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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거대하고도 눈부신

by 쾌주 Mar 05. 2025

무엇이 문제인지 잘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때에는 대체로 아무런 문제도 없다.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 문제가 있다. 잘 알 수 없고, 사소한, 지나치기 쉬운, 그리고 매우 거슬리는, 그런 문제다.

사소하고 지나치기 쉬운 문제가 어째서 매우 거슬린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와는 친해지기 어려운 그런 사람이다. 이게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거슬린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냐고 묻는 그런 사람. 아마 그 사람은 나를 보며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별로 대단치 않은 문제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만큼이나 나 같은 사람도 많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그냥 지나치면 된다.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겨버리면 그만이다. 그러고 나서는 그 사람은 그 사람의 문제에, 나는 나의 문제 같지 않은 문제에 집중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사회생활은 그런 서로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다시, 왜 상대를 인정하고 싶지 않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역시 나와는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다. 이쯤 되면 내가 정말로 이상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일단 나는 그런 사람이 맞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서로의 갈 길을 가면 된다. 하지만 내가 이상한 이유를 어떻게 해서든 납득하고 싶다면 우리는 서로 마음을 닫아야 한다.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된다. 여는 순간 우리들은 서로를 향한 거대하고도 눈부신 악의에 노출되고 말 것이다. 그 빛에 한번 노출되면 다시는 그전으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출되기 이전인척 지내야 할 것이다. 결국 모두가 고통받고 말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누군가를 이 빛에 노출시키고 싶어 한다. 그리고는 자신만은 그 빛을 피해 간 척, 자신에게서는 그런 빛이 나오지 않는 척한다. 그리고는 그 누구보다 색채가 강렬한 빛을 뿜어내 상대의 빛을 자신의 빛으로 물들이려 한다. 그리고 상대가 아랑곳하지 않으면 왜 마음을 열지 않냐고 화를 낸다. 나는, 너를 위해서,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상대는 거기에 호응하지 않는 매정하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된다. 나는 이것을 후려치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세상에는 타인을 후려치지 않으면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나는 때로는 이것을 정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상도 하지.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 잠시동안 인터넷이 되지 않아 오프라인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느라 메모장을 켰고, 그 사이에 정체불명의 거대한 악의들에 둘러싸인듯한 기분이 들었다. 착각이겠지. 혹은 망상이거나. 혹은 현실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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