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기석 Apr 13. 2017

20. 후지지 않은 후지노미야 (1일차)

시즈오카가 다가 아닙디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나름 계획을 잡았던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후지산이었습니다. 여유있게 왔으니 한 번 보고가야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온지라 시즈오카가 머릿 속에 박혀 있었는데...검색을 해보니 강원도라고 해서 설악산이 다 보이는 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쥬. 뒤적뒤적 하다보니 가장 괜찮은 곳이 후지노미야더군요. 속초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후지노미야에 숙소를 잡기로 하고 나고야에서 가는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버스도 있고, 여러가지가 있지만 시간도 아무래도 촉박했고, 무엇보다 일본까지 왔으니 신칸센이라도 한 번 타야지 않겠냐는 배짱을 튕겨봅니다. 그리고 곧 후회...

신칸센 표입니다. 위에 보이는 グリーン (그린)은 우리로 치면 특실입니다. 그린카라고 하는데 네잎클로버가 떡하니 붙어 있는 차. 이왕타는 거 까짓거 호사 한 번 부려보겠다고...그런데 오른쪽 가격을 보면 8,580엔, 거의 9만원입니다. 나고야에서 시즈오카까지 50분 걸렸는데 1분당 180엔? 까짓거 뭐...

영수증도 나오고 표도 나오고 뭐 잔뜩 나옵니다. 1월 14일 15시 34분 나고야 출발, 16시 32분 시즈오카 도착

히카리입니다. 신칸센 열차 등급인데요 노조미, 히카리, 고다마 이렇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노조미가 정차역이 가장 적고 빠르다면 그 다음은 히카리, 마지막은 고다마인데요. 개인적으로 노조미가 타고 싶었지만 노조미 열차는 시즈오카 정차가 없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히카리를 탔습니다. 히카리나 고다마나 열차도, 운임도 같지만 정차역이 별로 없는 열차를 타고 싶었거든요.

운임 내역은 기본 3,350엔, 신칸센이니까 특으로 2,480엔, 그린카 2,750엔 이렇게 붙어서 나오네요. 8호차 10-D 좌석입니다. 금연열차네요. 옛날에는 통일호처럼 흡연차가 있었는데 요즘은 전객실 금연. 대신에 흡연구역이 따로 있더랍니다. 재수~

자유석을 끊을까 하다가 그냥 객기부려서 가는 걸로. 노조미, 히카리, 고다마, 노조미 열차가 떠 있네요. 종착역은 도쿄역. 이 날 눈이 많이 와서 죄다 연착됐었습니다. 최소 10분 이상. 나고야에서 도쿄 방향으로는 눈이 안 왔는데 교토에 폭설이 와서 나고야까지 오는 구간이 많이 지연됐거든요.

두둥~ 드디어 처음으로 보는 오리주둥이 신칸센입니다. 현재는 N700계 열차가 운행되고 있는데요. 가끔 보면 닥터 옐로우 (수리차)도 나오고, 여러 데칼이 있다고 하더군요. 에반게리온 신칸센도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본 오리주둥이는 생각보다 이뻤...

히카리 472 열차입니다. 네잎 클로버가 붙은 그린카는 특실입니다. KTX와 달리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계단이 없습니다. 바로 들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훨씬 편하더군요. 짐 옮길 때도,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도 편한 구조였습니다. 세심도 하여라. 뭐 기계구조나 공기역학적으로도 나름 이유가 있었겠죠?

좌석도 크고 깁니다. 저같이 몸이 옆으로도, 앞뒤로도 큰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좌석. 게다가 옆에 아무도 없어서 편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앞좌석 등받이에 트레이가 달려 있습니다. 15인치 노트북을 펼쳐놓아도 충분히 큰 트레이라서 열차타고 이동하면서 노트북 작업도 가능하고, 술판을 벌이기에도...응?

제가 탄 신칸센은 도카이, 동해선입니다. 산요선은 도쿄에서 더 위로 뻗어나가는 노선이구요. 자리에 앉았더니 승무원이 물수건을 한 장 주더군요. 세수는 안 했습니다. 날이 추웠거든요.

나고야역에서 산 나고야 특산품인 테바사키맛 자가비입니다. 테바사키를 안 먹어본 게 후회되더군요. 닭날개면 닭날개지 뭐겠냐고 했는데 왜 안 먹었을까. 하이볼 하나를 사서 한 번 먹어봅니다. 한정판에 약한 저. 바로 도카이 한정상품이란 말에 홀딱.

담배가 땡겨서 흡연칸을 찾았습니다. 흡연부스로 되어 있는데 구멍이 너댓 개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칸이더군요. 잠깐잠깐 담배 피우고 얼른 들어가라는 의도인지. 그래도 담배 못 피우게 해서 화장실에서 피다 걸리는 것보단 차라리 인간적이더군요. 흡연자의 권리도 존중해달라! 모범 납세자인데 말이지.

날은 끄물끄물한데 눈은 오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나고야보다도 덜 오더군요. 나고야가 그런 곳이었다니. 나가노라면 몰라도.

