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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파인더 양양

골목을 바라보는 시선

by 김스윔

원래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뚜벅뚜벅 골목 여행전’이었다. 나는 양양이라는 이 동네를 천천히 관찰하게 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걷고, 눈으로 보고, 자기만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싶었다. 기록은 가장 확실한 방식이었다. 그래서 이 마을을 누군가가 남긴 사진으로 기억하게 만들고 싶었다. 혼자가 아니라 백 명이, 각자 다른 눈으로 이 마을을 바라보고, 그 기록을 쌓는 일. 그것이 ‘뚜벅뚜벅 골목여행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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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도 이 기획은 양양군 문화재단과 연결되며 더 커졌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직접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제1회 ‘잘했다 나녀석전’을 보게 된 문화재단의 담당자가 연락을 해왔다. 지역민을 참여시키고 온 오프라인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내가 이미 준비해 두었던 기획안을 공유했다. 그렇게 이 프로젝트는 ‘뷰파인더 양양’이라는 이름으로 확장되었고, 나의 개인 실험은 공적인 제안이 되었다.


목표는 한가지였다.
사람들이 직접 양양을 걷고, 느끼고, 기록하는 것.

그리고 그 기록을 한 사람의 시선이 아닌, 다수의 시선으로 축적하는 것.

처음 시작은 단순하게 출발했다. 온라인을 통해 참가 신청을 받았고,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배포하고 회수하는 일이었다. 출발지는 내가 커뮤니티 센터로 만들고 싶었던 공간이었다. 이 공간이 단순한 행사 장소가 아니라 지역 생활의 중심이 될 수 있을지를 실험하고 싶었다. 또 다른 가설이 있었다. “지역에 정말 청년들이 없을까?” 이 프로젝트는 그렇게 두개의 실험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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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는 점차 세심하게 준비되었다. 단순히 많이 나눠주는데 목표를 두지 않았다. 양양읍에 50%이상의 주민들이 거주하는데 가장 먼 현남면 까지 카메라를 수령하러 올것인가부터 과연 포스터와 SNS홍보만 보고 사람들이 신청을 할것인가 까지 하루하루가 걱정의 연속이었다.


매번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담당자의 우려 역시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과감해지기로 했다. 지역에 청년들이 있다면 그들은 이해하지 않을까? 그들은 이 과정을 즐겨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담당자를 설득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각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ai로 내가 원하는 컨셉의 포스터를 만들었다.


이미지 8702.png Ai로 뽑아낸 컨셉 이미지



컨셉이미지를 뽑아냈고 의도도 설명했다. 그리고 포스터의 모델을 양양군의 공무원인 친구에게 부탁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담당자도 흔쾌히 동의해주었고 포스터 모델을 부탁한 친구도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포스터는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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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파인더라는 글자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행사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었다. 보통 지자체의 포스터는 6하원칙을 포스터에 고스란이 노출해서 보여준다. 이유는 지역내 모든 주민들을 타겟으로 하기 때문인데 결국 이 “모든”이라는 요소가 호소력을 파괴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20~30대의 존재를 확인해보고자 했던 나는 텍스트 배치도 세로로 하고 자세한 내용은 QR코드에서 확인 하도록 했다. 의도적인 허들을 둔 셈이다. 중장년층을 배제할 이유는 없었지만 청년의 참여가 없다는 기존의 행사의 결과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컨셉을 정하고 세부적인 항목들을 조정해나갔다. 온라인으로 카메라 신청을 받고 카메라를 특정 공간에서 특정 기간 동안 배포하고 일정 기간 촬영 후 반납을 받고, 반납받은 필름을 현상해서 개별적으로 다시 배포한 후 한 장의 사진과 사진내용을 또 다시 접수받아 사진전을 열고, 사진첩을 만드는 일까지… 무시무시한 과정이었고 과감한 도전이었다. 어쨌든 시작했으니 먼저 카메라를 배포받는 장소부터 정해야했다. 마음속에 이미 배포처는 정해져있었다. 그 어떤 행사든 가장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양양읍에서 행해지므로 이렇게 타겟이 뾰족한 행사는 현남면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팝업이 진행되었던 동산리 해변 앞 숨겨진 작은 2층집을 카메라 배포처로 정했다.


온라인으로 미리 수령날짜를 정하게 하고 1명이 배포처를 지키며 카메라 사용방법고 주의사항들을 일일히 설명했다. 언제 반납할지, 어디가서 찍을지까지 확인했다.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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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포처에는 양양의 6개면에 대한 설명을 담았다. 모든 읍면의 지형을 따서 케릭터화 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스팟을 만들었다. 내가 직접 한 작업이므로 당연히 퀄리티는 보장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역을 형상화 한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후에는 “귀엽다”는 감탄사가 나왔다. 재미있는 결과였다. 세련되고 멋진 케릭터가 아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 내가 아는 곳에 생명력이 불어넣어 진 것 만으로 사람들은 감정이 동하는 모습이었다.


