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로서 이름이 났어도 나랏밥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
六三 含章可貞 或從王事 无成有終
象曰 含章可貞 以時發也 或從王事 知光大也
육삼 함장가정 혹종왕사 무성유종
상왈 함장가정 이시발야 혹종왕사 지광대야
-학문을 익히는데 성심을 다하면 나랏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루는 것 없이 마칠 것이다.
-학문을 익히는데 성심을 다하면 때를 만나 드러나게 된다. 나랏일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밝음과 큼을 알아야 한다.
인문교양서를 읽듯이 주역 공부를 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머지 않아 머릿속에서 내용이 휘발되고 맙니다. 자신만의 독해와 사유 노력은 건너뛴 채 해설서의 내용을 서둘러 익히는데 급급하면 주역 텍스트가 말하는 바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공부든 무턱대고 처음부터 한 페이지씩 책장을 넘기는 식으로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반드시 전체의 얼개를 먼저 살핀 후 시작해야 합니다. 구조를 대략적이라도 알고 산에 진입하는 것과 무작정 오솔길을 따라 걷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길이 끊기거나 어두워져서 길이 보이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게 되지요. 자기가 산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 알지 못하니 당황하게 됩니다. 급기야 되돌아가는 길도 잃고 헤매게 됩니다. 갖은 고생 끝에 겨우겨우 산을 빠져나온 사람이라면 다시는 그 산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주역의 전체 구성을 먼저 이해한 후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하루도 빼먹지 말고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텍스트의 의미를 항상 현대적인 것으로 바꿔 보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으로 전환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옛 문체 그대로 '대충 이런 내용인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그러다가 육효점 치는 법을 배우는 식으로 주역의 진수와는 멀어지는 길을 택하게 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잠룡물용이니 항룡유회니 말과 글에 써먹을 표현들을 건진 것에 위안을 얻으면서 말이지요.
위대한 한학자가 되는 것에 뜻을 둔 것이 아니라면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내용을 탐구하는데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중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한자를 잘못 쓰면 어떻습니까? 원문을 외우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아무 상관 없습니다. '득의망상得意忘象, 뜻을 얻으면 상을 버린다'의 지침을 따르면 됩니다. 뜻을 얻어 상을 버렸는데 문자 따위에 연연할 필요가 없지요. 뜻을 얻어 수양하면서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는 삶을 살기 위한 즐거운 공부여야 합니다.
장章은 글이니 '함장含章'은 글을 머금는 것입니다. 곧 학문을 익히는 것이지요. 육이의 습習과 연결지어 생각해야 합니다. 굳이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는 '직방대'와 달리 함장은 굳이 익히는 것입니다. 물질의 세상에서 소용되는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지요. '함장가정'은 그런 실용적인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도 끝까지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곧 성심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공직에 나아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혹종왕사'입니다. '혹 왕의 일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니 현대적으로 보면 학자가 정부의 관료로 등용되어 공직에 종사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정부는 분야별로 반드시 전문가를 필요로합니다. 물론 단지 전문성만을 보는 것은 아니지요.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치철학에 동의하고 현실적 실천 능력을 갖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무성유종'이라고 했습니다. 무성과 유종을 대비해서 해석하면 내용이 명확하지 않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이어서 풀이할 때 뜻이 선명해집니다.
<소상전>에 '이시발야'라고 했으니 학문을 익히는데 성심을 다했는데 적절한 때를 만나 세상에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학문을 익히는데 성심을 다하지 않았거나, 성심을 다했어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드러나기 어렵겠지요.
좋은 운까지 만나 공직에 등용되게 되면 '광대光大'를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광은 육이의 <소상전>에 나오는 땅의 도(地道)의 밝음입니다. 대는 육이 효사의 '직방대直方大'의 대이니 하늘의 큰 이치입니다. 즉, '광대를 알면 이루고 마치게 될 것(유성유종有成有終)'이라는 말이 생략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소상전>은 공자의 입장을 생각하며 유기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역에 매료되어 '십익'을 '술이부작述而不作'한 그에게 감정이입해 보면 중지곤괘의 육이와 육삼의 효사를 보충적으로 해석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관계를 고려했을 것임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스스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때까지 만나서 공직에 나아간 학자라면 땅의 도와 하늘의 이치를 알고 자신의 소임을 다함으로써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되는 방식으로 성취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임을 우리는 파악해야 합니다.
형식을 살펴보면, 육삼은 실위했고 실중했습니다. 내괘를 벗어나 외괘로 향하는 육삼의 자리에 있으니 나아간다는 뜻이 나오지만 그 상황이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육삼이 동하면 내괘가 간괘가 되는데 <설괘전> 7장에 '간지야艮止也'라고 했으니 그치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육삼이 동할 때의 내호괘가 감괘로 변하고 감괘는 설괘전 7장에 '감함야坎陷也'라고 하여 어두운 물에 빠지는 것이니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또한 <설괘전> 11장에 감괘는 '감위은복坎爲隱伏'이라고 했으니 나아가는 것보다 물러나 숨어 엎드려 있는 것이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지괘는 15괘 지산겸괘이니 공직에 나아가게 되면 무엇보다 '겸손'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야 성취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최고의 전문가라고 스스로 자기의 권위에 취해 의욕만 앞서 좌충우돌하면 결과가 좋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비록 관료들이 답답하고 느리더라도 그들을 존중하고 무엇보다 국민의 뜻을 받드는 것이 최우선임을 잊지 않으며 일한다면 서서히 리더십을 발휘하며 하나둘 공동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꼭 공직자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당연히 우리 각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가르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