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조심하라. 적어도 해로움을 불러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六四 括囊 无咎 无譽
象曰 括囊无咎 愼不害也
육사 괄낭 무구 무예
상왈 괄낭무구 신불해야
-주머니를 졸라매면 허물이 없지만 명예로운 것도 아니다.
-주머니를 졸라매면 허물이 없다는 것은 삼가면 해롭지 않다는 것이다.
형식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육사가 동하면 외괘가 진괘가 됩니다. <설괘전>에 '진동야震動也'라고 했지요. 진괘는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사가 동한 내호괘는 간괘가 됩니다. <설괘전>에서 '간지야艮止也'라고 했으니 간괘는 그치는 것입니다. 움직이지 말고 멈추라는 것이지요. 앞에서 <대상전>을 풀이할 때 중지곤괘의 모양에서 수레의 상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보면 또 복주머니 같은 상이기도 합니다. 끈을 묶지 않아 입구가 열려 있는 상태이지요. 육사가 동하면 복주머니의 목을 조여 묶은 형상이 됩니다. 그래서 그 형상 그대로 '괄낭'이라고 했습니다.
주역의 양효와 음효가 어우러져 구성된 대성괘의 모양에서 효들의 조합을 통해 이렇게 다양한 상이 만들어지는 것을 애들 장난처럼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체계와 주역의 그것이 다를 바가 없습니다. 2진법인 것이지요. 컴퓨터 언어로 코딩하여 상도 넣고 뜻도 담고 입체적인 관계도 설정한 프로그램인데 우리 세계의 차원을 뛰어넘은 것과 같이 주역을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17세기를 살았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라이프니츠는 주역 64괘를 보고 2진법을 착안했습니다.
주머니를 동여맨다는 것은 입조심, 말조심을 뜻하게 됩니다. 육삼의 '함장'을 학문을 익히는 것으로 풀이했는데 글을 머금고 있는 것이니 함부로 아는 체 하면서 자신의 학문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삼이 동할 때의 지괘가 15괘 지산겸괘였지요. 괄낭은 함장의 강도를 더욱 세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머금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끈으로 묶어 버리는 것이지요.
육사가 동하여 만들어지는 지괘는 16괘 뇌지예괘가 됩니다. <서괘전>에 '有大而能謙 必豫 故受之以豫 유대이능겸 필예 고수지이예 / 크게 이루었어도 겸손하면 반드시 즐거울 것이기에 뇌지예괘로 받았다'라고 했습니다. 14괘 화천대유괘, 15괘 지산겸괘, 16괘 뇌지예괘의 순서로 지산겸괘 다음에 뇌지예괘를 둔 이유를 설명했지요. 뇌지예괘에는 미리 예방하고 계획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겸손함을 유지한 것에 만족하지 말고 주머니의 주둥이를 끈으로 졸라매듯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전에 늘 삼가면 즐거움이 있을 것이란 뜻이 됩니다.
아무리 태도가 겸손해도 말이 어긋나면 그 겸손함마저 무너지는 법이지요. 또한 열린 주머니의 상에서 속내를 함부로 드러내지 말라는 뜻도 됩니다. 괄낭무구는 제가 날마다 되새기는 구절입니다. 뼈저린 교훈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괄括은 혀(舌)를 손(手)으로 막는 상이지요. 사람은 배신의 동물입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의리를 저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때로는 영문도 모른 채 등 돌리는 사람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소위 돈 되는 일만 하는 비즈니스의 세상에서 인간관계 역시 비즈니스의 성격이 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중용의 참 정의는 '희노애락이 발현되기 이전의 평정 상태'라고 하지요. '양 극단의 중간'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감정을 지나치게 이입하지 않을 때 고요한 중용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무예'라고 한 것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니 특별히 명예를 얻을 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유명세가 돈이 되니 너도나도 자신을 드러내는데 혈안이 된 세상에서 비켜나 있으면 평판을 얻기 힘들겠지요. 하지만 글을 쓰고 강의하면서 꼭 해야 할 말을 열정적으로 쏟을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한 삶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나머지 시간은 조용히 일하고 공부하며 사색하는 것에서 얼마든지 필요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쁨의 원천을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두어야 합니다. 타인은 내게 주었던 기쁨을 언제든 회수할 수 있는 존재이지요. 괄낭무구의 지혜를 기억함으로써 인간관계에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거리 조절을 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삼가면 해롭지 않다(신불해야)고 공자도 말해 주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