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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ul 11. 2024

합종연횡, 소진과 장의-3

사마천의 사람들

금의환향한 소진, 보은의 정석을 보여 주다.


출처: 위키백과


6개국의 합종을 완성하고 다시 북으로 길을 잡은 소진은 도중에 고향 낙양을 지나게 된다. 연합국마다 제공한 물자를 실은 수레와 수행원들의 압도적인 규모에 놀란 주나라 현왕은 소진의 무리가 지나갈 길을 미리 청소하게 하고 사람들을 보내 영접한다. 


집에 들른 소진. 이천 한정식을 본딴 상차림을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소진이 식사하는 동안 그의 아내와 형, 그리고 형수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안절부절한다. 소진이 형수를 보며 말했다.


"전에는 제게 그리 야박헤게 구시더니 오늘은 이토록 공손하십니까?"


이 말에 형수가 얼굴을 바닥에 더욱 가깝게 숙이며 답했다.


"어휴, 뭘 그런 걸 물으셔유? 그거야 서방님께서 지체 높으신 분이 되셨고 재물도 넘치시니... 호호호."


형수의 비굴한 모습을 보며 소진은 깊게 탄식하며 말했다.


"가난할 때는 업신여기던 친적들이 부귀해지니 두려워하는 것, 이것이 세상 인심이구나. 만일 냑양성 근교에 땅이라도 있었다면 내가 어찌 여섯 나라의 재상 직을 겸임할 수 있었겠는가?"


자신에게 박하게 굴었던 사람들이 미울 법도 했건만 소진은 은혜를 베푼다. 비록 출세했지만 아파트 브랜드로 사람을 가르고, 지하철 역 이름으로 하차감을 논하는 낙양의 세태에 물들기에는 소진은 다른 차원의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시련의 가치를 아는 인물이었다. 


소진은 일가친척과 친구들에게 재물을 나눠주었다. 유세를 떠나던 날 노자를 빌려 주었던 사람에게는 그것의 수백 배 가치로 되갚는 등 크고 작게 자신에게 덕을 베푼 바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 모두 보답했다. 그래, 이 맛에 출세하는 것이지. 출세들 하세요~.


길을 떠나는 날, 한 사람이 소진 앞으로 나와 왜 자기에게는 보상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진이 말했다. 


"나는 너를 잊지 않았다. 네가 나를 따라 연나라에 갔을 때 너는 여러 번 나를 버리고 떠나려 했었지. 내 처지가 곤란했던 지라 나는 너를 깊이 원망했었다. 그리하여 너에 대한 보답을 뒤로 미루었을 뿐 이제 네게도 보답해 주마."


캬. 성공하면 어깨에 힘 주고 다니며 원수 갚기에 바쁜 소인배들이 그득한 세상에서 소진은 진정한 승리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던 것이다. 우리의 거룩한 VIP들께서도 이런 넉넉한 마음씀씀이를 보유하셨다면 날마다 만 백성이 쌍따봉을 바이든하며 가시는 걸음 걸음마다 사쿠라 꽃잎을 놓아 드렸을 터인데. 물론 VIP는 무한리필 식당만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초토화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Very Impressive Pig라던가.


낙양 사람들의 만세 소리를 뒤로 하고 북으로 올라가 조나라에 도착한 소진. 조나라 왕은 소진의 노고를 치하한 후 곧바로 합종 맹약 문서를 진나라에 퀵으로 쏘았다. 이후 15년간 진나라는 국경 너머를 도모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소진이 구축한 시대에도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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