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순리대로 진행되는 법이다. 순리를 따르라.
初六 履霜 堅氷至
象曰 履霜堅氷 陰始凝也 馴致其道 至堅氷也
초육 이상 견빙지
상왈 이상견빙 음시응야 순치기도 지견빙야
-서리를 밟으면 곧 단단한 얼음이 어는 때가 온다.
-'서리를 밟아 단단해진 얼음'이란 음이 처음으로 엉겨붙는 것이다. 그 도를 따라 이루니 단단한 얼음이 어는 것이다.
중지곤괘는 6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서 6음의 시기는 해월亥月입니다. 주역의 대성괘와 월별 관계는 아래 표와 같습니다. 명리학 이론 기초 수준을 익힌 분이라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두 번째 행의 아라비아 숫자는 월(음력)입니다. 한 해는 인월寅月로 시작하지요. 음력 정월입니다. 인월에 입춘이 있습니다. 명리학적으로 해의 바뀜은 입춘을 기준으로 합니다. 아래의 표는 지금 우리가 있는 중지곤괘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하기 어려울지라도 나중에는 유용할 것입니다.
(표: 월별 대성괘)
가을에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뭇 짐승들이 배불리 먹고 나면 씨앗이 남습니다. 먹거리로서의 효용성이 없어 짐승들도 먹지 않고 남긴, 죽은 것과 다름없는 씨앗입니다. 그 씨앗 위로 낙엽이 떨어지지요. 낙엽은 외부의 찬 공기를 막고 씨앗에 온기를 공급합니다. 온기를 품은 씨앗은 다시 새로운 생명의 뿌리로 거듭나기 위해 땅 속의 습기에 서서히 몸을 풀면서 생기를 피워 냅니다. 이것이 해월에 자연이 하는 일입니다.
양기가 사라져 음기만이 가득한 공간에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낙엽 위에는 서리가 내립니다. 중지곤괘가 해월을 뜻하니 해월의 풍경을 초육으로 끌어들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초육이 동하면 내괘가 진괘가 됩니다. <설괘전> 7장에 '진동야震動也'라고 했습니다. 진괘는 움직이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이履의 의미가 나옵니다. 이력履歷이라는 단어로 자주 쓰이는 글자입니다. 우리가 취업하거나 이직할 때 작성하는 이력서履歷書는 우리가 밟아 온 길의 기록인 것이지요. 지괘인 24괘 지뢰복괘에도 나아감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상 견빙지'의 의미는 중지곤괘의 <문언전> 2절을 통해서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臣弑其君 子弑其父 非一朝一夕之故 其所由來者 漸矣 由辨之不早辨也 易曰 履霜堅氷至 蓋言順也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 신시기군 자시기부 비일조일석지고 기소유래자 점의 유변지부조변야 역왈 이상견빙지 개언순야 /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남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남는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것은 하루아침 하루저녁의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된 연유가 점점 커진 것이다. 분별해야 할 것을 일찍 분별하지 못한 탓이다. 역에 서리를 밟으면 곧 단단한 얼음이 어는 때가 온다고 한 것은 모두 순리대로 진행됨을 말한 것이다.'
학창시절에 우리가 배운 표현이 들어 있지요. 알고 보면 출전이 주역인 표현들이 매우 많습니다. <문언전> 2절의 내용에서 우리는 '이상 견빙지'가 순리를 뜻하는 것임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순리를 비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예들은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다만 중지곤괘가 해월을 뜻하고 진괘의 움직여 나아감의 상까지 담아내야 하니 시절에 맞게 서리가 내리면 머지 않아 얼음이 얼게 되는 자연의 이치를 예로 든 것뿐입니다.
'순치기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른 아침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흙을 밟고 걷다 보면 어느새 서리 대신 얼음이 어는 때가 온다는 것은 도道인 것입니다. 정해진 이치인 것이지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리 된다는 것입니다. 순馴이라는 단어를 대산 선생님은 '말 마(馬)'와 '내 천(川)'이 결합되어 '순하게 흘러가는 시냇물과 같이 말이 고분고분 순종하도록 길들임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마馬 대신 우牛를 붙여도 길들일 순(㸪)으로 동일한 뜻이 나옵니다. 마馬가 붙은 순馴을 택한 것에서 우리는 빈마牝馬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상 견빙지'의 이치는 땅이 아니라 하늘의 이치라는 것이지요.
인생길에는 굴곡이 있기 마련이고 굴곡마다 우여곡절이 칡넝쿨처럼 뒤엉키는 법입니다. 서리가 내린 길을 걷다가 곧장 꽃길을 만날 수는 없지요. 얼음이 언 불편하고 위험한 길을 어떻게든 걸어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배어드는 고통과 불행도 다 과정임을 안다면 꽝꽝 얼음이 언 길 위에서 멈추어 한탄만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얼음을 밟고(履) 가다 보면 머지 않아 파란 새싹이 돋아난 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이치에 순응할 줄 아는 사람은 봄길과의 해후를 믿어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묵묵히 자기 삶의 새로운 발자취를 남기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