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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 나녀석 전

칭찬은 스스로 만드는 것

by 김스윔

양양에 내려와서 해야겠다 생각했던 일은 “나처럼 연고 없는 생활인구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자”였다. 공간을 만드는데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에 사실 영업과 판매에 공을 들였어야 했다.


하지만 이 공간을 상업적 의미보다 나의 이상과 꿈을 담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일이라는 것이 내가 잘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보다 누군가 그래 걔들 잘 하더라 하는 인정이 있으면 조금 더 빨리 성장한다는걸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지자체나 국가로부터 이곳은 그런곳이야 라는 인정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원사업을 찾아보게 되었다. 마을기업부터 협동조합까지 검토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지원사업들을 검토했고 그러다 “농촌마을활력프로젝트”라는 사업에 지원하게 되었다.


10년동안 하드웨어를 만드는(건축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내는) 사업으로 농촌마을에 지원되던 공모사업이 소프트웨어(커뮤니티 기반의 행사 위주)사업으로 전환된 첫 해라고 했다.


신청부터 난관이었다. 농촌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사업이었기에 어떻게 하면 농촌에 도움이 되는지를 풀어내야했다. 하지만 이미 양양, 그 안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남면은 이미 서핑으로 유명해진 관광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농촌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농촌 그러니까 농업에 도움이 되는게 아니라 농촌을 이루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설득해야 했다.


나는 그것을 교육의 힘으로 믿었다.


양양을 찾는 생활인구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을 지역에 나누어주면 지역을 위한 활동들이 생겨나고 그 씨앗으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활인구들이 적극적으로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cover1.jpg 힐러스


그리고 그 거점으로 내가 만든 공간을 활용하고 싶었다. 공간을 건축하고 상업활동에 매진했다면 수익이라도 생겼을텐데 나는 나의 이상을 쫒아 다니느라 그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하지만 어차피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게 사업계획서는 총 17번의 수정을 거쳤다. 발표자료는 셀수도 없을만큼 수정이 되었다. 그렇게 어찌저찌 사업에 선정이 되었고 내가 생각한 것들을 현실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에 잠시 부풀어있던 참이었다.


게다가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상도 받게 되고, BI디자인으로도 상을 받았다.


20년이 넘는 사회생활 중 처음으로 “돈”보다 나의 “가치”에 투자했던 한해였고 노력이 결실을 맺는것 같았다. 그렇게 2023년 겨울이 되었고 연말을 의미있게 보낼 아이디어를 생각하다 문득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네? 아무도 나를 칭찬해주지 않는다면, 나라도 나를 칭찬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어른이 되고나니 더 이상 누군가 나를 칭찬해주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작은 일에도 칭찬을 받았다. 지나가는 어른들에게 인사만 잘해도, 그림 한 장을 그려도, 숙제를 제때 제출해도, 심지어는 넘어지지 않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잘했다"는 말이 돌아왔을 터이다. 하지만 어느새 그런 작은 칭찬이 사라졌다. 잘해도 당연한 것, 못하면 질책을 받는 것, 그것이 어른의 세계였다.


열심히 살아온 내가 나를 칭찬하면 되겠다는 간단한 생각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만든 동력이되었다. '잘했다! 나녀석전'은 그렇게 탄생했다. 준비 기간은 고작 1달 남짓. 보통 이런 이벤트라면 최소 몇 달을 준비해야 할 일을, 나는 단 한 달 만에 계획하고 실행했다. 주어진 시간은 짧았지만, 마음만큼은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프로젝트는 핵심 타겟으로 생각한 생활인구 인터뷰, 온라인으로 사진과 상 이름, 그리고 칭찬사유를 받는 잘했다 나녀석 칭찬상장, 누구나 이름없이 참여 가능한 무명의 녀석들, 그리고 이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 일부와 함께한 현생밋업, 총 4개의 세션으로 준비되었다.


당시 함께 일하던 친구에게 전체적인 흐름과 내용을 설명하고 생활인구 인터뷰와 네트워킹데이를 맡겼다.

프로젝트는 외부인의 관심을 기대하기보다는, 이곳에 살고 있는 '생활인구'에 집중하기로 했다. 20대, 30대 생활인구 9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왜 양양에 오게 되었나요?" "이곳에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살면서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질문은 단순했지만 대답은 단순하지 않았다. 자연, 자유, 숨 쉴 틈. 그들의 이야기는 짧지만 깊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외롭지만 스스로를 지탱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오프라인으로 하는 행사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생활인구 자체가 적은 데다, 지역 주민들 대부분은 고령층이었다. 이 행사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온라인을 병행하기로 했다.


이미지 6631.png 온라인을 통해 전시를 열기로 했다


사진 한 장, 나에게 주는 상 하나, 그리고 그 상을 주는 이유를 간단히 적어 온라인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그렇게 모인 상장들은 Nomad Oasis라는 웹사이트에 모두 게시되었다. ‘어쨋든 포기 안했’, ‘잘참았상’, ‘새로운 세상’… 그 상장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울림을 느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이유로 이곳에 있었지만, 결국에는 같은 이유로 살아내고 있었다.

이미지 6632.png 매년 다시 하고 싶은 이벤트였다.

오프라인에서는 '무명인 녀석들'이라는 코너를 마련했다. 힐러스 공간 한 켠에 카드와 펜을 비치했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다가와 카드에 글을 썼다.
'잘 버텼다.'
'혼자서도 괜찮았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 문장들은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툴고 투박했다. 하지만 그런 글들이 오히려 더 진심처럼 느껴졌다. 서투른 어른들이 눌러쓴 짧은 글들이 꼭 내 마음 같았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한순간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안에는 엄마가 쓴 카드도 있었다. 엄마가 쓴 카드이지만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았을때 슬프기보다 깊은 내면의 무언가가 움직이는 느낌도 들었다.

이미지 6633.png 엄마가 남긴 무명의 글


오프라인 공간의 모객은 쉽지 않았다.이 지역은 관광지가 아니었고, 사람들이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외지인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지역 주민들의 깊은 신뢰를 얻기엔 시간도 경험도 부족했다. 기존 커뮤니티와는 거리가 좁혀지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바꿨다. 생활인구를 중심으로, 그리고 온라인 팔로워들을 중심으로 천천히 퍼져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힐러스라는 공간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이 프로젝트를 알렸다. SNS를 통해 온라인 참여를 독려했다. 숫자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행사의 마지막, 작은 네트워킹 파티를 열었다. 이름하여 '현생 MeetUp'. 인터뷰에 참여한 생활인구들과 프로젝트에 공감한 몇몇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장을 읽어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었다. 박수 소리가 울리고, 어깨를 두드리고, 서로를 안아주는 손길이 이어졌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다시 한번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1명이 바꿀 수 있는 세상, 보이지 않는 울림이 숫자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 그래서 성과를 수치로 환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단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거대한 축제가 아니어도,누군가에게 필요한 작은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지만 참여해준 사람들과 준비하느라 고생한 친구 덕분에 '잘했다! 나녀석전'은 그렇게 잘 마무리되었다.


현남면의 한적한 겨울, 작은 공간에서,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잘했다, 나.
잘했다, 우리.


비하인드

처음 “잘했다 나녀석전”의 이름은 “잘했다 나새끼전”이었다. 엄마 아빠가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을 봤을 때 양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으며 “아이구 내새끼” 하는 모습의 기억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새끼”라는 단어로 과연 홍보를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로 조금 수위를 낮추었다. 이것은 잘 한 선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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