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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탐구 세미나

바깥 시선으로 들여다 보기

by 김스윔

아마 이때 부터 였던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나의 실천을 조금 더 확장시켜 나가기 시작 한 때였다.

이전에는 그저 양양에서 어떻게 하면 이곳의 삶을 더 많이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터 시작된 다른 지역의 사례들과 외부 자원의 중요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조금 더 공공적이면서 공식적인 성격을 띄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이때 쯤 부터 양양을 이야기 하면 사람들은 서핑과 유흥을 함께 떠올리기 시작했다. 젊은 서퍼들이 모이고, 화려한 카페와 상점들이 즐비할 것이라는 상상과 유흥이라던지 밤문화 같은 단어와 함께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살고있던 당시, 2024년의 양양은 상상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여름철 잠시 잠깐의 관광객들의 환호성이 지나고 나면 파도소리,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가 귀에 익은 곳.


관광지로서 소비되는 이미지와, 생활인으로서 경험하는 현실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 아무리 우리가 이

곳의 매력을 이야기해도, 외부에서는 온라인에 자극적으로 도배된 서퍼들의 환락도시 같은 자극적인 콘텐츠에 가려져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나는 이 '갭'을 좁히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고 저항하기 보다 지역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에게,직접 보여주고 이야기를 확장 시켜 볼 수 없을까?


당시 나는 지역에서의 경험과 내가 만들어놓은 공간 그리고 내가 가진 능력을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지역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했고 지역의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대학원의 어느 랩을 발견했다.


이미 석사학위가 있었지만 학위가 아니라 같은 분야의 사람들을 더 만나고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어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서울의 대학원에 입학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그렇게 급했지? 싶을 정도로 나 스스로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시간과 비용,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돌아보면 그게 나구나 싶기도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내가 다니던 대학원 랩의 교수님과 학우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로컬 경험을 연구하는 사람들.


외부인의 눈을 가진 그들이라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지역탐구 세미나를 현남면에서 열어 그들을 양양으로 초대했다. 목적은 단순했다.
'현남면을 걸어보고, 현남면을 이야기하는 것.'
대단한 프로그램은 없었다. 관광지처럼 꾸미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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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서피비치에 먼저 들렀다.
멋진 관광지, 이국적인 분위기 속으로 사람들을 초대한 이유는 물리적인 거리감에 대한 경험을 이해시키고 싶어서였다.

서핑 보드가 즐비한 해변, 사람들로 붐비는 카페,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포토존. 하지만 차를 타고 5분만 내려오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서핑이 관광이 아닌 문화로 자리잡은 현남면은 소담하고 조용했다.
바다는 여전히 아름답게 존재했지만, 사람은 없었다.
작은 해변들이 여러 개 모여있는 현남면은 해변마다 작고 오래된 바닷가 시골마을의 오래된 골목들이 얽혀 있다. 나는 사람들을 동산리 골목으로 이끌었다.


낡은 골목길, 아무렇게나 자란 들꽃, 사람이 거의 지나지 않는 골목.
하지만 관광객이 원하는 풍경에는 그런 무질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원래 살던 동네와는 다른 속도의 시간, 느리게 흐르는 마을의 풍경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사랑하게 된 이 동네의 진짜 매력은 속도에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고 소비되는 대신, 묵묵히 제 속도로 살아가는 곳. 현남면의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짧은 골목 투어가 끝난 후, 우리는 모여 앉아 아이디어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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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누고 표현했던 아이디어들의 일부

"이 동네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살릴 수 있을까?"
거창한 재개발이나 거대 프로젝트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소소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동네 골목을 따라 산책로를 만든다면 어떨까? 작은 팝업 가게를 열어볼까?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마켓을 열어보면?


고민의 주제를 학우들에게 던져둔 나는 "빵집 하나만 있어도 좋겠다."라는 제안을 했다.
농담처럼 던진 그 말은, 이후 우리가 실제로 빵양빵양 같은 팝업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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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는 이곳의 아름다움은,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바깥의 시선과 안쪽의 생활이 적당히 섞일 때, 지역은 살아난다.

이 세미나는 화려하지 않았고 지역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리고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단순한 경험이 오히려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외부인은 지역을 다르게 본다. 그 다름은 때로 불편하고, 때로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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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익숙해져서 지나쳤던 풍경을 그들은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해주었다.

그렇게 아는 사람만 알던 지역의 진짜 모습을 아주 조금씩이나마 퍼트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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