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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기노 Jun 19. 2024

의협 휴업 사태와 이재명-윤석열 치킨게임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6월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투쟁선포문을 읽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6월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정치가 국민들 먹고 사는 것 해결해주고 아픈 것 적절히 치료해주는 게 주업인데 이토록 정치에 대해 무력감과 절망을 느끼기는 처음인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사 휴업 파국에 대해 그 어떤 실질적인 솔루션을 제시하지 않은 채 “국민이 동의하지 않고 실현도 불가능한 주장을 고집하면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며 딴 세상 얘기를 하고 있다. 대통령이야 아프면 24시간 대기하는 응급의학의 도움을 즉시 받을 수 있기에 ‘제발 아프지 말자’며 노심초사하는 국민들의 심정을 당최 알 길이 없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라고 나을 게 있나 싶다. 박주민 보건복지위원장은 6월 19일 전체회의를 열고 의사 집단휴업 사태와 관련한 현안 질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안 나간다”고 뻗대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상임위 회의에 정부가 협조하지 않을 경우 입법 청문회를 열고 정부의 출석을 강제할 법적 조치에 나서겠다고 경고하고 있지만 그런 윽박지르기가 언제까지 갈지, 과연 그 효과는 있을지 여전히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민주당이 22대 국회 개원 이후 ‘상임위 총공세’를 통해 여당을 압박하고 있지만 이 또한 적절한 방식인지도 의문이다. 민주당은 “왜 21대 국회에서는 지금처럼 강력한 ‘상임위 공세’를 정부여당에 퍼붓지 않았느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당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전공의들이 파업 한 달을 넘긴 시점인 3월 중순을 즈음해 관련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를 한 번도 열지 못하고 휴업상태로 방치한 바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 정신이 팔리기도 했고, 복지위 소속 여야 의원들 다수가 낙천하거나 힘겨운 경선을 거치면서 전공의 사태를 사실상 방관했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민주당은 정부와 의협 간 강대강 대치 국면에서 ‘중간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함에도 뚜렷한 대응 방안이나 대안을 전혀 모색하지 못하고 있다. ‘여당이 보건복지위원회에 불참하니 우리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분위기다. 문제의 근원인 22대 국회 원 구성 협상에 국민의힘 퇴로를 열어주고 전향적 자세를 보여 사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함에도 마냥 정부여당 책임론만 들먹이고 있다.      


6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에 불출석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차관들의 자리가 눈에 띈다. 사진 아래는 민주당 박주민 보건복지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특히 민주당은 정부보다 의사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큰 상황이라 사태 해결에 주도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의정 타협을 위해서는 의사들을 설득하거나 압박도 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좋은 일만 대신 해주는 꼴이 되기 때문에 더욱 몸을 사리며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석열 정권 총선 참패로 민주당이 국정운영의 책임을 통감하고 국회 입법을 통해 윤 대통령의 ‘무능’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여당과의 전략적인 협치가 필수적이다. 지금과 같은 일방적 의회 독주는 한계가 있다. ‘정치 실종 사태’가 장기간 이어지면 범야권 191석을 가지고 있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책임론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을 볼모로 야당과 치킨게임을 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총선 참패 직후 이재명 대표와의 ‘긴급 회동’을 통해 협치와 굴복의 페인트모션만 잠시 취했을 뿐 그 후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은 정부 출범 직후와 하등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북한 문제와 의협 휴업 사태에 대해 강경 대응으로 일관해 민주당의 반발과 저항을 더 유도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특히 의협 사태의 경우 ‘힘없는’ 대통령이 야당의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끝까지 수수방관할 경우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책임론은 정부여당의 그것을 압도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회 원 구성 협상 대치국면이 장기화되면 민주당으로서는 출구전략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21대 총선에서도 상임위원장 독식으로 초반에 바짝 국민의힘 ‘코뚜레’를 당겨 봤지만 정치 파행의 책임론을 덮어쓰고 오만함의 낙인만 찍혀 결국 정권까지 내주는 나비효과가 됐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여야 대치 정국 노정이 결코 민주당에 유리할 수 없다는 것은 지난 21대 국회를 결산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 민주당은 ‘이재명 용비어천가’가 담장 밖을 넘어 전국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이재명’‘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아부 퍼레이드가 칼럼 소재로 쓰일 정도로 민주당은 지금 압도적인 의회 권력에 취해 있다. 이쯤에서 총선 압승 승전고를 멈출 때도 됐건만 민주당의 이재명 아부 행렬은 그 선을 넘어서고 있다.      

