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호 Apr 29. 2024

승산의 계산

多算勝 少算不勝 而況於無算乎 吾以此觀之 勝負見矣.  

다산승 소산불승 이황어무산호 오이차관지 승부견의


- 승산이 많으면 승리할 것이요, 승산이 적으면 승리하지 못할 것이니, 하물며 승산이 없다면 어찌 되겠는가? 나는 이와 같이 관조하기에 승부가 보인다. - <<손자병법>>



<<손자병법>>은 첫 번째 편 <시계(始計篇)>로 시작됩니다. '초기 계획 수립(Initial Planning)'으로도, '사전 계산(Pre-calculation)'으로도 읽을 수 있는 단어입니다. <시계> 편의 마지막 장에 들어 있는 위 구절의 내용은 후자의 의미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식 투자를 예로 들어 보지요. 승산을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전략은 저절로 수립되지 않지요. 먼저, 차트 읽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밝아오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듯, 앞으로 상승세를 그려 갈 종목을 차트를 통해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단어가 아니라 문장을, 문장이 아니라 문맥을 읽어야 하듯, 일봉의 캔들 하나하나가 아니라 캔들과 이동평균선, 그리고 거래량이 반영된 월봉 차트를 통해 현재까지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앞으로의 상승세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제갈량이 동남풍을 예측하고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을 전장으로 택하여 각각 적벽대전과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끈 것은 자연이라는 시공간의 역사에 누적된 데이터가 가리키는 패턴을 읽는 실력이 있었던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재무제표 분석을 통해 성장성과 수익성 양자를 갖추고 있는 종목들로 압축해야 합니다. 즉, 부실한 종목들을 철저히 제거하고, 흑자 기업이라도 성장성과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열위한 종목들 역시 외면해야 합니다. 과거에 작전 걸린 적자 기업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단기 급등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탐욕스러운 투자자들이 부실 종목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 구절에서 말하는 승산 없는 투자에 해당되지요. '무산'의 투기입니다.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차트와 재무제표 분석으로 유망 종목들을 간추렸다면 그 종목들의 뉴스를 살피고, 각 종목이 포진되어 있는 산업의 유망성을 가늠하며, 장세의 특성을 파악해야 합니다. 이런 절차를 거쳐 소수의 종목들을 선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전략을 가진 투자자가 된 것이요, 손무가 말하는 '다산'의 상태가 된 것입니다. 승리를 예견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확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 단계 중 어느 하나라도 철저하지 않다면 승산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산'에 불과하니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 번 작게 이기다가 크게 한 번 지는 날에는 쓰라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29:119.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고 엄청난 예산을 소모하면서 승리를 점쳤던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서 이 정부가 거둔 초라한 성적표입니다. 하계와 동게 두 번의 올림픽과 월드컵, 기타 수많은 국제 행사들을 유치했던 과거의 성공 사례에서 배웠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수치입니다. 정확한 근거에 기반한 치밀한 사전 계산이 이루어졌다면 자발적으로 국제 사회의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누가 뭐래도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입니다. 싸우지 않아도 늘 풍요를 누리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좋겠지만 인류가 지구 위에 구현한 세상은 이상향과 거리가 멀지요. 약육강식의 국제 질서 하에서 한 국가의 리더와 그의 참모된 자들은 보국안민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 첫 번째 과제가 나라와 국민의 운명을 위태롭게 만들지 않는 것이지요. 엑스포 참패는 현 정권의 무전략 외교를 상징하는 사건과도 같습니다. 


현 정권 하에서 많은 기업들이 중국으로 대표되는 해외 시장을 상실했습니다. 고금리 고물가로 인해 국민들은 도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부자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에 빈곤한 국정 철학과 무능력으로 민생을 외면하여 내수 시장을 죽이고 R&D 예산을 삭감하는 등 나라의 미래 경쟁력마저 약화시켰습니다. 지피지기 할 실력을 갖지 못한 사람을 리더로 앉히는 우를 범한 탓입니다. 이 나라의 위태로움은 오로지 승산 없는 인물에게 표를 던진 국민의 자업자득의 결과에 다름 아닙니다. 


개인이나 나라나 승산을 높이는 선택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전략적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여 실력으로 만든 사람, 그것에 바탕한 통찰력을 보유한 사람, 더 나은 인생과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직한 간절함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고 만들어야 합니다. 


국민들의 마음을 뿌듯하게 하는 자랑스러운 나라로 다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징조의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