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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Sep 19. 2024

14. 미드에 나오는 우아한 주택살이는 없다

[주택살이 2년차] 동물과 자연, 인간이 더불어 함께 하는 일상의 즐거움

주택살이 2년째에 접어든다. 뉴잉글랜드에서 두 번째 여름을 맞이하니 주택살이의 좋은 점과 어려움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선명해진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아파트 생활만 했다. 아스팔트 위만 걷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까지 이동하고, 집에 문제가 있으면 관리실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다. 이 삶이 엄청나게 편리하다거나 문제가 있다고 느낄 여지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아파트살이를 했으니 단순하고 기본적인, 남들도 살아가는 특별한 것 없는 거주 공간이 아파트였다.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이사를 하며 렌트할 집을 구할 때 1순위 고려 대상이 있었다. 바로 ‘주택’ 이어야 했다. 땅덩이가 넓은 미국으로, 그것도 도시도 아닌 도시 외곽으로 이사 하는 마당이니 꼭 한번 주 살이를 해보고 싶었다. 미드 한 장면처럼 커다란 개를 키우고, 뒤뜰에서 밤이면 모닥불을 피우고, 화단에 꽃을 심고 텃밭을 가꾸는 꿈을 꿨다. 주택살이가 얼마나 고단한지 알지 못했기에 가질 수 있었던 꿈이었다.  


엄마도 주택은 처음이란다


넓은 앞뜰과 뒤뜰이 있고, 집 앞 도로를 건너면 호숫가에 닿을 수 있는 작은 주택을 빌려 2022년 겨울부터 살기 시작했다. 주변에 이웃이 거의 없어 낮에도 고요하기 그지없다. 주변에 불빛이 거의 없어 밤마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과 커다란 보름달을 누릴 수 있다. 꿈과 희망이 가득했던 주택살이의 로망은 뉴잉글랜드의 겨울 추위를 만나며 와장창 깨졌다.


주택의 겨울은 아파트 겨울과 다르게 말 그대로 추웠다. 특히나 공기를 데우는 미국식 난방 시스템은 극복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온돌 문화에 익숙한 나에게 차디찬 바닥을 디디는 일은 맨발로 흙길을 걷는 것만큼 어려웠다.


여느 집들과 마찬가지로 벽마다 단열재가 추가되었다고 하나 벽에서는 언제나 찬바람이 새어 나와 냉장고 문을 열어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눈이 오는 날은 눈 치우느라 온종일 중노동을 해야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해 겨울 모두 예전보다 적게 눈이 왔다고 했으나 눈을 치우는 내내 남편은 입대한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영하에도 끝없이 흐르는 땀과 함께 참 노동을 맛봤다.


지난 겨울, 아이들은 온종일 눈밭에서 노느라 땀을 흘렸고, 나와 남편은 눈을 치우느라 진땀 흘린 날.


지하실에 보관하는 여행 가방을 가지러 내려가다 소스라치게 놀란 날도 있었다. 엄지손가락보다 약간 더 큰 어린 쥐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쓰레받기에 담아 집밖에 내다 버리며 우리 집에 인간 외 다른 생명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현기증이 났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 없는 나에게 동물이란 동물원에 존재했는데 아뿔싸, 그들이 우리 집 어딘가를 드나들고 있었다.


첫 번째 여름은 즐거우며 고통스러웠다. 길고 긴 겨울이 끝나고 온종일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은 천국이었다. 앞마당은 오케스트라 대향연이 열린 듯 이름을 알 수 없는 들꽃들이 피었다 지기를 반복했다. 비가 온 다음날은 들꽃들이 어여쁨을 뽐내기라도 하듯 한 뼘씩 더 자라있었다. 내가 씨앗을 뿌린 것도 아니니 자연이 보내준 선물 같아 더없는 감동이었다.


여기에 반전이 있다. 즐거움도 잠시, 앞마당을 뒤덮은 들꽃과 풀을 여름내 수시로 깎아야 하는 숙제가 발등에 불처럼 떨어진다. 풀이 우거지면 동물들이 더 자주 출몰하고 은신까지 한다. 며칠 전 태닝이라도 하듯 계단에 누워있는 뱀 한 마리를 보고 기겁을 하고 도망갔던 게 나였다. 앞마당이 숲속이 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미션은 잔디 관리이고, 이것 역시 참 노동의 영역에 포함된다.


꽃집에서 절화를 사와 화병에 꽂는 것보다 앞뜰에 핀 들꽃을 들여다보는 게 더 즐거운 날들이다. 피고지는 들꽃이 예뻐서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들여다보듯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이뿐이면 다행이다. 난데없이 샤워실 구멍이 막혀 역류하고, 이층 어딘가에서 물이 새어 일 층 천장에서 물이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문제를 찾아 고쳐주는 해결사들은 부른다고 곧장 오지 않는다.


