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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작가 Aug 16. 2019

미라클모닝이 만병통치약이야 뭐야?

오늘을 마지노선으로 긋기!

아이가 잠들면 누군가는 책을 읽었다고 했지만, 나는 배게 밑에 두었던 핸드폰을 슬쩍 꺼내 뒤적거렸다. 무기력한 와중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은 남아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불 꺼진 방에서 온갖 블로그들을 다 탐방하고 다니다가 우연히 ‘미라클모닝’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미라클모닝? 기적의 아침? 예전에는 아침형인간이 성공의 필수조건인 것처럼 굴더니, 이제는 미라클모닝이란 예쁜 단어로 아침 기상을 조장하고 있네! 여전하네, 싶었다. 사람마다 생체리듬이란 게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는 것만이 정답인 것처럼 말하는 세상, 지긋지긋하다. 어떤 강의나 책을 팔기 위한 상술처럼 느껴졌고 <시크릿>처럼 말도 안되는 우주의 기운을 운운할 것만 같았다.


“잠을 더 자도 모자랄 판에 무슨 미라클모닝이야?” “적어도 나처럼 애랑 24시간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지는 않겠지!” 블로그 글들을 제대로 살펴보기도 전에 반감부터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미라클모닝 1일차, 2일차, 3일차……30일 이렇게 차곡차곡 실천해 나가는 건 한편으론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미라클모닝이 만병통치약이야 뭐야?”


새벽 기상을 하는 사람들끼리 ‘미라클모닝’ 이라고 아침인사를 주고 받고 있었다. 이건 또 뭔가, 나로선 진기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새벽기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왜지? 그들은 새벽 기상을 통해 시궁창 같았던 인생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저 앉았던 삶에서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가족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꿈이 생겼고, 인생이 즐거워졌다고 했다.


나는 평생을 잠이 많은 사람이었다. 왜, 친구들과 어디 놀러가면 다음 날 퇴실 할 때쯤 밍기적거리며 일어나는 사람 있지 않나? 회사 생활할 때는 새벽에 알람 수십 개를 끄고 겨우 일어나 집안을 전쟁터로 만들고 나서야 출근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였다.


결혼 전 나는 항상 생각했다. 내가 만약 회사를 다니지 않게 되면 아침에 절대로 알람에 의해 일어나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그건 너무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몇 시가 되었던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는 시간, 그게 바로 내 아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아침은 소중하니까 어떤 인위적인 것에도 지배 받지 않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바램을 갖고 살았을 정도로 아침 잠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내가 항상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수면 습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에 일 마치고 돌아오면 항상 시간이 아까웠다. 회사에서 온 하루를 바치고, 겨우 얻은 내 시간이 아까워서 일찍 잠들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생산적인 일에 몰두한 것도 아니었다. 이것 저것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떼우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제는 아이의 기상과 취침이 내 알람이 되었다. 이래나 저래나 알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생.


미라클모닝은 지금까지의 나를 완전히 부정하는 일이다. 나는 지금껏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며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매일 밤마다 심심풀이로 들여다 본 그들의 미라클한 일상과 변화를 지켜보면서 조심스럽게 나도 해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이대로 살고 싶지 않았으니까. 멈춰버린 시계 같았던 내가 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특별한 삶을 창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 노력하지 않는다면 내일도 다음주도 다음달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서 오늘을 마지노선으로 그어야 한다. 마지노선을 긋는다는 것은 당장 오늘부터 다르게 살기로 결정한다는 의미다. <미라클모닝>中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매일 똑같이 살면서 바뀌길 기대하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란 걸 잘 알면서도 그 말도 안되는 걸 나는 매번 반복하며 살았다. 정말로 이대로 살고 싶지 않다면 어제와 똑 같은 하루를 살지 말아야했다. 악순환의 고리를 잘라야 했다. 미라클모닝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방법이었다.


오늘을 마지노선으로 긋기!


마침 2017년 새해를 며칠 앞두고 있었다. 나는 2016년을 마지노선으로 긋고 새로운 날, 다시 태어나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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