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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Feb 21. 2019

부대끼지 않는 삶

 얼마 전 한 2세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한국사람들은 왜 이렇게 내 월급을 궁금해하냐고 말이다. 아무래도 또 주위에 한국사람들이 사적인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졌었나 보다. 나는 그냥 그 사람들이 너한테 관심이 많은가 봐 하고 대충 답변을 얼버무렸다.


 이곳과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를 꼽으라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부대끼며 살지 않는다. 나는 타인과 항상 거리를 두고 생활하며 그들과 내가 직접 살이 맞닿는 접촉의 순간은 극히 드물다. 혹여라도 원치 않는 접촉의 순간이 있다면 서둘러 미안함을 표하고 다시 금방 제 위치로 돌아온다. 물리적 접촉 이외에도 어떠한 시선이나 무언의 평가도 타인에게 쉽게 던지지 않는다. 타인과 내가 연결되는 지점은 쌍방의 합의가 있거나 친밀하고자 서로 노력할 때에만 이루어진다. 


 길은 어디에나 있고 넓다. 좁은 골목에서 어깨가 부딪치며 부대낄 일이 없고 막다른 골목을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두 발을 딛고 서야 하는 길도 그러하고 인간의 살 길도 그러하다. 큰 나라이다 보니 한국보다 선택의 폭이 넓고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지 않는다. 혹 벼랑 끝에 몰려도 어딘가에 살 구멍이 있고 열린 길이 있다. 


 사람은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의 공간을 확장해 가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자신이 차지한 자리에서 내려가지 않으려는 욕심, 나아가 차, 사무실, 집 등 자신의 공간을 더 넓혀 가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한국은 좁은 땅덩어리에서 이런 욕구가 뒤엉켜 몹시 부대낀다. 결국은 서로의 영역을 뺏고 뺏기는 땅따먹기 수준인 곳에서 부대끼지 않고 타인과의 최소한의 거리를 지키며 살 수 있는 이 곳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도 이 곳 한국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결혼을 언제 할 건지 묻는다. 막상 결혼을 하면 애를 언제 낳을 것인지 질문할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이제 둘째는 언제 갖느냐고 물어올 것이다. 그래도 한국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받던 사적인 질문들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때로는 미국의 이런 개인주의 문화가 정 없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각자의 공간을 적당히 유지하며 살며 나는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만의 방'이 생긴 것이다. 원래도 남 눈치 보며 사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여기서 더 자유롭고 나 자신을 더 알아가는 시간을 많이 갖고 있다. 남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눈치를 본다. 내가 조금도 덜 행복한 일이 없도록 말이다. 내가 공개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 나의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고 그것은 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전반에 깔려 있다. 


 우린 결국 개개의 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꼭 물리적으로 붙어 있을 필요는 없다. 어쩌면 우린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떨어져 있어야 더 애틋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막상 가까이에서 본 누군가의 민낯과 체취는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에서 오는 환상과 조금의 그리움을 남겨 둬야 우리 관계가 더 간절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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