불편한 채로 몇 주를 지내기도 하고, 비싼 비용을 치르기도 해야 한다. 2년에 한 번 정화조를 관리해야 하고,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전기가 끊기기도 한다. 텃밭에 심어둔 상추는 동물들이 와서 따먹는 통에 나는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동물들과 경쟁하며 상추를 수확한다.  


렌트한 집이기에 집주인보다 관리 영역이 훨씬 적음에도 집을 둘러싼 노동은 상당하다. 그렇다면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나는 또다시 주택을 선택할까?


주택에 사는 일상은 흥미진진하다


왕초보 주택살이지만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주택을 택할 것이다. 지금 사는 곳은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이웃이 많지 않아 달리러 나가지 않은 한 하루 종일 사람 구경할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온 지구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봄이 오면 분주한 딱따구리와 허밍버드의 노래를 배경 음악 삼아 설거지한다. 올해는 앞마당 계단 아래에 토끼 가족이 입주를 해 거주 중인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길에 마주치면 둘 다 머쓱하게 멈춰 서 있다 제 갈 길을 가는 재미가 있다. 마치 순서라도 정해놓은 듯 피었다 지고 또 피는 풀꽃의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도,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살포시 자리를 잡고 고요히 꽃을 피우는 장면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집 앞에 있는 호수는 그야말로 자연이 선사한 놀이터다. 바닷가에서 해수욕은 해봤지만, 호수에서 수영을 해본 건 태어나 처음인 나와 아이들에게 호수는 도전 그 자체였다. 30도가 웃도는 날에는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을 데리고 곧장 호숫가로 향한다. 미리 쪄놓은 옥수수를 호숫가에서 맛나게 먹고, 정신 없이 물놀이하다보면 바람이 살짝 서늘해지고 똑똑한 배꼽시계가 신호를 보낸다. 5분도 채 안 되어 집에 돌아와 야무지게 저녁밥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둘러 꿈나라로 떠난다.


호수에서 노는 게 즐거워 하루라도 빨리 뜨거운 여름이 찾아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나는 해가 뜨기 직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을 좋아한다. 동쪽에서 해가 뜨고 세상이 어둠에서 주황빛으로 변하는 순간을 고요하게 바라보는 것이 나의 명상이자, 하루를 아름답게 시작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새벽녘에 우리 집 뒤뜰을 배회하며 풀을 뜯어 먹는 사슴과 열 마리가 넘는 칠면조 대가족이 뒤뜰을 우아하게 거니는 모습은 생경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는데 이제는 그저 아름답다.


태어나 처음 보는 곤충을 예고 없이 맞닥뜨려도 예전만큼 놀라 나자빠지지 않는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벌레들을 고이 잡아 자연으로 돌려보낼 정도의 인내심도 생겼다. 아이들 옷에 묻은 흙과 풀이 온 집안에 굴러다녀도 예전만큼 청소에 집착하지 않는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흙바닥과 풀밭에서 뒹굴고 뛰어노는 일상을 원 없이 즐긴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동네 농장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돌아온다. 들판과 하늘이 마주하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


자연을 가까이 두고 살다 보니 인간이 동∙식물과 조화롭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아이들이 풍덩 뛰어들어 수영하는 호숫물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인간과 동물이 살아가는 건강한 지구를 위해 쓰레기 배출량을 줄일 방법을 궁리하게 된다.  


기후 위기, 탄소 배출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구입하는 방법을 찾고, 대형 마트 출입 횟수를 줄이고,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소비도 줄이고, 중고 물건을 얻어 쓰고, 사용하지 않는 장난감을 나누기도 한다.


허리 숙여 일하는 텃밭 노동은 즐겁고, 수고스러운 집안일은 놀이 삼아 한다. 잘 자라는 상추는 집주변 동물들과 나눠 먹기로 마음먹었다. 지하실에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면서 행여나 동거 중인 생쥐들이 놀랄까 봐 ‘안녕, 나 지하실 간다’ 인사하며 내려간다. 계단 아래 토끼 가족이 풀을 뜯어 먹고 있으면 굳이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피해준다.


계단 아래에 사는 토끼 가족들은 뜰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풀을 뜯어 먹는다. 가끔 예상치 않은 순간 마주치는 경우가 있는데 서로 멀뚱멀뚱 서 있다 제 갈 길을 간다.


혹시 모르겠다. 여름과 가을이 지나 겨울이 다시 왔을 때, 옷을 서너 겹 껴입고 양말을 신고 털실내화를 주섬주섬 꺼내 신으면서, 쌓여 있는 눈을 땀 뻘뻘 흘려가며 치워야 할 때 고단한 주택살이를 아주 잠깐 후회할지도.


하지만 주택에 살면서 눈뜨게 된 노동의 참맛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나아가 더 없는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된 지금을 놓치고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알기에 자연을 지키고 싶은 마음도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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