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하고 싶은데, 뭘 해야할 지 모르겠을때
결혼 전 나는 홍보대행사에서 일을 했다. 홍보는 미디어 친화적이고,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는 직업이다. 유명인들을 만날 기회는 물론이고 고급스러운 장소에서 미팅하는 게 일이었다.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것을 실행하기까지 모든 것에 발을 담그고 발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 바로 홍보 AE다. 야근이 당연한 일상이었지만 다양한 사람, 장소, 업무 등 늘 새로운 것들을 접할 기회가 많다는 게 지치지 않는 원동력이 되곤 했다. 의사나 변호사처럼 한가지에 능통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다방면의 업무 경험들이 나의 경쟁력을 높여주었다.
그런 내가 어느 덧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그냥 그랬을 뿐인데 하루 아침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었다. 출산을 하고 2주간 조리원에 있었는데, 퇴소 하루 전 날 밤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당장 내일부터 아이 목욕시키고, 수유하고, 기저귀 갈고 모든 걸 다 해야하는데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심지어 분유를 타는 것도 왜 이리 어렵게 느껴지는지 과연 내가 이 작은 아이를 잘 케어 할 수 있을까 너무 불안했다.
온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어쩌지, 몇 스푼을 넣는 거지? 배꼽이 떨어질 때까지 소독을 잘 해줘야 한다는데 혹시라도 실수해서 염증이라도 나면 어떡하지? 목욕시키다가 귀에 물이라도 들어가면? 하나부터 열까지 내게는 너무도 커다란 산처럼 다가왔다. 어설픈 나를 수습하는 것은 늘 남편 몫이었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다지만, 왜 유독 나만 그렇게 어렵게 느끼는 걸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분유타는 법, 배꼽 소득하는 법, 목욕시키는 법 등 육아를 함에 있어서 내가궁금한 모든 것들이 블로그만 뒤져보면 다 해결되었다. 나와 같은 엄마들이 자신의 경험담과 노하우를 너무도 친절하고 소상하게 블로그에 다 기록하고 있었다. 어쩜 그렇게 다들 꼼꼼하고 세세하게 잘 써 두었는지, 육아 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다. 매일같이 육아 블로그들을 들여다보면서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나 정보에 대한 것들을 찾고, 육아의 고충을 공감하고 위로도 받고 있었다.
나도 한번 해볼까? 그들처럼 블로그에 아이와의 일상을 올리진 않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처음 활짝 웃었을 때, 아이가 분유를 끝까지 먹었을 때, 아이가 처음으로 뒤집었을 때, 처음 혼자 앉았을 때, 모든 ‘처음’이 다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은 역사는 금새 잊혀지기 마련이다. 매일 하루가 마치 없었던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지는 연기 같았다. 이 소중한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록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방치해 둔 블로그에 들어가 봤다. 띄엄띄엄 방문해 떠오른 생각들을 끄적거린 흔적들이 그을음처럼 남아있었다. 폐허처럼 변해버린 이 공간을 다시 살려 보기로 했다. 이 곳에 나도 아이와의 일상을 채워볼까? 그런데 뭘 써야 할 지 모르겠네! 그게 문제였다.
아이와 집 근처 호수공원 나들이를 다녀온 날, “아이와 호수공원 나들이, 분수가 신기한 예진이” 이런 식으로 사진과 짧은 글을 올렸다. 며칠 동안 그런 식으로 가볍게 포스팅을 했는데 너무 가벼워서 일까, 방문객 수가 계속해서 0이었다. 하긴, 유명인도 아닌 내가 내 아이와 찍은 사진을 굳이 누가 와서 봐 주겠어? 그렇다고 정보가 있거나 글을 재미있게 써 놓은 것도 아니고. 누가 봐주길 바라고 시작한 건 전혀 아니었지만 막상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일은 재미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되돌아오는 메아리처럼 혼자만의 외침은 지루하고 공허했다.
자 그럼! 그 다음 타자는? 이번엔 이유식 레시피를 올려 보기로 했다. 나도 블로그에 일부러 이유식 만드는 법을 찾아보곤 하니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올리면 누군가는 와서 보겠지? 또, 기록을 해 두면 다음 번에 만들 때 나에게도 도움이 되니까 일석이조 아닌가!
심기일전하고 정성을 다해서 이유식 포스팅을 했다. <5개월 아기! 브로콜리 이유식 만드는 방법> 브로콜리를 구입해서 도마 위에 올려놓는 순간부터, 물 끓이고, 데치고 잘게 다지고, 죽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찍었다. 뭘 할 때마다 잠시 멈추고 사진을 찍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방은 점점 엉망이 되고 있는데, 나는 그 와중에 사진 찍기 바빠서 정작 아이에게 이유식을 줘야 하는 시간이 늦어졌다. 점점 주객이 전도 되고 있었다.
하아, 남들은 대체 이런 걸 어떻게 매일 찍고 쓰고 올리지?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겪고 나니 대체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이유식 레시피를 올리는 일 역시 며칠 가지 못했다. 경력 단절과 동시에 SNS 역시 단절 되어서 일까, 순간순간의 사진을 찍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의 컨텐츠가 이제 육아 말고는 하나도 없구나, 싶었다. 블로그 하나 하는 것도 쉽지가 않네.
80년대 생이라면 다 아는 싸이월드 시절 나는 그곳에 늘 글을 썼다. 일기처럼 그날의 생각이나, 읽었던 책에 대한 소감을 남기곤 했다. 꽉 막힌 변기처럼 답답했던 마음도 그곳에 어떤 글이라도 내 뱉고 나면 속이 뚫렸다. 싸이월드 게시판은 내게 감정의 배출구 같은 공간이었다. 다시 그런 공간을 찾고 싶었다.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블로그에서 그런 재미를 찾고 싶었는데, 아이를 낳아서 감정이 예전만큼 못 따라가서 그런 건지 블로그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건지 에전과 같은 기분은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다시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 뭐라도 하고 싶긴 한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