래도 기존에 살던 사람들은 관성이 이끄는대로 살아도 괜찮지만 이주해온 사람들은 변화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개의 조에 6~10명의 팀원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각 공간을 돌아보고 각자의 아이디어를 모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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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레포츠 센터를 탐방한 조의 발표는 이런 내용으로 요약되었다.

• 입문자와 서퍼를 연결시켜주기 좋은 장소로서의 의미 부여 필요

• 공간과 친해지기 위한 다양한 참여형 프로그램 조성 – 초크아트/동네친구찾기/보드보드 등

• 지역 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없으므로 지역의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부방으로 활용 방안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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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케이션센터인 웨이브웍스는 이런 내용으로 요약되었다.

• 공간 자체는 멋지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로 인식

• 기존의 주민들의 연결의 공간이었던 이미지가 지역민을 배제한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인식으로 형성되어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가 된 문제가 있음

• 워케이션이라는 기본속성은 지키되 관광객에게는 마을의 안내소로, 마을 주민들에게는 마을 아지트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콘텐츠 발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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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분리 캠핑장은 이런 내용으로 요약되었다.

• ‘유흥 성지’로 가족 관광객 감소하는 양양의 숨은 보석으로 도약을 위한 방향 모색 필요

• 자연자원/인적자원/문화자원/서비스자원이 충분하지만 이것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할 수 있는 기회 부족

• 북분리와 동산을 연계해 자원을 강화하고 캠핑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지역브랜딩을 통해 성수기/주말 운영의 한계 극복

• 장기적인 관점에서 서핑이라는 문화와 연결하여 아웃도어 레저시장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발전해 나아가는 방향 제시



1박2일의 짧은 시간동안 관찰하고 제시한 내용들은 훌륭했다. 그 과정에서 지역민들의 생각을 말하고 듣게 되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에 가지고 있는 애정이 너무 묻혀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어떻게 크게 말해볼 수 있을까? 그것은 여전히 너무 큰 숙제로 남아있다.


이것을 결과 보고서나 성과 보고서로 정리하면 아무일도 아닌 일이었일이 될것이라는 것을 너무 뻔히 알고 있었다.

많은 공공사업들이 조사 단계에서 그치거나, 조사와 실행 사이에 설득되지 않는 공백을 남긴다. 나는 그걸 없애고 싶었다. 그러려면 직접 만나야 했다. 현장을 보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온도를 맞춰야 했다. 현남이라는 지역은 작다. 그 작음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한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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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한 물리적 조건이 항상 충분하지는 않다.
그래서 변화는 더디고, 실현 가능성은 늘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번 세미나에서 나는 그 물음표 너머의 가능성을 조금은 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같은 공간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겹치는 기억을 꺼내고 낯선 사람끼리 서로의 경험을 듣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이 지역이 가진 자산처럼 느껴졌다.


지역에서 도출되는 아이디어는 사실 거창하지 않았다.
“여기를 산책로로 만들면 좋겠네요.”
“아이들 그림을 벽에 그리면 지나가다 보기 좋을 것 같아요.”
“텃밭처럼 나눠 쓸 수 있으면 동네 사람들도 관심 갖겠죠.”

누군가는 그런 걸 아이디어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이야말로 지역을 변화시키는 언어였다.
개발의 언어도 아니고, 마케팅의 언어도 아닌, 생활의 속도에 맞춘 제안. 그걸 알아채는 일. 그게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느낀 건, 지역 활성화라는 말이 사실은 ‘어떻게’보다 ‘누가’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잘 설계된 기획도, 그 기획을 받아줄 사람이 없으면 지속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람은 ‘주민’이 아니라 ‘참여자’로 바뀌어야 했다. 나는 이 프로젝트가 어떤 성과를 남겼는지 수치로 말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건 기획서를 넘어선 일이었고 공공의 보고서에서 관찰하기 어려운 온도였다. 세미나를 통해 발견한것은 거창한 의미보다 나 스스로의 가능성 정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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