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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개미 Dec 28. 2020

대학생이 되는 법

스무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난 대학생이 되는 법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스무살이 되자마자 그동안 눈팅만 하던 여성시대 카페에 가입했다. 게시판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옷과 화장품 정보를 볼 수 있는 게시판에 틈만 나면 들락거렸다. 지금으로 따지면 패션유튜버/블로거와 뷰티유튜버가 그곳에서 자신의 꿀팁을 공유했다. 요즘과는 트렌드가 좀 다르다. 요즘은 누구든 "이렇게 하면 내 기분이 조크든여"라고 하면서 자신만의 비법을 공유한다면 그때는 "이렇게 하면 주변에서 다들 어떻게 했냐고 물어본다/어떤 상품을 썼냐고 물어본다" "이거 하고 열 번 고백받았다"는 식의 제목의 게시물이 인기였다. 다른 게시판도 경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음악을 공유하는 게시판에서는 '주변에서 취향 좋다며 추천해달라고 하는 노래들' 리스트가 조회수를 올렸고 연애 주제의 방에서도 '마음에 드는 상대방을 선택하는 법' '연애를 하면서 나를 잃지 않는 법'보다는 '(그게 누구든) 상대방에게 호감을 사는 법'이 시리즈로 연재됐다.

당시 내 사진첩

돌아보면 그때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그 당시 사진첩을 보면 그 카페에서 다운 받은 의상 조합과 깡마른 연예인들 사진이 가득하다. 적어도 세 단계로 구성된 기초 화장품부터 베이스, 컨실러, 파운데이션, 섀도우, 아이라이너, 뷰러, 마스카라, 아이브로우, 립, 픽서에 대한 정보를 잔뜩 캡처해뒀다. 꾸밈노동이든 연애방식이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라 이 시대 20대 여성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것 혹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열이 갈리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상향에 가까운 '여대생'의 모습이 있었고, 그것에 도달하려 했다.(잘하진 못했다) '나 다운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 시크든 섹시든 러블리든 큐티든 프리티든 그 중 하나는 해야 했다. '대학생다움'이란 것이 나를 지배했다. 선배와 동기와 학교와 세상이 내게 그것을 요구한다고 느꼈다.

당시 나. 바지 입었나?

정신을 꽤나 오래 못 차렸다. 시크, 섹시, 러블리, 큐티, 프리티의 정점에 도달하지 못했고 몇 개는 애초에 게으른 성격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만 뭐라도 돼 보려고 했던 것은 분명하다. 나 다움을 찾으려는 노력은 없었다. '대학생다운 모습' 속에서 냄새처럼 흘러나오는 '어쩔 수 없는 나' 외에는 발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꾸밈노동을 많이 내려놨다. 나는 더이상 스타킹을 신지 않고, 높은 굽이 있는 신발도 모두 처분했다. 화장은 거의 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설 일이 있을 때만 조금 시도한다.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옷들과 짧은 치마와 반짝이는 상의들을 모두 버렸다. 취준생 시절에는 거의 아무 옷이나 입고 다녔지만, 요즘엔 '그루밍'에 관심이 많다고 얘기하고 다닌다.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 보다는 나를 발견하고, 관리하는 데 관심이 생겼다. 머리와 눈썹과 손발톱을 제때 다듬고, 깨끗하게 잘 관리된 옷을 입고, 계절과 상황과 내게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이 좋다. 옷에 어울리는 신발을 신고,실용적이지만 모양이 마음에 드는 백팩을 메고 싶다. 다이어트를 강박적으로 기피해왔지만 이제는 재택근무로 불어난 몸을 다시 단단하고 생기있게 만들려 한다. 기분에 따라 뿌리고 싶은 향수를 온몸에 들이붓는다.


지나고 보니 대학생다움이란 것은 없었다. 그냥 나 다우면 되는 거였다. (갑자기 분위기 혜민스님같지만 조금만 더 읽어보세요)

요즘 나

꾸밈 노동 이야기를 하니 나름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다. 페미니즘과 자기 자신을 잘 대접할 줄 아는 친구들 덕분에 그 방면에서는 진일보를 이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 지나치게 평가지향적인 성격은 어디 가지 않아서, 이번에는 일 분야에서 위기를 맞았다. 나는 지금 '기자다움'이라는 것 때문에 혼란하다. "그게 기자다운 거지"가 왠지 성립하는 명제 같다. 기자라면 마땅히 이래야 할 것들의 목록이 있으며 ‘기자다움’의 정점에 누군가가 있을 것 같다. 적어도 기본적인 몇 가지는 해야 되는 것 아닐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많고 중대하며 나는 그에 턱 없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런 정체불명의 압박에 시달린다. 아무도 내게 뭐라하지 않는데도. 그냥 나답게 취재하고 써도 꽤 괜찮은 기자 아닐까? 생각하다가도 뭔가 큰 거, 마땅히 해야 하는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또 한 편으로는 그걸 쫓다가 나다운 거, 진짜 나만이 할 수 있는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어쩌란 말인지.


최근 슬아의 글을 다시 읽었다. 그가 1월에 내게 2년차를 막 시작하는 노무사로서 보내준 글을 인용하겠다.


"하루는 노벗 뒤풀이 술자리에서 동기 노무사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처럼 헌신적으로 운동 해본 사람들은 정말 어른 같다고. 나처럼 실무 감각도 없으면서, 여전히 소극적인 사람을 보면 얼마나 답답하겠냐고. 많이 미안하다고. 그러자 하노무사가 “슬아님도 슬아노무사님만의 역할이 있고 장점이 있을거에요.” 라고 말했다. 의례적인 위로가 아니길 바라며 장난섞인 표정으로 “제 역할과 장점이 뭘까요?”라고 반문했다. 옆에 있던 김노무사가 말했다. “슬아님은 단발머리가 잘 어울려요. 장점이에요.” 하노무사도 맞장구 치며 “빵모자도 잘 어울려요. 다들 그얘기 하더라고요.” 라고 말했다.


 노무사로서의 내 역할과 장점을 물었는데, 뜬금없이 머리와 모자를 칭찬받았다. 어떤 노무사로서는 그런 칭찬을 받은게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일지도 몰랐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조금 황당했고 많이 뿌듯했다. 어쩌면 나는 투쟁적이고 헌신적인 노무사가 아니라, 그냥 빵모자가 잘어울리는 단발머리 노무사가 되고 싶은 것인지도 몰랐다. 아직 어딘가로 나를 내던지기보다 좀 더 발견하고 싶었다. 어떤 자연스러움과 익숙함보다, 어떤 도전과 개성을 쫓는 중이었다."


나는 나를 좀더 발견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또 최근에 정혜윤 PD의 글도 읽었다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미래는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닮아가는 거야. 우리 자신이 보고 싶은 미래 자체가 되어가는 거지."


가장 나은 버전의 내가 돼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당장 내일에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다른 어떤 베테랑 선배라면 했을 일을 찾아서 해내야만 할 것처럼 느껴져. 그래서 아침이 참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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