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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아바 Feb 25. 2023

2-2. 퇴사 없이 40일을 걷고 돌아온 사람

두 번째 관찰│이상한 남편 #일상순례자


'제정신인가? 안 짤리나?'

#일상순례자



일 이야기 말고는 따로 대화한 적이 없던 시절, 우리는 페이스북 친구였다. 그때의 우리가 어떻게 페친이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부부가 된 지금까지도 그는 “당신이 먼저 나한테 관심을 표시했다”며, “댓글 잘 안 다는 사람이 나한테는 꼬박꼬박 댓글을 남겼다”고 주장한다. “그게 관심이 아니면 뭐였겠냐”면서. 억울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믿고 싶다면 그런 것으로 하자.


친구도 몇 명 없는 그의 페이스북에는 여행 중에 찍은 사진과 짧은 글이 종종 올라오곤 했다. 머나먼 뉴질랜드에 가 있질 않나, 제주 올레길을 한여름에 걷질 않나, 영업맨이 저렇게 자주 여행을 다니다니. 역시, 일이 별로 없는 게 분명했다. 창문도 없는 사무실에서 좀비처럼 일만 하던 그때의 내게 그는 신기한 사람이었고, 내가 (혹시라도) 댓글을 남겼다면 그건 그저 신기해서였을 거다. 관심은 아니었다. 분명히.



그중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도 있었다. 지금은 너무 많이 알려진 길이라 단체관광 상품으로도 출시됐다지만, 10여 년 전쯤에는 그곳에 직접 다녀온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역시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그는 길 위에 있었다. ‘제정신인가? 안 짤리나? 이미 짤렸나?’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그것도 잠시, 울려대는 전화에 손을 뻗으며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페이스북 화면은 그만 닫고 할 일이 빼곡히 적힌 메모장은 다시 펼친 채로.


업무에 복귀한 그가 다시 우리 사무실에 등장했을 때, 흠칫 놀랐다. 퇴사한 줄 알았으니까. 40일 전만 해도 ‘일이 별로 없는 게 분명하다’고 믿었는데, 어쩌면 엄청난 능력자인지도 몰랐다. 그을린 얼굴로 돌아와 여전히 “별일 없으시죠?”만 묻고 유유히 사무실을 나가는 그에게 ‘퇴사 없이 40일 여행하기’의 비법은 묻지 못했다. 비밀은 1년 후에야 풀렸다. 그가 아니라 내가 퇴사를 했고, 퇴사 기념(?)으로 사무실 밖에서 처음 만난 때였다.


오래전부터 계획한 여행이라고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때부터 3년이 되면 한 달을, 10년이 되면 석 달을 쉬겠다고 마음먹었고, “3년 차가 되었으니 한 달을 떠난 것뿐”이라고. 너무 단순명쾌한 대답에 당황스러웠다. 나라고 안 쉬고 싶었겠나. 하지만 일하면서 한 달을 어떻게 쉬나. 40일 여행 같은 건 퇴사 후에야 가능한 일 아닌가. 퇴사하자마자 유럽행 비행기 표부터 끊어둔 나로서는 어쩐지 억울한 이야기였다.


영업맨인 그는 늘 전화를 받아야 한다. ‘보험설계사’라는 직종은 고객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걸려 오는 전화가 많기에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전화가 울리면 일단 받는다. 그런데 어떻게 퇴사 없이 40일을 떠난단 말인가. 유럽행 비행기를 타는 순간 전화는 10시간 이상 꺼져 있을 테고, 한국보다 8시간 느린 스페인에서 오전 오후가 뒤바뀐 채로 여행하면서 한국에서 걸려 온 전화는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세상에, 그에게는 아바타가 있었다. 일터에서 잘리지 않고 여행할 수 있도록 돕는 ‘오프라인 아바타’가 말이다.


그에게는 3년을 쭉 함께 일한 선배들이 있었다. 이들은 같은 회사에 속해 있지만, 실상은 회사원이 아닌 자영업자들이었다. 자신이 일한 만큼만 수수료를 받아 갈 수 있는, 대표적인 특수고용직 ‘보험설계사’. 이들은 매달 아니 매주 각자의 성과 그래프가 모두에 공개되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같은 회사에 소속되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지만 적게는 0원에서 많게는 몇천까지, 성과에 따라 급여가 천차만별인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3년 차 후배의 철없는 목표를 위해 대신 전화를 받아주고 급한 업무를 처리해 주는 선배들이라니. 그것도 기꺼이. 이게 말이 되나?


올해로 13년째, 남편은 여전히 그 선배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술 한잔 마시지 않고도 밤늦도록 수다 꽃을 피우는 사람들, 각자 맛있고 좋은 곳을 발견하면 서로를 꼭 데려가는 사람들, 피부암 진단 이후 고기를 안 먹는 남편을 위해 회식 때도 고깃집은 빼는 사람들, 서로 늘 티격태격하면서도 결코 서로를 미워하지는 않는 사람들과 13년째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삶에서 여행이 1순위인 남편이 오늘도 우선순위를 지킬 수 있는 건, 더불어 그와 운명 공동체인 내가 오늘도 출근하는 남편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건 모두 이 사람들 덕분임을 잘 알고 있다.


결혼 전, 남편은 자신의 직업을 내 부모에게 말하기를 주저했다. ‘보험설계사’라는 말과 함께 따라오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사람들의 편견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남편은 친한 사람도 많지만,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직업을 먼저 밝히지는 않는다. 자신의 호의가 ‘보험 판매’를 위한 전 단계로 비칠까 두려워서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편견과 오해가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그의 선배들을 만나면서 타인의 직업에 대한 나의 편견을 점검할 수 있게 되었고, 월급생활자가 아닌 이들의 자유로움보다는 고충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고, 내가 고객이 되는 순간에도 나를 "고객님"으로 부르는 상대의 시간을 먼저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결혼은 결코 남편과 나의 일대일 결합이 아니었다. 그의 가족이 오고, 그의 동료들이 오고,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고, 그의 지난 시간이 한꺼번에 나를 찾아오는 일이었다. 덕분에 한동안 몹시 버거웠고 다시 혼자가 되고 싶은 날들도 문득 찾아왔지만, 이제는 안다. 그와 함께 찾아온 수많은 인연들이 혼자만의 방에 갇혀 있던 나를 더 넓고 밝은 길을 향해 걷게 했다는 사실을.


+ 산티아고에서 남편과 함께 걸은 길 위의 친구들.


마우로(가운데)와 마리(오른쪽 끝)는 신혼여행으로 산티아고에 온 커플이었는데, 싱글이었던 남편이 이들 사이에 껴서 신나게(?) 여행을 했다고(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 그때의 빚을 갚고자 이번에는 우리가 떠났다. 산악영화제로 알려진 이탈리아 트렌토Trento에서도 정말 산꼭대기에 있었던 두 사람의 집으로. 그게 2015년인데, 그 사이 두 사람은 귀여운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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