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오늘 종교개혁 주일을 기념하며 필립 얀시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으로 독서 모임을 합니다. 이 시간 함께 나누는 대화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매달 마지막 주에 모이는 ‘교회력에 따른 독서모임’은 이러한 기도로 시작합니다. 혼자 읽는 책이 저자와 나와의 대화라면, 독서모임은 그 대화의 자리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여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입니다. 10여 명의 사람들이 4월에 처음 모였을 때는 모든 것이 어색했습니다. 재학생과 졸업생, 평신도와 목회자, 젊은이와 인생의 굴곡을 겪은 이가 한 권의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새로운 경험입니다. 잘 모르는 이들 앞에서 책의 요약이 아닌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나눈다는 것이 낯설고, 그러다 보니 속의 깊은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때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해야 할 말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경청하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달 한 달 모임을 이어가면서 어색함은 점차 익숙함으로 바뀌고 내가 꺼낼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몇 시간이 이면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이지만, 그 책을 읽으며 각자 경험한 삶과 신앙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수백 그램의 책이 몇 톤의 무게감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책에 대한 소감을 나눈 뒤에는 몇 개의 질문으로 생각을 나눕니다. 이 시간 역시 토론이 이어지기보다는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누군가의 일화에 같이 웃고, 눈물짓기도 하면서 짧은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이야기가 잠잠해질 때면 안덕원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자에 대한 소개나 책에 대한 교수님의 소감을 들으며 독서모임에서 오간 많은 이야기들이 정리되어 갑니다. 가끔씩 저자를 직접 만났던 일화를 소개해주실 때면, 멀리 있고 다가기기 어려운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 한층 가까운 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교회력에 따른 독서모임’은 이렇게 흘러갑니다.
‘교회력에 따른 독서모임’은 2022년 4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사순절을 맞아 로완 윌리엄스의 책을 시작으로 매달 교회력에 맞는 책을 선정하여 총 8권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을 선정한 기준은 절기에 맞는 책으로, 저자가 겹치지 않도록 했고, 다른 무엇보다 학업과 사역으로 바쁜 참여자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200페이지 안팎의 얇은 책으로 선정했습니다. 안덕원 교수님과 함께 상의하며 책을 선정했고, 처음에 선정했던 책 보다 더 적절한 책을 발견하면 중간에 책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읽어온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4월 사순절 : 로완 윌리엄스의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
5월 부활 : 유진 피터슨의 <일상, 부활을 살다>
6월 삼위일체 주일 : 제임스 토런스의 <예배, 공동체, 삼위일체 하나님>
7월 성령강림 후 ; 헨리 나우웬의 <이 잔을 들겠느냐>
8월 성령강림 후 : 돈 샐리어스의 <예배의 감각>
9월 성령강림 후 : 월터 브루그만의 <안식일은 저항이다>
10월 종교개혁 주일 : 필립 얀시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11월 대강절 : 팀 켈러의 <예수, 예수>
지인들로 왜 자꾸 독서모임을 만드냐는 질문을 받으면 ‘비자발적 책 읽기’를 위해 독서모임을 한다고 답합니다. 자꾸 게을러지고 책 읽기가 귀찮아져서 이렇게라도 해야 억지로라도 책을 읽게 된다고, 그래서 비자발적으로 책을 읽기 위해 모임을 만든다고요. 이 대답은 솔직한 대답이긴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빼먹은 것 같습니다. ‘교회력에 따른 독서모임’에서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때론 기쁨으로, 때론 아픔으로, 때론 위로로, 때론 질책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이 들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