등받이 스위치도 있고, 독서등도 있고, 게다가 콘센트까지. 하카다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1,000km랍니다. 그럼 대체 열차비가 얼마란거야?

신칸센을 타고 시즈오카역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고생인게 후지노미야역까지 가는 게 만만치 않더군요. 시즈오카역에서 JR을 타고 후지역까지, 그리고 후지역에서 다시 내려서 후지노미야까지. 후지노미야는 상당히 시골이었습니다. 상상 이상의 시골. 육교 하나 있고, 동네 조용하고, 밤 되면 갈 곳 없어보이는 그런 동네. 뭐 어차피 쉬어가는 페이지로 온 거니까 북적거리지 않음 어때라고 말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드디어 후지노미야역에서 내려서 게스트하우스에 왔습니다. 왼쪽에 식탁과 의자가 있었지만 전 이게 더 좋더군요. 좌식 의자에 코타츠라니. 아 드디어 코타츠에 몸을 녹여보는구나라는 기대감으로 짐 풀자마자 컴퓨터 갖고 와 일하면서 몸을 녹였습니다. 아아, 코타츠, 코타츠. 이러니 귤 까먹는 동안 고양이가 기어 들어가는구나라는 걸 몸소 느꼈던.

게스트하우스 토키와입니다. 본관과 별관이 있는데 게스트는 별관에 묵고, 본관은 주인장이 있는 곳이더군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 주인은 가고 전 편의점으로 갔습니다. 저녁이니 뭐라도 마셔야지 않겠어요?

저녁 먹기도 만만치 않고 해서 그냥 편의점에 갔습니다. 2리터짜리 매실주가 떡하니 있더군요. 가격도 900엔이 채 안 되는 가격. 뭐 맛은, 답니다. 네 달아요. 매실주치고도 답니다. 물론 그 전에 하쿠츠루에서 워낙에 맛난 매실주를 먹었지만 이건 진짜 답니다. 그런데 어쩌겠어요. 싼 값에 많이 마시려면 이것만한 게 없는데. 

일을 하다가 근처에 뭐가 있나 지도를 보던 중에, 바가 하나 있다고 해서 가기로 결심합니다. 토요일 저녁인데 그냥 있긴 그래서.

마침 운이 좋게 바로 옆에 사케바가 있더군요. 100가지 이상의 사케를 파는 곳이었는데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가 사람들이 없더라구요.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일본은 목, 금, 특히 금요일이 난리라고 하더군요. 주말은 가족과 함께라나? 그래서 금요일에 회식이나 친구 모임이나, 부어라마셔라 이런 것들이 많다고, 그래서 토요일은 상대적으로 한산하다고. 이 날도 토요일 저녁이고, 게다가 동네도 작아서 저 말고 중년 남성 한 분이 있었습니다. 종류별로 깔린 사케라니, 어머 이건 마셔야해.

간단한 안주도 함께 줍니다. 꽤 괜찮더군요. 생각 이상? 사케랑 곁들이기엔 무난한 안주. 그것도 공짜.

말고기도 팔더군요. 구마모토산 말고기 육회 먹어볼래라고 했는데 동네 술집에서 말고기는 뭐냐라는 생각에, 배도 안 고프고 해서 됐다고 했습니다.

우선 한 잔 받아봅니다. 가득 채우고, 컵받침까지 가득 채워 주더군요. 잔을 비우고, 컵받침을 들고 마시니 그러지 말라며 잔에 부어줍니다. 네, 역시 사람은 배워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받침에 있는 술을 버리기도 한다는데 절대 그러지 말라고, 다 먹는 거라고. 그 뒤로는 열심히, 꼭 덜어서 먹습니다. 제대로 배웠어요.

동네 사케바라고 하기엔 뭔가 세련된 느낌? 아무래도 워낙에 종류가 많다보니 그런 걸 수도 있겠네요. 메뉴판도 꽤 두꺼운 편이라 몇 가지 오스스메 (추천)를 부탁해서 먹었습니다. 아마구치 (甘口, 단맛)보다는 카라쿠치 (辛口, 매운? 독한?)를 좋아해서 그 위주로 예닐곱 잔을 마셨...

바 주변에는 이렇게 테이블도 몇 개 있고.

역시나 가라오케. 한참 마시고 있는데 젊은 커플이 들어와서 테이블에서 두어 잔 마시더니 갑자기 마이크 잡고 노래하더군요. 아시타가 아루, 아시타가 아루 어쩌고 저쩌고하는 노래. 나중에 다른 곳에서 또 들었는데, 나름 유명한 노래였다나 뭐라나?

타카사고 (高砂)라는 사케회사입니다. 시즈오카현 회사인데, 알고보니 숙소에서도 걸어서 15분 정도면 간다고 하더군요. 현지인 왈, 마침 내일 아침 9시부터 4시까지 사케 축제가 있으니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해주더군요. 역시 동네 사람들 말을 들으면 오밤중에 술이 생기...? 그래서 내 꼭 가겠노라고, 좋은 정보 아리가토라고 하고 거하게 먹고 나왔습니다. 여독을 풀기엔 술이 최고란 생각과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고 나고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