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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hew Mar 19. 2022

침묵에 잠길지어다

- 옥시린쿠스 찬가 -

    “만복의 근원 하나님 / 온 백성 찬송드리고 / 저 천사여 찬송하세 / 찬송 성부 성자 성령.” 한국교회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찬송가’ 1장의 가사다. 1장을 비롯한 찬송가 맨 앞 7곡의 악보 왼쪽 위에는 ‘송영’이라는 분류가 적혀있다. ‘송영’은 ‘Doxology’를 번역한 말로, 이 단어의 어원은 ‘영광’을 뜻하는 독사(δοζα)와 ‘말, 언어’를 뜻하는 로고스( λογος) 가 합쳐진 것이다. 몇 마디 되지 않는 짧은 길이의 송영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양이 담겨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의 고백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도 하나님의 영광을 다 기록할 수 없겠지만, 송영은 오히려 짧은 시적 표현을 통해 인간이 말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제프리 웨인라이트는 “기독교의 예배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삼위일체적 시각에서 예배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높이는 송영이야말로 예배의 본질을 핵심적으로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다. 가사와 악보가 보존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찬양으로 여겨지는 옥시린쿠스 찬가(hymne chrétienne d’Oxyrhynchus) 역시 송영이다.


     옥시린쿠스는 이집트 카이로 남쪽 160km, 나일 강가에 위치한 도시의 이름이다. 19세기 후반에 영국의 그렌펠(B. P. Grenfell)과 헌트(A. S. Hunt)가 이끈 발굴팀은 옥시린쿠스에 위치한 고대의 쓰레기 매립장에서 그리스어, 콥트어, 라틴어 등으로 쓰인 수많은 파피루스 조각을 발견한다. 파피루스에는 편지, 영수증, 관공서의 문헌 등 수많은 고대의 기록이 남겨져 있었는데, 초대교회 당시의 성경과 외경의 사본이 함께 발견되어 3세기 이전 초기의 성경 연구에 큰 공헌을 하게 된다. 고대의 쓰레기장이었던 이곳이 그동안 숨겨졌던 고대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인류의 보물 창고가 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P. Oxy. XV 1786’로 이름 붙여진 파피루스 조각에는 우리가 옥시린쿠스 찬가라 부르는 송영의 악보가 적혀있다. 이 파피루스는 3세기 것으로 추정되며, 가사와 함께 그리스 음악 표기법으로 적힌 온음계의 음정과 음악 기호가 남아있어 거의 2천 년 전 초대교회에서 불렀던 찬송의 원형 그대로의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옥시린쿠스 찬가의 가사는 이렇다.


 침묵에 잠길지어다.

 빛나는 별들도 빛을 거두어라.

 바람과 소란스런 강들도 잠잠할지어다.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을 찬양하니,

 모든 권세들도 ‘아멘 아멘’하며 화답하여라.

 힘 있는 제국아,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그분은 모든 선한 일의 유일한 근원이시다.

 아멘 아멘.

  - 옥시린쿠스 찬가 - 


    옥시린쿠스 찬가의 가사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라고 선포한다. 이방의 숭배 대상이었던 찬란히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을 향해 빛을 거두고, 침묵에 잠기라고 명령한다. 세찬 바람과 거친 물결이 이는 강들을 향해서도 잠잠하라 외친다. 혼돈의 상징이요, 온 땅을 뒤덮어버릴 수 있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물마저도 하나님의 이름 앞에서 잠잠해진다.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시편 76:8)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음성에 온 우주가 귀를 기울인다. 예수님께서 거친 바람과 물결을 향해 잠잠하라고 말씀하시자 바람과 물결이 잠잠해지듯, 송영을 부르는 이들은 온 천지를 향해 잠잠하라고 말한다. 파피루스가 적힌 시기는 기독교를 박해했던 데키우스 황제나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로마 제국 전역에서 기독교 탄압을 했던 시기로 추정된다. 송영을 부르는 이들은 세상의 권세들과 로마 제국을 향해 ‘아멘’으로 화답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치고 있다.



    이른 새벽, 로마 외곽의 무덤가에 남루한 복장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밀고자라도 있을까 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카타콤베의 어두운 동굴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하루를 겨우 버텨가는 가난한 이들, 쉼 없는 노동에 지친 노예들은 흔들리는 등불에 비친 서로의 불안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사제가 흔드는 종소리에 맞춰 예배가 시작되고, ‘모든 선한 일의 유일한 근원’이신 성 삼위일체 하나님을 노래한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찬양의 울림 속에서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은 잠잠히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본다. 제임스 F. 화이트가 이야기한 대로 예배음악은 시간을 따라 흐르며, 모든 공간을 소리로 채우며 하나님께 올려진다. 지금처럼 한 시간 내에 모든 예배의 순서를 마치기 위해 급하지 않다. 모든 성도들은 종소리에 맞춰 길고 느린 단선의 찬양 속에 머물고, 카타콤베의 어두운 동굴은 천국으로 변한다. 동굴 안 송영의 울림 속에 이젠 더 이상 로마 군병도, 어떠한 권세도 두렵지 않다. 오히려 압제하는 로마제국을 향해, 찬양을 가로막으려 하는 권세들에게 잠잠하라 외친다. 하나님의 위엄 앞에 제국과 세상의 권세 역시 하나님께 경배해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시간이 흐른다. 이른 새벽, 성남시 태평동에 위치한 낡고 초라한 상가 건물 2층 작은 예배당에 허름한 복장의 사람들이 앉아있다. 노숙자와 독거노인, 일을 구하지 못한 일용직 근로자들이 따듯한 국과 밥으로 아침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이곳을 찾는다. 배식이 시작되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지만, 다른 이들보다 먼저 온 이들은 식판이 놓일 자리에 성경과 찬송을 올려놓고 새벽 예배를 준비한다. 거친 인생의 굴곡이 그대로 얼굴에 새겨진 노인들, 삶의 무게에 지친 이들이 조율도 되지 않은 낡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오래된 찬송가를 부른다. 목사님을 따라 제각각의 박자와 음정으로 부르는 찬송가는 이들의 지친 인생만큼이나 거칠다. 이곳에 모인 가난한 이들의 찬양 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이들의 지친 어깨를 보듬어주신다. 2천 년 전 한 새벽에 동굴을 채웠던 송영의 울림이 이 낡은 교회당 안에서 다시 울린다. 창밖의 빛나는 별들도, 거친 바람과 물결도 침묵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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