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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현남, 마을 브랜드 팝업

마을이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by 김스윔

마을이 정말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언젠가부터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중기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중 로컬브랜드 개발과 관련된 수많은 예산과 사업들이 있는데 그게 정말 가능한건지 궁금했다. 물론 목적자체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형태든 "마을"이라는 사람들의 묶음이 정말로 브랜드 라는 이름으로 동작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관광지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가, 아무것도 대단할 것 없는 작은 마을이, 사람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줄 수 있을까. '라이크현남'이라는 팝업 프로젝트는 바로 그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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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는 “농촌마을활력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사업 중 하나였다. 로마드 협동조합과 함께 기획했고, 나는 그 안에서 세심하게 설계를 맡았다. 처음부터 욕심은 크지 않았다. 그저,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이 보여주고 싶었다. 현남면이란 이름이 어떤 지역인지,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는지, 그 조용한 온도를 전달하고 싶었다.


공간은 죽도해변과 서피비치처럼 이미 유명해진 관광지와는 거리가 있는, 조용한 골목 안쪽. 화려한 간판도 없고, 북적거리는 사람도 없는 곳이었다. 그 조용함이 이 프로젝트의 가장 좋은 배경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팝업스토어는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었다. 라이크현남은 생활자들의 이야기를 담는 전시장이었고, 작은 마을의 진짜 이야기를 보여주는 공간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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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현남 팝업스토어 안에는 여러 가지 코너를 만들었다. 현남면 지도 그 자체로 케릭터화하고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어디를 좋아하는지 실로 엮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가장 정확한 빅데이터였고, 인포그래픽이되었다.


그리고 한켠에는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시했다.

보통 이런 전시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브랜드"에 관한 내용으로 전시가 되곤 했지만 늘 나의 관심은 사람에 있었기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 질문들로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이곳에서의 삶이 어떤지를 묻는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진 포스터를 게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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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방문한 사람들에게 남기는 질문으로 세가지 질문코너를 마련해 두었다.

공간 한 켠에 마련한 벽에는 포스트잇과 펜을 준비해두고 방문객들이 이 질문들에 자유롭게 답변을 적어 벽에 붙였다. 아무런 강요 없이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적어서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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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에 왜 왔어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대부분 비슷했다. '서핑', '자연', '바다가 좋아서'. 예상 가능한 대답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또렷한 선택의 이유가 담겨 있었다. 사람들이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만든 동력이 이 마을에 있었다는 것. "뭐가 제일 좋아요?"에 대한 답변도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깨끗한 바다, 조용한 일상, 편안한 사람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뭐가 제일 불편해요?"에 대한 답이었다. 예상보다 답변 수가 적었다. 이 질문을 예상하며 나는 모두가 불편함을 이야기할 거라 생각했다. 병원이 없고, 교통이 불편하고, 생활 인프라가 부족한 것들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불편을 말하지 않았다. 다른 질문에 비해 포스트잇의 숫자도 작았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포스트잇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사람들이 지역에 기대하는 바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 소소한 불편 속에서 꾸준히 나온 이야기가 있었다.


"산책할 데가 없어요."

이 단순한 답변이 다음에 해야할 일을 구상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건 화려한 시설도, 거대한 개발도 아니었다.
그저 이 지역을 조용히 걸을 수 있는 길 하나. 사람들이 바란 것은 그것뿐이었다.

아주 소소하고 작은 행복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 지역을 이루는 구성원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이후 현남면 마을 브랜드를 기획할 때 중요한 결정요소가되었다. 우리는 라이크현남 팝업 이후, 마을 산책로를 발굴하고 책으로 엮는 프로젝트로 이어가게 되었다. '현남면에 걸을 곳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가장 중요한 데이터로 삼았다.


라이크현남 팝업은 한 달 반 정도 운영되었다. 여름 성수기인 7월, 8월을 거치면서 약 2~300명 정도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숫자로 보면 엄청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이 프로젝트에서 얻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방문객 수가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이 이 마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이 마을을 걷고, 보고, 느끼는 감각을 관찰하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는 농촌마을활력프로젝트의 용역 사업이었다.
공공의 보조금을 받아 운영되는 사업이었기에 행정과의 조율이 필수였다.
하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현실적인 벽을 절실히 느꼈다.


문서로는 전달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고 서류상 성과와 체감하는 성과는 늘 어긋났다.
현장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정량화할 수 없는 감각을 설득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버거웠다.


대한민국의 행정 시스템은 여전히 '정성'보다 '정량'을 중시했다.
사람들의 감각, 공간의 온도 같은 것들은 보고서에 숫자로 적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야말로 지역을 움직이는 진짜 힘이고 원동력이 된다고 믿지만 그들 입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외지인인 나를 믿어 줄리가 만무했다.


나는 처음으로 명확히 깨달았다.


로컬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구조와 싸우는 일이라는 것을.

라이크현남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한 한걸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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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무엇을 증명하려 했던 것일까? 이런것을 하면 좋다는 정성적인면만을 강조한 기획안을 가지고 행정기관과의 소모전을 이겨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순수하게 어떤 숫자나 효과보다, 사람들이 조용히 건네는 말 한마디, 발걸음 하나, 작은 공감의 눈빛이 이 마을의 진짜 힘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진짜 마을이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 어떤 질문에도 답을 완전히 얻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건 있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따라온다는 것이다.


마을은 상품이 아니고, 브랜드는 로고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삶의 조각들이 쌓이고, 누군가의 기억으로 남을 때 비로소 이름을 가진다. 나는 그 가능성의 입구에 한 번쯤 서본 셈이고 그걸로 충분했다.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고 이야기 해보고 사람들이 엮어내는 기억의 조각들을 지켜보며 정량화 되지 않는 일들을 어떻게 하면 추진해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결의를 다졌던 것 같다. 그렇게 지쳐가던 중이었던건지 아니면 에너지를 얻어가는거였는지 알 수 없는 2024년의 절반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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