이재명 맞춤형 당헌·당규 개정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일 때 박찬대 원내대표는 6월 12일 당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너무 반대를 많이 해서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중략) 이 대표가 너무 착하다. 나보다 더 착하다. (중략) 이 대표가 너무 반대하길래 ‘그냥 욕먹으시라, 욕을 먹더라도 일찍 먹는 게 낫다’고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4월 29일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미리 준비해 온 메시지를 품에서 꺼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표가 박 원내대표 자신보다 더 착하다는 대목에서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온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다. 언제부터 우리 정치를 착한 사람이 했다고 ‘착하다’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는 형용사를 이토록 거리낌 없이 들이대는지 어이가 없다.  

    

어쨌든 이재명 대표는 이제 민주당에서 전지전능하신(almighty) 신이 됐다. 민주당의 당·대권 분리 제도는 사실상 폐지됐고 이재명은 이제 당 대표를 제 입맛대로 더 할 수 있게 됐다. 각급 당직자의 부정부패 혐의 기소 시 직무 자동정지 조항도 없어졌다. 2022년 대선 직후 예외 조항(정치탄압 등)을 두었는데 이번에는 그것마저 없애버려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는 적어도 민주당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임위원장 독식은 그냥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사법부에 대한 ‘입법의 칼’도 들이대고 있다. 민주당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판검사들을 무고죄로 처벌한다고 으름장을 놓거나 법왜곡죄로 그들 옷을 벗기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물론 이 모든 사법부 압박은 윤석열 대통령 비호 아래 이뤄진 정치검찰의 ‘독주’를 바로잡는다는 명분 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떳떳하다.     

 

이 대표가 대북송금 특검으로 다시 검찰의 기소를 받게 되면서 언론을 검찰의 애완견으로 부른 것도 다분히 의도적이다. 언론 길들이기라기보다 개딸 등의 강성 지지층에 던져 주는 무더운 여름 시원한 사이다같은 것이다. ‘윤석열 씹기’에 목이 마른 지지층들에게 잠시 청량감만 주면 그만이기에 언론인들이야 치욕을 겪든 말든 상관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이재명은 급기야 ‘어버이’의 반열에 등극했다. 저 북쪽지방의 ‘어버이 수령’ 이래 당 대표를 아버지로 부르는 지금의 민주당 작태는 웃음을 넘어 공포감이 밀려온다. 이 대표에 의해 ‘영남권’ 최고위원에 지명된 강민구 민주당 대구시당위원장은 그 은혜에 감복한 나머지 이런 말을 던졌다.     


6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새로 지명된 강민구 최고위원이 이재명 대표에게 깍듯하게 90도로 인사하며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아버지는 이재명 대표님이시다. 이 대표님께선 집안의 큰 어른으로서 총선 직후부터 영남 민주당의 발전과 전진에 계속 관심을 가져주셨다. 국민의힘이 영남당이 된 지금, (이 대표는) 민주당의 동진전략은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다. 그 첫 발을 이 대표께서 놔주신 것에 깊은 감사드린다”고 감읍했다.      

민주당은 당헌 개정을 마무리해 이재명을 ‘대통령급 대표’ ‘종신 대권주자’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195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내 다수를 차지한 자유당은 이승만의 종신 집권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앤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개헌안을 사람을 반올림하여 통과시켰다)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이재명 대표의 어깨 위에는 ‘이미 대통령’이라는 민주당의 훈장이 어른거린다.      

민주당은 상임위원장 배분 대치 문제도 국민의힘에 ‘줄 때 받아라’고 이죽거리며 위세를 떨고 있다. 언론도 한번 겁을 줘 ‘이재명이 다음이니 조심들 해라’는 섬뜩한 경고문을 던졌다. 이렇게 민주당은 윤석열 탄핵 포격을 위한 세팅을 모두 끝냈다. 이제 포를 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민주당은 ‘영리한’ 윤석열이 놓은 덫을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집권 이후 윤 대통령의 머릿속에 ‘정치’와 ‘타협’이라는 단어는 아예 없다. 국가 전체를 ‘올오어낫싱’의 승패 도박판에 올려놓고 민주당과 이재명의 맷집을 시험해보고 있다. 야당이 더 극렬하게 반발하며 국가를 혼란에 빠뜨릴수록 윤석열은 손해 볼 것이 없다. 그는 지금 탄핵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적인 ‘약자’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용비어천가가 더 높이 울려 퍼질수록 윤석열의 덫은 더 강고하고 날카로워질 것이다.      


다시 의협 휴업 사태로 돌아가 보자. 대안 없이 무작정 휴업부터 하거나 응급실의 메스를 내려놓는 의사들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악다구니 치킨게임에만 빠져 있는 작금의 정치와 정치인들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아프지 말자’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기도만 열심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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