다음은 반납처를 정해야했다. 반납처는 네 군데를 지정했다. 현남면에 두 곳, 양양읍에 두 곳. 실제로 배포때 데이터를 확인해 보니 38%가 넘는 사람들이 양양읍에서 촬영할 예정이라는 답변을 했다. 받으러 오는 심리와 반납하러 가는 심리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참여자의 불편한 감정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또 반납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시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는 노릇이기도 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홍보가 시작되었고 당시 타이밍 좋게 정미조 선생 님의 “양양"이라는 노래가 공개되었다. 그 노래에 맞게 포스터를 촬영 하는 과정을 담은 릴스를 만들었고 SNS에 광고를 시작했다.


카메라는 총 100대를 준비했기에 초반 신청량에 따라 이 프로젝트의 성패가 결정될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신청폼을 열고 둘째날, 놀랍게도 52%의 신청이 마감되었다. 그리고 5일만에 전체 신청이 끝났다. 평균 연령은 34.9세. 내가 늘 들어왔던 ‘양양에 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은, 이 데이터 하나로 반박할 수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없는 게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 맞는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이다.


세대를 나눈다는 개념보다 타겟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문화사업은 결정권자의 의사에 따라 “누구나”를 전제로 흐트러지는 경우는 너무나도 흔하다. 아마 이 프로젝트도 담당자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이런 결과를 도출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런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법. 우리가 선택한 일회용 카메라의 한계가 너무나도 분명했다. 찍힌 사진 중에는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도 많았고, 노출이 부족하거나 흔들린 것도 적지 않았다. 이 때는 정말이지 절망적이었다. 카메라 업체와 현상에 대해 매일같이 통화했으며 카메라 업체측은 “이게 최선이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나는 그 모든 필름의 현상된 파일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리고 정말 살릴수 없는 것들 외에는 100명이 32장씩 찍은 3200장의 사진을 일일히 보정했다. 그렇게 정말 많은 사진들을 살려냈다. 내가 디자인이라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포토샵이라는 툴을 사용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취미로 사진을 찍었던 경험이 없다면 이 과정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결국 기획자에게있어 경험은 나의 경험을 리빌딩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되새기게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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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보정으로 살려낸 사진들은 참가자들에게 모두 일일이 연락해서 이메일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참가자들은 각자 한 장의 사진을 제출하도록 했고, 그 사진은 반드시 ‘양양’에서 찍은 것이어야 했다. 그렇게 한 장씩 모인 사진은 다시 100개의 시선으로 구성된 ‘양양의 이미지’가 되었다.

우리는 그 사진들을 인화해서 전시회를 열었다. 한 사람의 완벽한 앵글이 아니라, 100명의 조각난 감각이 모인 장면. 그 전시를 통해 나는 ‘기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확인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전문 작가도, 콘텐츠 크리에이터도 아니었다. 그저 이 지역을 걷고 싶은 사람들이었고, 그 기록은 삶에 가까운 장면들로 채워졌다.

전시에는 또 하나의 장치가 있었다.
양양의 과거 사진을 복원해 함께 전시한 것이다.
오래된 흑백 사진을 컬러로 복원했고, 그 사진은 지금의 사진과 나란히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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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과거와 현재를 병치시키는 장치였다.
양양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설명하는 대신, 그 흐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참여자에게 1장의 사진을 받을 때 사진과 함께 제목, 장소, 짧은 설명을 함께 요청했다.

그렇게 접수된 내용들을 책으로 엮어 이야기가 있는 사진첩을 만들었다. 100명의사진과 사연으로 구성된 이 책은 긴 사연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사진을 찍은 사람과 피사체의 관계를 생각하게되고 그렇게 한장한장 보다보면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 드는 결과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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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 이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확인해보고 싶었던 몇가지 가설을 넘어 생각 이상의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실험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누군가의 ‘있음’을 증명하는 일은, 그 자체로 어떤 지역의 자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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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는 양양에 무엇이 이미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참여할 사람은 있었고, 걸을 수 있는 골목도 있었고, 기록할 감각도 있었다. 필요한 건 그걸 받아낼 구조였다. 뷰파인더 양양은 그렇게, 지역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 장면으로 보여준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우리가 걸었던 길, 멈춰 섰던 순간, 셔터를 누르며 바라봤던 것들, 그 모든 장면이 결국은 이 지역의 현재이고, 미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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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뷰파인더 양양에서 촬영된 사진은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다.

http://viewfinderyy.com/home/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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